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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미사강론]프란치스코 교황, 2017년 부활성야 강론 [2017년4월15일 토요일(부활성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20 조회수5,659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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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7415일 토요일 (부활성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창세기 1,1─2,2<또는 1,1.26-31>

화답송 : 시편 22(21),8-9.17-18.19-20.23-24(◎ 2)

2독서 : 창세기 22,1-18<또는 22,1-2.9.10-13.15-18>

3독서 : 탈출기 14,15─15,1

4독서 : 이사야서 54,5-14

5독서 : 이사야서 55,1-11

6독서 : 바룩서 3,9-15.32─4,4 

(그외 각 독서별 화답송은 매일미사말씀 참조)

복음 : 마태오 복음 28,1-10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missaid=8009&gomonth=2017-04-15&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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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2017년 부활성야 강론

http://www.news.va/en/news/pope-francis-homily-at-easter-vigil-2017

 

2017-4-16  바티칸 라디오

 

(바티칸 라디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성토요일 저녁 부활 성야에 성베드로성당에서 강론을 전했습니다. 다음은 교황의 준비된 강론의 공식 영어 번역문 전문이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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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성하의 강론

부활 성야

2017 4 15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마태오 복음 28,1) 우리는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그들은 묘지에 가고 있는 사람들처럼, 그 모든 일이 이렇게 끝났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사람들처럼 불확실함과 지친 발걸음으로 걸어 갔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창백하고 눈물 고인 얼굴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 사랑은 정말 죽었을까?

 

제자들과는 달리 여인들은 ? 스승님이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아리마태아 요셉과 함께 그분께서 무덤에 누워 계신 동안 그곳에 있습니다. 도망 가지 않았던, 변함없이 머물러 있었던 두 여인. 두 여인은 부당함의 쓴 맛을 알았고 삶 그 자체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모든 일이 끝나야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들을 그 곳 무덤 앞에서 우리는 봅니다.

 

우리가 이 장면을 상상하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그 여인들의 얼굴들과 다른 이들의 얼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의 얼굴들. 부당함과 잔혹함의 무거운 짐을 안고 있는 젊은이들과 아이들의 어머니들, 할머니들의 얼굴들. 지독한 가난의 고통을 느끼고 착취와 인신 매매로 인한 슬픔을 느끼는, 우리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두 여인의 얼굴에 비추어 지고 있음을 우리는 느낍니다. 우리는 또한 나라와 집과 가족을 잃어 버린 이민자라는 이유로 멸시를 당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굴을 봅니다. 그 얼굴의 눈들이 외로움과 버려졌음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은 주름으로 쭈글거리기 때문입니다. 권리를 빼앗고 그들의 꿈을 산산히 부수어 버린 엄청난 부정부패로 무너진 그들 자녀들의 삶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어머니들, 여인들의 얼굴을 두 여인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희망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이기주의의 일상적인 행동들로. 변화의 길에 서 있는 둔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관료주의로. 비통함 속에서 그 두 여인들은 우리의 도시를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고 인간의 고귀함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봅니다.

 

또한 그 여인들의 얼굴은 어쩌면 여러분과 나의 얼굴을 포함한 많은 다른 이들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습니다. 그 여인들처럼 우리는 계속 걷도록 그리고 이 일들이 이렇게 끝날 것이라고 체념하며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진실하심에 대한 확신과 약속을 우리 안에 가져 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얼굴에는 또한 상처의 흔적들이 있고 너무나 많은 부정한 행위들의 흔적들이 있고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흔적 그리고 애썼던 노력과 패배한 싸움들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 우리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무덤과 함께 사는 것에 그리고 절망으로 사는 것에 거의 알아 차리지 못하면서 익숙해져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 나쁘게는 우리들은 이것이 삶의 법칙이라고 스스로를 확신하게조차 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희망을 꺾는 일을 거들기만 하는 도피의 형태로 우리 양심을 무디게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그 여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열망과 암울한 체념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게 걷습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희망도 그분과 함께 죽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마태오 복음 28,2). 예측하지 못했는데 그 여인들은 강력한 흔들림을 느꼈습니다. 마치 어떤 것 또는 어떤 이가 그들의 발 밑을 땅이 흔들도록 한 것 같았습니다. 다시 어떤 이가 그들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지만 덧붙여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이것이 전 세대를 거쳐 이 거룩한 밤 성야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메시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형제 자매여.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이 파괴했던 생명은 지금 다시 깨어나 새롭게 고동칩니다(ROMANO GUARDINI, The Lord, Chicago, 1954, p. 473 참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심장 박동은 우리에게 은총으로, 선물로, 새로운 지평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고동치는 심장은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결국 변화하는 힘으로 주도록 요청 받습니다. 부활하시면서 그리스도는 무덤의 돌을 치우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또한 열매 맺지 못하는 무익한 비관주의에 우리를 가두는 모든 벽을 무너뜨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생명에서 떼어 놓는 정교하게 쌓아 올려진 상아탑 안에, 안전함의 보장에 대한 우리의 강박적인 욕구 안에, 그리고 우리가 다른 이들의 고귀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끝없는 야망 안에 우리를 가두는 모든 벽들을 부수기를 원하십니다.

 

수석사제와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인들과 공모하여 그들이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고 최종적인 결정이 났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달렸다고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갑자기 안으로 들어 오시고 모든 법칙을 뒤집으시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새로운 시대, 자비의 시대를 창조하시고 굳건히 하시려고 한번 더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이것이 태초부터 존재하던 약속입니다. 그분의 진실한 백성에게 이것이 하느님의 놀라우심입니다. 기뻐하십시오! 부활의 씨앗이,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의 제안이 당신의 삶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선포하도록 부르는 것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심장 박동. 그리스도는 살아 있습니다! 그것이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의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소식을 전하러 달려 가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28,8). 그것이 그들이 슬픔에 잠긴 걸음걸이와 비통한 얼굴 표정을 치우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만나러 도시로 돌아갔습니다.

 

두 여인들처럼 우리가 무덤을 보러 갔으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그 여인들과 함께 도시로 돌아가라고 청합니다. 우리 다 함께 우리 발걸음을 되짚어 돌아가고 우리 얼굴의 표정을 바꿉시다. 그 여인들과 함께 소식을 전하러 돌아 갑시다무덤에서 최종 결론이 나버린 것처럼 보이는 그 장소들에서, 죽음이 유일한 출구인 것처럼 보이는 그 장소에서. 우리 돌아가 선포합시다. 나눕시다. 드러냅시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주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살아 계시고 그분께서는 묻혀 버린 희망과 묻혀 버린 꿈들과 묻혀 버린 고귀함을 갖고 있는 그 모든 이들의 얼굴 안에서 다시 부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께서 이 길 위에서 우리를 이끄시도록 우리가 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갑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 새로운 새벽에 놀라게 하고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이 새로움으로 우리가 놀라워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그분의 자애하심과 그분의 발걸음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도록 받아들이게 해 주소서. 우리가 그분의 심장 고동이 우리의 연약한 심장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도록 받아들이게 해 주소서.

 

 (바타칸 라디오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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