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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5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요한 타울러 신부님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05 조회수4,385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태 9,9)

 

 

 

성 마태오 사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본보기였습니다.

 

성경에서는 처음에는 그는 큰 죄인이었으나

 

나중에는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친구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말씀을 새겨 듣고

 

벌떡 일어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나를 따랐다.”

 

모든 일은 마태오 성인처럼 진심으로 하느님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는 하느님이 아닌 것은 모두 놓아버리는 것을

 

영혼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마음만 사랑하시므로

 

외적인 일로는 하느님을 만족하게 해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내면 생활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내면으로 거룩한 덕을 쌓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내면 생활 안에 계시므로

 

내면 생활은 거의 하지 않고 여러 시간 동안 구송기도만 하거나

 

온 세상에 울려 퍼질 정도로 큰 소리로 노래하거나

 

금식하거나 철야기도를 할 때보다는

 

1분 동안 자기 성찰을 할 때 계시게 됩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셨는데 주님께 순종한다는 것,

영혼의 저급 능력으로 세 가지, 고급 능력으로 세 가지

 

모두 합쳐서 여섯 가지를 뜻합니다.

 

저급 능력으로는 겸손온유인내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로 받게 되는 우리의 능력을 초월하는 고급능력은

 

믿음소망사랑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주님을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수단 방법을 초월하고 침묵하여

 

하느님 가까이 가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면으로 들어가 하느님께서 당신 뜻대로

 

역사(役事)하시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과 철야 기도 등

 

외적 수행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느님은 생각하지 않고

 

수행하는 기쁨에만 빠져 자기 뜻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은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며 만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속이면서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쁨을 얻으려고 수행하지 말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옛날의 율법에 사제(司祭)는 희생제물의 기름을 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하느님께 바칠 때 기름을 불태워버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희생제물의 창자에 있는 곱창과 같은 기름은 먹어도 되었습니다.

 

수행을 통하여 얻는 기쁨을 희생제물의 바깥 쪽 기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사랑의 불에 던져버리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만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수행을 기계적으로 의무감에서 하지 않는다면

 

수행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순 기능도 있기 때문에

 

이 기쁨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마태오 성인의 정신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자기(自己)를 버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살려면

 

주님을 본받고 사랑하면서

 

즉 무연자비(無緣慈悲)를 베풀면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내적 외적인 수행을 의무감으로 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기(自己)를 버리고

 

내면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놓아버리는 것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의 은총을 받고,

 

거룩한 교회로부터 도미니코 수도원의 고깔을 쓰고 수행하는 은총과

 

사제 서품을 받고 강론을 하고 고해성사를 듣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황님이나 거룩한 교회가

 

나의 이러한 특권을 뺏어버리고 나를 버린다면,

 

나는 이유를 묻지 않고 겸손하게 이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허름한 옷을 입고 나의 길을 떠날 것입니다.

 

내가 형제들과 수도원에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면

 

훌훌 털고 수도원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제직과 고해신부의 자격과 강론하는 자격을 박탈 당한다면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저의 것이 아니라 저에게 특권을 주었다가 다시 찾아가는 것을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단자라는 말을 듣기도 싫고

 

파문 당하고 싶지도 않습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이런 시련을 받는 은총을 받는다면

 

나는 진정으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합법적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나에게서 이런 은총을 뺏어버리려고 한다면

 

나는 순종하지 않고 차라리 죽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거룩한 교회가 성사(聖事)

 

집전하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영성체를 하지 못하게 되면

 

아무도 나에게 성체(聖體)를 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우리에게 준 것을 뺏어간다면

 

우리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외적 수행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내면 생활을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기쁨을 맛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따라서 자기(自己)를 버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열심히 수행하는 척만 하면서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여러분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어둠 속에서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영적(靈的)인 선물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기적이지 않은 영혼 안에서

 

역사(役事)하시는 것은 영혼의 힘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면

 

아무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본능적으로 소유하려고 하고

 

알려고 하고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나는 앞에서 여섯 가지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저급(低級) 능력은 겸손온유인내이며

 

고급 능력은 성령의 은사로 얻게 되는

 

믿음하느님을 믿어 얻게 되는 소망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당신과 하나가 되게 이끄실 때에는

 

믿음을 주시어 이성(理性)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게 하시고

 

아무것도 모르게 만드십니다.

 

하느님께서 믿음을 주시면 자기(自己)를 버려서

 

이성과 지식과 환상을 이용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희망이 생기게 되고 본능에 의존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을 주시어 자신의 뜻과 소유욕을 버리게 만드십니다.

 

 

 

‘겸손’과온유인내의 세 덕은 영혼의 고급 능력에서

 

내면으로 전달되어 덕으로 쌓이게 됩니다.

 

겸손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고

 

온유함은 이미 이기적이고 교만한 생각을 없애어

 

모든 것이 동등한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덕을 쌓고 있는 것도 모르게 되며 사랑이 충만하게 됩니다.

 

사랑은 고통에 대한 갈망 때문에 인내하는 줄도 모르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람들은 이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있을 때에도 잘못을 저지릅니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도 있지만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더욱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

 

이런 잘못을 범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때까지

 

잘못을 범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뼈를 깎는 수행을 거쳐야만

 

겉으로 믿음이 깊은 척하지도 않게 되며

 

기계적으로 의무감에서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뼈를 깎는 이런 수행을 거쳐야만

 

죄를 용서해주시고 연옥을 거쳐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좋아하는 수행을 해서도 아니고

 

충고를 듣고 운이 좋아서 여러분이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Job)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나이까?”하고 말했듯이(욥기 3,23),

여러분은 성숙이 덜 된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지 않은 사람들처럼

 

아직도 어두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세상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사막 길을 걸어야만

하느님께서 나를 따르라.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나에게로 오라.

 

그대는 아직 나를 만나지 못했다.

 

멈추지 말고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물을지 모릅니다.

 

주님, 이 어둡고 험한 길을 당신을 따라 걷게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답하실 것입니다.

 

나는 사람의 아들이고 하느님이시고,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하느님이시다!”

 

주님께 당신께서는 하느님이시고

 

저는 아무것도 아니나이다.”하고 고백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해야만

 

무한하시고 이름이 없는 하느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철학자들은 새로운 것이 들어오려면 옛 것이 파괴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 동물적인 모습만 취하고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때가 되면 질이나 양이나 모습이나 색깔 등을

 

새롭게 만드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만드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영혼은 혹독한 시련을 거쳐야 하느님과 같은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성인 다마스쿠스로 갈 때 눈이 멀게 되자 하느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도 외투로 자신의 머리를 덮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모든 바위들이 갈라지고

 

주님께 의지하던 모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짐승 같은 본능적인 것들이 사라지자 영혼이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부지런히 정진(精進)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가 나를저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따르던 길에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예레 3,19)

 

마치 계속하여 이름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심연으로 더 깊이 들어가 내 가까이로 오너라.

 

어떻게 해서라도 세상 것들을 놓아버리고

 

나만 생각하도록 하여라.”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오로 성인이 이렇게 정신을 잃고 있을 때

 

단 한 번만 빛이 비쳐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황홀경을 보고

 

의식을 잃고 정신을 잃고 집착을 버리게 되어

 

하느님께 빠져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성(個性)까지도 사라진 것은 아니며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사람이 바뀐 것입니다.

 

하느님께 깊이 빠져 하느님이 아닌 것은 모두 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지에 이르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모시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되어야만 하느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수행만 하면서

 

믿음이 깊은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주님의 삶과 수난과 죽음을 공부하고 본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시고, 길을 밝혀주시는 진리이시고,

우리를 살게 해주시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느님께로 가는 문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문은 강도나 도둑이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을 통하여 본능을 억제하고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덕을 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을 걷지 않고 완덕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기심에 눈이 멀어 있으므로 하느님께서 멀리 떠나가십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주님의 길을 걸어 완덕을 얻게 되면

 

거룩한 교회의 교황님으로부터 말단 성직자까지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충만하여 모든 법을 준수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성인이 말했듯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갈라 5,18)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따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진리가 자유롭게 만들어 높이 올려지게 됩니다.

 

세상 것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평화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본능적으로 받은 것을

 

모두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게 되므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외적 인간이 자신을 괴롭혀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들은 어디로 가도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거룩한 씨앗이

 

우리 가운데 깊이 뿌려지지 않았기에 걱정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당신을 따르는 은총을 주시어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해주소서. 아멘.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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