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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08 조회수3,210 추천수3 반대(0) 신고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

 야곱이 어머니 레베카의

협조 하에 형 에사오로부터

‘장자권(長子權)’을 강탈하는

 장면을 묵상해봅니다.

오늘날은 훨씬 덜하지만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맏아들은 다른 아들들보다

훨씬 더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가장의 자리를 차지했고,

아버지가 부재중일 때는

그를 대신해 가족들을 통솔했으며,

유산 상속을 받을 때는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를 받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맏아들의 특권은

아버지로부터의 특별한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조(聖祖)이자 신앙인

가족의 모델인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가문에서

희대의 사기극이 발생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성가정에서

권모술수가 은밀하게 전개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법적인 장자

강탈 사건이 이루어졌다는 것,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눈도 멀고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사악이

맏아들 에사오에게 정식으로

장자권을 양도하고,

그를 축복해주기 위해

절차를 진행합니다.

에사우를 불러 당시 통용되던

관습에 따라

한가지 부탁을 합니다.

 “네가 보다시피 나는 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그러니 이제 사냥할 때 쓰는

화살 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

나를 위해 사냥을 해 오너라.

그런 다음 내가 좋아하는 대로

 별미를 만들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그것을 먹고, 내가 죽기 전에

 너를 축복하겠다.”

(창세기 27장 2~4절)

이사악은 남성미 넘치는

에사우를 사랑하였지만,

레베카는 온순하고 다정다감한

야곱을 총애했습니다.

 에사우가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사냥을 하러 들로 나가자,

레베카는 미리 세워둔 치밀한

전략을 즉시 실행에 옮깁니다.

 이사악을 속이기 위해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야곱에게

에사우의 옷을 입힙니다.

새끼 염소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둘레에 입힌 다음,

자기가 만든 별미와 빵을

야곱의 손에 들려 이사악의

방으로 들여보냅니다.

이미 정신이 흐릿해진 이사악은

계략에 속아 넘어갔고,

장남이 아니라 차남에게

장자권을 물려주었으며,

를 축복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인간의 시각과 사고방식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겠지만, 종종 하느님께서는

악으로부터 선을,

 불의로부터 정의를

이끌어내시기도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도 발생합니다.

그저 묵묵히 아버지의 뜻을

순명했을 뿐인데도,

따라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뿐인

경우도 잦습니다.

 우리네 인생사, 많은 경우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우리네 인생 여정은

종종 이해하지 못할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결국 체념할 수밖에,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이신 그분께서

하시는 일에 종들인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로드맵과 우리들의

로드맵은 철저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의지와 우리들의 생각을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신 그분께서는 종종

수많은 축복과 은총의 선물을

종인 우리들에게 넘치도록

주시기도 합니다만,

때로 빼앗아 가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는

우리를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십니다.

 어느새 다가오셔서 빼앗아

가셨던 것을 다시 되돌려주십니다.

 주님께서 진두지휘하시는

인간의 역사는 자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때로 단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 인간은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이리저리 쉼 없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 와중에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시고, 결국은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고통 속에서도

 늘 희망하는 것입니다.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도

항상 낙관하는 것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실패 앞에서도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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