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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옹기장이의 피밭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9 조회수3,00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년 가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


복음:  마태오 26,14-27,66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조토(Giotto) 작, (1302-1305),  파도바 아레나 경당

 

디태치먼트’(2011)란 영화는 헨리라는 비정규직 교사가 한 문제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배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아마도 보여주려고 한 메시지는 가르치려는 교사도 열정이 식었고 배우려는 아이들도 열의가 없어져버린 겉만 번지르르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텅 비어버린 현대의 학교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헨리라는 총각교사를 좋아하게 되는 두 여학생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헨리는 할아버지의 어떤 잘못 때문에 어머니가 목숨을 끊으신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절대 타인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가출하여 문란하게 돈을 벌며 살아가는 여자 아이를 버스에서 만납니다. 또 한 아이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뚱뚱하여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왕따 당하는 헨리의 반 아이입니다. 헨리는 이 두 여자아이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줍니다. 길거리 생활을 하는 학생은 집에 데려다 치료해주고 보살펴줍니다. 그러나 어떤 육체적 터치도 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차츰 선생님에게 신뢰가 쌓여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날 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역시 이 선생님을 육체적으로도 좋아하게 됩니다. 선생님도 이 아이가 좋지만 평생 데려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울고불고 하는 아이를 떼어내며 소년원에 보냅니다. 아마 그래서 제목이 디태치먼트(Detachment)’, 끊음, 분리, 거기를 둠인 것 같습니다. 한 다른 아이 또한 유일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육체적 접촉을 시도합니다. 선생님은 역시 그 아이를 떼어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생님께도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 왕따 아이는 자살을 하였고 소년원에 간 아이는 건강한 아이로 변하였습니다. 한 아이는 선생님이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고 한 아이는 선생님을 만나면 뛰어와서 안기는 기쁨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의 핵심 주간인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아버지께 당신을 왜 버리셨느냐고 부르짖으십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떼어놓아야만 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아이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런 방식으로는 아이들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리불안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어머니와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아이는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고서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겪어야하는 분리의 아픔입니다. 이 아픔은 사랑하는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됩니다. 둘이 서로 분리되는 아픔을 겪을 줄 모른다면 둘은 서로 타버려서 재가 돼 버립니다. 같이만 있으려는 마음을 끊을 줄 알아야 비로소 정화된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집착이 아니라 사랑이 되고 소유가 아니라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반드시 혼자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어야합니다. 아기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엄마는 혼자 있고 싶은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아기가 울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엄마가 붙어있기만을 원한다면 그 아기는 언젠가는 엄마의 폭발하는 짜증을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아직까지 타인을 온전하게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인을 만나는 것은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고 이는 자신의 불안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자신처럼 외로워서 자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타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괴롭힘을 당한다고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이 혼자 있을 시간을 보장해 줄 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더라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심판받고 돌아가셔서 비록 왕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예수님만이 왕이시고 나머지는 세상의 힘에 지배받는 이들입니다. 세상의 힘에 휩쓸린 것은 자신이 왕인 줄 알았던 빌라도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만든 유다 지도자들, 그리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혼자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옳은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증언하시려는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심판하던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진리를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풀어줄 권한도 있다고 말하는 빌라도에게 너는 아무 힘도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군중과 그들이 일으키게 될 폭동, 그렇게 자신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 무서워 그들에게 휩쓸리고 있는 가련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참다운 왕은 자신을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힘입니다. 성령은 피이고 사랑입니다. 그 힘이 없으면 인간은 아주 작은 짐승적 본능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이들은 그 피에 자신을 묻어야합니다. 이 목적을 위해 생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은돈 서른 닢으로 산 땅이 피밭이라 불리는 옹이장이의 밭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방인의 묘지로 쓰기로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이해시키기 위한 마태오 복음사가의 시도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서에 의하면 옹기장이는 하느님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들고 싶지만 사람들은 동물의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의 힘에 굴복하고 맙니다. 따라서 옹기장이는 자신의 피밭에서만 흙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피밭에 묻히게 되는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피로 자신들의 본성을 죽인 이들입니다. 부모의 고생으로 자녀들이 그 부모의 희생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사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동물의 본성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 피를 받은 이들만이 하느님의 자녀로 빚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에덴동산의 뱀이 우리 안에 작용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또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피로 산 그 밭에 우리가 묻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피밭에 묻혔다는 뜻은 그분의 뜻이 아니면 다른 것은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직 그 밭에 묻힐 때에만 부활의 기쁨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 피 속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한 성당에 가면 성당 전체를 사람의 뼈 조각들로 장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천 명의 뼈들로도 저렇게 아름다운 무늬가 나올 수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뼈들이 모두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사님들의 것임을 알고는 또 한 번 놀랍니다. 그 수도회에서는 수사님이 돌아가시면 작은 땅에 묻어서 살이 다 썩게 되면 그 뼈를 골라 성당 한 구석을 장식해나갑니다. ‘피밭이란 바로 그런 밭을 의미합니다. 피밭에 묻힌다는 뜻은 세상에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피인 성령만 있으면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음을 뜻합니다. 어떤 애정도 그 밭에서 그들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킬 줄 아는 이들만이 주님의 성전을 장식할 수 있고 주님을 모신 참다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재밌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어머니가 와서 TV를 꺼버리고 기도하자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반항했지만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 것으로부터 잠깐이나마 멀어질 수 있었던 시간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었음을 압니다. 이 시작이 피밭에서 썩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주님의 밭에 묻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인은 하루 평균 TV4시간씩이나 보면서 책은 6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을 이길 힘을 얻을 기회가 없어집니다. 디태치먼트란 영화에서 참으로 학생다운 학생이 없어 텅 비어버린 학교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이는데 어쩌면 예수님께서 당신 피로 만들어놓으신 그 피밭이 그렇게 비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밭은 끊음이고 광야의 시간으로 상징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광야로 부르시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는 여전히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방향을 가리키기 있는 것입니다. 낮이던 밤이던 새벽이던 십자가 밑에 머물 줄 아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지 않는다면 결국 그분의 밭도 텅 비고 말 것입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성체조배를 추천합니다. 십자가의 삶은 그 피밭에 묻혀 자아를 죽이는 삶입니다. 옹기장이 밭에서만 부활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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