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1."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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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5-01 | 조회수8,71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요한 6,22-29(부활 3주 월)
우리의 관심사 중의 하나는 먹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맛 집’을 찾습니다. 맛이 좋은 음식, 몸에 좋은 음식을 찾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일용할 양식”마저 없어 죽어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양식을 가진 자들이 나누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밥그릇만 키워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대체 어떤 양식에 허기져 있는가? 그리고 어떤 양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호수를 건너 가파르나움으로 몰려 온 군중은 대체 무엇을 찾아 온 것일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6,25)
그렇습니다. 군중들은 이미 예수님을 만났고 빵을 배불리 먹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배고팠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현세적 음식에만 매달릴 뿐, 표징을 통해 얻은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참된 생명”인 표징자체를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루를 사는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말씀하십니다.우리는 이 양식을 “우리 주님”으로부터 얻습니다. “우리 주님”이 바로“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나오는 ‘양식’(브로시스)이란 단어는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곧 마을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좀 잡수십시오.”라고 물었을 때 대답하셨습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요한 4,34)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참된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하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8)
우리는 여기에서 아주 익숙한 단어인 “하느님의 일”, 곧 'OPUS DEI'란 단어를 만납니다. 여기서, ‘일’(에르가)이란 단어는 ‘음식의 소화’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마치 양식이 눈앞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에 넣고 잘 씹어 삼켜야만 비로소 양식이 되듯, “하느님의 일”은 그분의 뜻을 우리가 실천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일’은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여 우리 안에서 흡수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양식을 소화시키는 일은 그 양식을 믿고 받아먹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진정 이것이야말로 양식을 얻는 하느님의 일인 것입니다. ‘믿음’, 이것이야말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소화시켜줍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만이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해 나갑니다. 그래서 믿음은 행위가 되고 실현이 됩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이 주시는 양식을 눈앞에 두고 바라만 보고 있지 않게 하소서. 입에 넣고서 잘 씹어 삼키게 하소서.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요한 4,34)이 제 양식이 되게 하소서. 믿음으로 말씀을 이루는 일, 바로 그 일을 하게 하소서. 용서하는 일, 바로 그 일을 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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