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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06 조회수3,87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7월 6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 22,1-19

그 무렵

1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째 되는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멀리 있는

그곳을 볼 수 있었다.

5 아브라함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나와 이 아이는 저리로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겠다.”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7 이사악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고 부르자,

그가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묻자,

 8 아브라함이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하고 대답하였다.
둘은 계속 함께 걸어갔다.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4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

고들 한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아브라함은

하인들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함께 브에르 세바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브에르 세바에서 살았다.

복음 마태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어떤 교우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글을 잘 보고

있는데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간곡하게 부탁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서울의 아주 유명한 호텔

뷔페식당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솔직히 조금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셔서

제가 살고 있는 곳 근처로 가거나,

아니면 저를 데리고 식당까지

갈 것으로 짐작했는데 저한테

직접 오라고 하니 말이지요. 
약속을 했으니 호텔 뷔페식당을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당시에는 서울 운전이

익숙하지 못해서 전철을 타고

 가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 전철을 갈아타고

또 한참을 걸어서 겨우 호텔에

도착해서는 뷔페 음식을 먹고

 특별한 대화 없이 그냥 사적인

몇 마디 나누고는 다시 전철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더군다나 저녁 식사 약속이었기

때문에 혼잡한 전철 속에서 힘듦을

온전히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분은 분명 제게 저녁을

잘 대접하고 싶어서 아주 비싼

호텔 뷔페식당으로

저를 초대했던 것이겠지요.

 물론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저는 사람들의

식사 초대에 잘 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최고급

식당인 호텔 뷔페로 초대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히 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불편함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즉, 자신의 입장에서만

배려하신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보니 자신의 배려와

사랑을 왜 상대방이 왜 몰라

주냐면서 불평불만을

 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요?

그래야 진정한

배려와 사랑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치유해주십니다.

그런데 육신의 치유에 앞서서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중풍병자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죄의

용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육신의

치유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은 바로

‘죄의 용서’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육신의 치유보다

영혼의 치유가

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간단히 육신만을

고쳐줄 수도 있었지요.

그러면 율법학자들의 비판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배려해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의

스캔들이 일어날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이 배려와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내 이웃이 필요한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배려와

사랑이 가득할 때,

우리가 함께 할 하느님 나라는

가까워질 것입니다.

착한 일은 작다 해서

 아니 하지 말고,

악한 일은 작다 해도

하지 말라.

(명심보감)

인천교구 선학동 어르신대학

피정이 잘 끝났습니다.

"매 순간을 성실하게"

한 부자가 하인과 함께

여행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흙이 묻은 신발이

다음날에도 여전히

더러워져 있자 하인을 불러

앞으로는 신발을

 닦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인은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어차피 신발을 닦아 봤자

주인님께서 나들이

하시게 되면 다시 더러워질 게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오후, 어느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식당 주인에게 1인분의

식사만 주문했습니다.

하인은 당황해하며 주인님을

모시고 다니려면 자기도

식사를 해야 한다며 배가

무척 고픈 시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하인의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저녁은 먹어 뭣하나?

내일이면 다시

배가 고파질 텐데...”
하인은 아침에 했던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배가 고파질 것이지만

밥을 먹어야 합니다.

 어차피 옷이 더러워질 것이지만

세탁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어차피

죽을 것이지만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순간의 편리를 위해서 지금 해야

할 것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어제는 갑곶성지 관리장님 축일이었습니다.

축하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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