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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719 -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최승일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19 조회수2,73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7
07 19 () 가해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탈출기 3,1-6.9-12
마태오복음 11,25-27


최승일 스테파노 신부님


<
누가 아버지를 아는가? >


오늘 복음 말씀은 “누가 아버지를 아는가?”라는 말씀을 들려주심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아버지 하느님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쳐주시고, 동시에 아버지 하느님을 아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심으로써, 누가? 즉 어떤 사람이 아버지 하느님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다는 사람들”은 “예지의 소유자”라는 뜻이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 어려움을 교묘하게 뚫고 나가는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아버지의 계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만함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소박한 사람들은 아버지 하느님을 알고, 그 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문턱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알고 그 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있어서 “안다는 지식”과 “똑똑하다는 영특함” 그 자체를 죄로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다는 것과 똑똑하다는 것을 예수님의 복음 앞에 내세우는 교만함을 단죄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러한 경우는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매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말씀 앞에 사람이 자신의 지혜를 내세우고, 자신의 똑똑함을 앞세울 때, 예수님의 복음은 그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복음이 무식함과 우둔함에 기초를 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에 무식함과 우둔함으로 복음을 대한다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본당에서 가정방문을 다닐 때의 일입니다. 오랫동안 쉬고 있는 교우의 집을 방문하여 “이제 그만 쉬시고 다시 신앙생활 열심히 해 봅시다.”라고 권고하였더니 그 분의 말씀이 “신부님, 강요하지 마십시오. 나도 알만큼은 다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이렇게 책도 여러 종류로 다 읽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천주교. 개신교, 불교, 회교에 관한 책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그래도 성당에는 나오셔야죠?”라고 다시 권했더니만, “신부님, 내가 이렇게 많이 공부를 하고 있어도 아직 성당에 나가야 할 필요성을 도무지 못 느낍니다. 좀 더 공부해 보고 필요성을 느끼면, 그 때 가서 나갈 테니 강요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 친척 가운데 신부도 있고 수녀도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는 하도 기가 막혀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나왔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형제님, 그러면 뭐 하러 성당에 나와서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냥 성경책 한 권을 사다가 읽고, 하느님께 직접 ‘당신을 아버지로 모실 테니 나를 당신 아들로 받아주십시오’ 하면 되지, 부러 성당에 나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자기 구원은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지 친척 신부 수녀가 대신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고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년이 지나고 나서 그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돌아가셨겠습니까? 자신이 고집하던 식으로 돌아가셨겠습니까? 그때는 유별나게 성당에 병자성사를 청하고서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가시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가 사목자로서 씁쓸한 맛을 보게 되는 경우입니다.
결국은 이렇게 허무하게 가고 마는 것을, 뭐가 그리 잘났고 똑똑하다고 하느님께 도전하다가 이렇게 생을 마쳐야 하는 것인지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복음이 지혜와 영특함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지만, 복음 앞에서는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누구를 막론하고 온전히 의지하는 겸손한 자세가 우선적으로 그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을 알 수가 있으며 동시에 우리는 그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인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잘 관리하라고 맡겨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마음, 즉 관리인의 자세로 겸손되이 자신의 시간이나 재능 그리고 재화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용할 수 있도록 합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기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승일 스테파노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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