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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06 조회수3,536 추천수10 반대(0)

이번 피정 중에는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인식으로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피정 중에 들었던 강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히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이 있지만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나중에 얻게 될 영광된 자리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유다는 자신의 추구하는 이상과 다른 길을 가셨던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잡혀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을 벌주지 않으시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허물이 있어도, 내가 잘못을 했어도 뉘우치고, 회개하여 정화되면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받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에도 분열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것을 걱정하였습니다. 고린토 교회에 아폴로 파, 게파 파, 바오로 파, 그리스도 파와 같은 분열이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세례를 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복음을 전해 주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 안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본당에도 가끔 그와 같은 분열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단체 간의 분열, 본당 신부와의 분열, 사목적인 결정에 대한 이견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런 것들은 과연 하느님으로부터 오는지, 세상의 것들로부터 오는지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비와 정의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 합니다. 정의가 없는 자비는 무질서한 삶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자비가 없는 정의는 자유로운 삶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자비와 정의가 균형을 이룰 때, 사회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좋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자유롭게 결정할 힘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악행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켜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제가 변화되기를 기다리십니다. 사람이 변화되기를 기다리십니다. 사제도 잘 몰라서 실수하기도 합니다. 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술자리를 같이하고, 친교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만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사에 충실하고,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적게 하면 좋습니다. 칭찬은 빨리하지만, 분노는 천천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좋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분노하는지, 얼마나 오래 기다리는지 돌아봅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차이가 있습니다. 분노가 인간의 생각이라면 기다림은 하느님의 생각입니다. 어찌 우리가 남을 판단할 수 있습니까? 가라지를 뽑으려다 밀을 뽑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엉켜 있어서 그렇습니다. 인간의 생각 내면에는 악의 기운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이끌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결정권이 없습니다. 선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인간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밀과 가라지의 모습이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바오로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가라지의 모습이 있었어도 회개하고 정화되면 밀처럼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잘 몰라서 그렇게 합니다. 가정에서 배우지 못했습니다. 기도하는 방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공부하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결국 가라지는 태워집니다. 그러기 전에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결정의 때가, 심판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가라지는 불구덩이에 던져집니다. 불가마, 용광로는 정화의 의미도 있습니다. 단련, 제련은 하느님의 정의로운 심판의 장소입니다. 심판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죄인이 가야 할 곳을 상징합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 걸려 넘어지게 하는 모든 자들입니다. 그들은 스캔들을 일으킵니다. 유혹의 행위를 총칭합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분노하고, 원망하기 때문입니다. 악은 평화가 아니라 억울함과 분노로 끝을 마치기 때문입니다.

 

악의 자녀들은 깨닫지 못하고 분노와 원망으로 마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은 고통 속에서도 위로를 받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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