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28."이 분은 세상에 오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 예언자이다"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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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4-28 | 조회수3,91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요한 6,1-15(부활 2주 금)
오늘 <복음>은 이른바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공생활에 있어서 분수령이 되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상향곡선을 그려오던 예수님의 인기는 이 사건을 정점으로 절정에 달하게 되고, 이후부터는 차차 하향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만큼,오늘은 단지 <요한복음>이 다른 <공관복음>과의 차이 한 가지만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라, “표징”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단순히 측은한 마음이 들어 자비를 베푸는 기적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서 내어주는“표징”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에서는 빵과 물고기를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시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를 “직접 군중에게 나누어 주십니다.”(요한 6,11 참조). 곧 당신 자신의 신원을 “빵을 주시는 분”으로 계시하십니다. 당신 자신이“생명의 빵”임을 표징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6,14)이심은 알아보지만, 여전히 “생명의 빵”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분”으로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임금으로 삼고자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군중과 제자들을 피하여,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로 삼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필립보를 시험하여 한 질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
이 질문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먹을 빵을 어디에서 구하고 있는가? 그것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를 가진 “어린 아이”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린 아이”를 주목해야 합니다. 나중에, 십자가에서 무력해진 어린 아이가 전부를 내놓아 모두를 살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필립보처럼, 예수님이 아닌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 해결책을 구하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면서도 그분의 권능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불신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 곧 오천 명을 먹인 성체성사의 표징을 아직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9)라고 말하는 안드레아와 같이, 우리도 가지고 있는 것을 소용없다고 여기고, 무가치하고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을 값지고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바로 그“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감사를 드리십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비록 보기에는 하찮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전부인 일곱 개를 가지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으로 5천명을, 아니 전부를 먹여 살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나누기에 충분한 것을 지닌 것입니다. 그토록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내어주기만 하면 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처럼, 있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길 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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