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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1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18 조회수3,65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7월 18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제1독서 탈출 2,1-15ㄴ

그 무렵

 1 레위 집안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
3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4 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5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여종 하나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6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7 그러자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공

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

8 파라오의 딸이

“그래, 가거라.” 하자,

그 처녀가 가서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9 파라오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였다.

10 아이가 자라자

그 여인은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11 모세가 자란 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포들이 있는

로 나갔다가, 그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12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서

모래 속에 묻어 감추었다.
13 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자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모세는 “이 일이

정말 탄로 나고야 말았구나.”

하면서 두려워하였다.
15 파라오는 그 일을 전해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래서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였다.

복음 마태 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어떤 신혼부부를 만났습니다.
저는 집안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지요.
요즘에는 남자들이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추세에 맞춰서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는지를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결혼 전에
이미 가사를 공평하게 하자고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즉, 아내는
요리와 빨래를 담당하고,
남편은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를
담당하기로 했답니다.
그밖에도 많은 일에 대한
분담을 글로 적어서
서약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이런 부부들이
요즘에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공평하게 분담을 하니
싸울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지요.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공평하게
분담을 하겠다는 말이 오히려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너는 왜 충실하지 않은 거야?’
라면서 공평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싸움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집안일에 대한
정확한 분담이 가능할까요?
이러한 정확한 분담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분담은 직장 안에서나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결혼 관계 안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사실 결혼이란 자기희생이
 있어야지만 더욱 더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사랑 때문에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계속해서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관계가
 결혼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나누겠다는 생각은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평성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받기보다 주려하고,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려는
데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사랑의 법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이 섬김에서
시작됩니다.
 섬길 줄 모르는 믿음이
 있을 수 있을까요?
내가 받을 것만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내 종을 하나
두고서 부려먹을 것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이것 해라,
저것 하라면서 명령만
내린다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 수 없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향해서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사실 이 도시들은 사람들이 항상
북적이는 상당히 큰 도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께서도
 자주 방문하셨고 이곳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뵌 것만 해도
대단한데, 놀라운 기적까지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도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즉,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그저 마치 쇼를 보듯이
예수님의 기적을 대하면서
계속해서 놀라운 기적을 보여
달라고 청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과연 믿음이 있을까요?
요구만 하는 것 안에는 진정한
믿음도 사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믿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선 섬김의
 자세를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우리 역시 당시의 사람들처럼
놀라운 기적을 내게만
베풀어달라는 이기적인 사랑을
주님께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지를 쳐 주고 받침대로
 받쳐 준 나무는 곧게 잘 자라지만,
내버려 두면 아무렇게나 자란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남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말을 잘 듣고
고치는 사람은 그만큼 발전한다.
(공자)
1960년대로 돌아온 것만 같았던 가게.
신부님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위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세요."
전에는 이어폰을 끼고서
음악을 듣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이어폰을 끼고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따라서 저 역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 이들의 무리 안에
포함되는 것 같고,
또 좋은 음악에 마음 역시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이어폰을 통해서 들리는
큰 소리에 익숙하다보니 작은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어폰을
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많은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주위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창의적인 사람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세상
전체가 영감을 주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감각을 통해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어폰을 끼는 순간,
내 자신과 세상은 차단되기
때문에 절대로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세상과 차단된 나를
만드는 우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새로움은 절대로
 내게 다가올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들에게
새로움을 주시고 이를 통해
 이 세상을 더욱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데,
우리들은 계속해서 차단만
시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지를 발견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어머어마한 왕돈까스입니다. ㅋㅋ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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