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웃에대한 옳바른 정의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02 조회수4,299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웃에대한 옳바른 정의?

 찬미예수님!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전례말씀의 주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랑해야할 이웃의 의미를

새롭게 상기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시작했고

또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물었던 율법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

 예화를 들어 말씀하신 후에

어려운 상황에 놓인 그에게

누가 이웃이

되어주었는지를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율법교사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웃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하려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기 기준에서

이웃을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어려운

지에 놓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따라서

이웃이 결정된다고 하십니다.

것은 복음이 가져온

가치 기준의 대전환입니다.

그리고 이 전환만이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향하게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말씀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상처 입은

인류와 동일시하셨고

또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인류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즉,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웃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정의를

우리의 도움이 꼭 필요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해주십니다.     

 유다인들은 이미 그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같은 핏줄

또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만이

이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상 지금 우리도

이들과 같은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배타주의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하느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입니다.

   실제 우리 사회는

비슷한 부류끼리만 어울리고

어렵고 힘든 처지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외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끼리끼리만 어울리고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의식과 이웃의 의미가

많이 무색한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려했던

그 율법교사는 생명을 위한 길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요구를 실천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분명한 답을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화를 들어 말씀하신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웃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드러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길 가던 한 사람이

강도에게 습격을 당해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반쯤 죽임을 당한 채 길가에 버려졌고

이스라엘의 종교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차례로 그 곳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웃이 된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이론적인

문제가 제기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종교의 대표인 두 사람은

아무도 그 상처 입은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를 돕고자 멈춘 사람은

외적으로는 윤리나 종교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마리아인에게는

어떤 제도나 신분이나

 이론적인 문제보다

현실적으로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를

우리 각자가 깊이

생각해볼수 있는 질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

누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다고 해도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너무도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문을 열고 다가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도움이 되어 줄 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고

그것이 이웃 사랑이고

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잘 조직되어 있는 자선 단체

또 훌륭한 지향을 가지고 있는

종교 단체들의 활동이 있어도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이

억압과 냉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버려지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신심만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만과 편견과 이기심으로 인해서

상처받고 버려진 이웃에게

참된 사랑을 실천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생한 삶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헌신적인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적인 사랑은

모든 벽을 허물고

또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효과만점의 치료제이기도 합니다.

실상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관계 안에서

하느님적인 진실한 사랑은

어떤 상처나 병도 치유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답이 나옵니다.  

1독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동안

우리의 능력으로는 전혀

그분을 알 수 없지만

하느님 말씀은 허공에

울리는 빈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양심의 소리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가장 가까이에 계십니다.

자신의 마음을 무디게 갖지 않을 때

또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틀을 깨버릴 때

우리의 마음을 통해서 끊임없이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또 이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떠지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면서

살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잠시 묵상합시다.

 -구자윤신부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