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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412 - 성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12 조회수3,03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7
04 12 () 가해 성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이사야서 50,4-9
마태오복음 26,14-25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
유다의 배반 >


마태 26,14-25 사람의 아들을 배반한 그 사람은

오늘 복음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없애려 하는 대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15) 하자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내주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유다는 자신의 스승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 다니면서 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 체험한 제자로써 어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유다는 열 두 제자들이 생활하기 위한 돈주머니(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요한복음 126절에서 보듯이 공금을 빼서 개인적으로 써오던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싫어하여 죽이려고 하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잡을 공모를 하고 있는 것을 안 그는 돈이 생각이 나서 예수를 넘겨줄 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그는 예수님을 3년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을 무수히 보았으므로 자기 계산으로는 예수님을 넘겨주어도 예수님은 당신의 권능으로 그들의 손을 벗어나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은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획은 유다의 계산과는 달랐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유다의 비극은 그가 예수님을 ‘그 본래의 예수’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어떤 존재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자기 식의 예수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생긴 비극이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셔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유다의 비극은 예수님보다 자기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극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말씀보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 아래서는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방식이 더 낫다고 고집하는 사람의 최후의 비극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신다. 이 말씀은 유다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깨우쳐 주시는 것이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24) 하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모두 걱정이 되어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2) 하고 물었고 유다도 그렇게 묻고 있다(25). 이는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 앞에서 빛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가리는 말이다. 어둔 밤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이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존재하시는 그 본래의 모습의 하느님인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이신가? 내가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혹시나 하느님께 나를 따르라고 하고 있지나 않은가 반성하면서 주님을 올바로 따를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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