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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16 조회수3,50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

제1독서 이사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제2독서 로마 8,18-23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 13,1-23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18 그러니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신학교 입학을 하자마자

본당의 보좌신부님께서는

 “이제 신학생이 되었으니

본당 행사도 함께 해야지.

이번에 중고등부

캠프에 가도록 해.”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입학도

하지 않았지만, 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강원도의

설악산에 갔습니다.

솔직히 난생 처음

겨울 산에 간 것입니다.

어떤 장비를 갖춰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편한 청바지에

평상시에 신던 운동화를

차림으로 설악산에 갔습니다.
이렇게 힘든 시간은 처음

경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운동화가 이렇게 미끄러운

신발인지 처음 알았고,

청바지는 산을 오르는데

많은 불편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더군다나 산은 왜 이렇게 험한지

혹시라도 미끄러져서 사고가

나지 않을까 싶더군요.

힘들었지만 합격 통지서를

받았으니 이제

신학생이라고 하는데,

차마 힘들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정상이 어디야?

다시 내려올 산을

꼭 올라가야 하나?

 아이들도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그냥 내려오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었지요.

그리고 산 정상에 오를 때

즈음에는 입에서 단내가

정도로 완전히

지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산 정상에 올랐지만,

힘들어서 무엇을 볼 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어서 빨리 내려가서

푹 쉬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지요.
등반을 모두 마치고

다시 산 아래 저희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그때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산이 정말 아름답지 않니?”
산을 오르는 순간부터

다시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한 번도 산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힘들다, 짜증난다, 두렵다’

등의 마음만 간직했지,

여기에 어떤 긍정적인 생각을

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서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로

아름다운 경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서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름다운 경관을 전혀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힘들다고만

외쳤던 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뿌려진 씨는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씨가 어떤 곳에

뿌려지느냐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당연히 훨씬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그 모든 것은

당연히 최고의 씨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은

좋은 땅일까요?

아니면 나쁜 땅일까요?

많은 열매를 맺을까요?

아니면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

불만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 마음을 옥토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의 밭에서

많은 열매를

거두어들일 수 있습니다.

설혹 나쁜 시간이라 해도

그건 좋은 걸 선택한 것

 못지않은 의미가 있어.

삶의 모든 시간은

똑같이 삶의 기회니까.

(전경린)

신학과 1학년 때

선배님들과의 겨울등산에서...

"연필"

이것은 배터리, 전선,

충전기가 필요 없습니다.

 또한 사용하기 쉽고

휴대하기 편하지요.

 공항의 안전장치를

작동시키지도 않으며

어디에서나 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저렴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정답은 연필입니다.
맞지요? 요즘에는 그렇게

흔하지 않은 연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더 쉽게 쓸 수 있는

도구들도 많고,

더군다나 스마트폰의 발달로

스마트폰의 메모 기능이나

음성 녹음 기능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가장 정감 가는 것은

 연필입니다.

연필을 이용해서 글을 쓸 때의

사각사각하는 느낌은 기분도

좋게 하고 새로운 생각도

더 잘 떠올려집니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아직도

연필을 이용하더군요.
연필은 1564년에 영국에서

처음 발명되었습니다.

당시에 많이 사용하던 잉크의

대안으로 이 연필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지우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우기 쉽다는

특징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호칭을

얻게 했던 것이지요.
지금 현재 연필의 대용품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지우기 쉽다는

특징으로 오랜 시간을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 역시

 단 한 가지의 특징만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단 한 가지의 고유한

특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자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 고유의 특징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좁은 시야로

스스로를 쉽게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실 우리는 연필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석4동의 청년들이 놀러와서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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