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3."너는 나를 따라라." - 파주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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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06-03 | 조회수5,22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요한 21,20-25(부활 7주 토)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이 두 가지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의 모습이요, <다른 하나는> 요한의 모습입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삶의 모습이요, <다른 하나>는 믿음 안에서 기다리며 관상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 두 가지 면모는 서로 비교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것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양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두 가지 면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중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할 수 없으며, 서로 통합을 이루어야 할 일입니다. 이를 관상과 활동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앞 장면인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미래를 예시해 주셨습니다. 곧 두 팔을 벌려 죽게 될 것을 미리 알려주시며,“나를 따라라”(요한 21,19)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다시 “나를 따라라”라는 명령을 다시 듣게 됩니다. 베드로는 뒤따라오는 요한을 보고서,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요한 21,21)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2)
여기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미리 예고한 순교와 관련하여, ‘내가 겪은 일을 겪으라. 나와 함께 고난을 겪으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런 일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살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다”는 말은 요한이 지상에 남아 있다거나 지상에서 영원히 산다는 뜻이 아니라, ‘그는 기다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의 모습을 동시에 살아갑니다. 바로 지금 그리스도의 순교의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가슴에 기대어 그분을 기다리며 관상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일’을 실행합니다. 곧 하느님을 향해 기도하며, 하느님의 일이라는 사도직 활동에 봉사합니다. 이 둘을 서로를 완성시켜주며, 서로를 통하여 통합을 이루어 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쿠오바디스>의 베드로처럼,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피하여 달아나다가, 다시 죽으러 오시는 주님을 뵙고서야 비로소 그분을 따라와 십자가를 기꺼이 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따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앞뒤를 잴 필요도 시샘할 필요도, 곁눈질할 필요도, 평가에 휩쓸릴 필요도 없이, 오로지 당신만을 따라 걷게 하소서! 타인에게 눈길을 돌리느라 당신을 놓치지 않으며, 저 자신을 따르느라 당신을 거스르지 않으며, 오로지 당신만을 바라보고 당신만을 따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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