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6."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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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5-06 | 조회수4,43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요한 6,60-69(부활 3주 토)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6장의 끝부분으로, 그동안 우리가 들어오던 말씀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요한 6,69)으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6,60)
여기에는 “듣다”라는 동사가 두 번 쓰고 있는데, 앞의 것(aκοuω)의 뜻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단순히 듣는 것으로 물리적이고, 뒤의 것(ακουo)은 들려주는 말씀을 단순히 귈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이 참여하는 들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일이요,듣는 것도 행하는 것도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은 참으로 역설적이어서, 곧 죽으면 살게 되고, 주면 얻게 되는 것이기에 사람들에게는 스캔들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듣기에 거북하고 거슬리기도 합니다. 이는 지성에 대한 저항이거나 의지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6)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대로, “생명을 주는 영”(로마 8,2)입니다. 그러니 “말씀” 안에 우리의 진정한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일 안에 우리의 참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이 말씀은 떠나는 이들을 나무라는 말씀도, 떠나지 않는 이들을 칭찬하는 말씀도 아닙니다. 곧 따나라고도 하지 않으시고 떠나지 말라고도 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원의를 확고하게 하기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마치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마태 16,24) 하고 원의를 촉구하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의 믿음을 바라십니다.신앙은 강요가 아니라, 자유로운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떠나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또 흔들리고도 항상 주님을 향하여 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니, 흔들릴수록 더욱더 뿌리 깊게 내리는 믿음의 나무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떠나고 싶다고 해서 떠나지지도 떠날 수도 없는, 붙들고 싶다고 해서 붙들어지지도 붙들 수도 없는,그분께서 우리를 꼭 붙들고 계시는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와 함께 우리도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9)
이제는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께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당신의 말씀은 ‘듣기 거북한 말씀’(요한 6,60 참조)일 수 없습니다.우리는 자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을 따라 온 믿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멈추면 함께 멈추고, 당신이 가면 함께 가고, 무엇을 하더라도 함께 있게 하소서!믿음으로 그러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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