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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19 조회수3,64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7월 19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제1독서 탈출 3,1-6.9-12

그 무렵

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9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에게

다다랐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억누르는 모습도 보았다.

10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11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12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

복음 마태 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부탁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철사를 반으로 자르고 싶은데,

철사를 자를 연장이 없습니다.

이 철사 좀 잘라주시겠습니까?”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연장 없이는

철사를 자를 수 없다고 말하고,

또 어떤 분은 자신은 힘이 없어서

이 철사를 자를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소수의 몇 명은

 “철사 좀 줘 보세요.”

라고 말하면서 철사를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할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철사를 자르는 것인데,

왜 구부리고 펴고만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하면 웬만한 철사는

언젠가 뚝 끊어지는

임계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우리는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히 원하는 상태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임계점이 있는데,

그 임계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포기했던 적은 없었을까요?

어떤 석공이 있었습니다.

이 석공이 망치로 돌을 치면

100번 안에 어떤 돌도

다 두 동강이 났습니다.

 어느 날, 석공은 커다란

돌을 깨기 위해서

망치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100번째 망치로 쳤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 달리

돌이 깨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 석공은 실망했지만,

100번이나 쳤음에도 불구하고

깨지지 않았다면 깰 수 없는

 돌이라 생각하고 포기했습니다.

 어차피 깨지지 않는 돌을 계속

붙들고 있어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바로 그때 초보 석공이

이 돌을 망치로 딱 한 번

치자마자 깨져버렸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딱 한 번만 더 쳤으면 될 것을

안 된다고 포기했던 것이지요.

 만약 이 석공이 100번이라는

제안을 두지 않고

깰 때까지 망치를

내리쳤으면 어떠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다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당시에는 능력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당신의 제자로

뽑지 않으시지요.

오히려 부족해 보이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철부지 같은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실제로 이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아들였지만

곧바로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제자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부족함을

계속 보여주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결과 이들 역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닫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느님도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잘 포기할까요?

임계점을 넘어서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망 위로 조그만 희망이
점점 자라나 울창한
이루는 걸 보았는가.
기쁨은 슬픔에서 자리고
희망은 절망에서 자라는 것.
(최일화)
반드시 변화가 이루어지는
임계점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임계점"
우리 삶 안에서도
이 임계점이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신부님, 성당의 한 교우가
제게 큰 잘못을 했습니다.
저는 크게 화를 냈고,
이분도 인정하고
제가 용서를 청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상처가 커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얼마 뒤에 한 번만
더 용서해달라고 하면
용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오히려 저를
무시하고 따돌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요?”
그 상대방도 제가 아는 분이라서
 조심스럽게 가서 그 자매님과의
관계를 물어봤지요.
그러자 이런 말을 합니다.
“몇 차례 용서를 제가 청했습니다.
하지만 받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딱 한 번만 더 용서를 청했으면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용서해주려는 그 순간
 그만둔 것이었지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원하는
상태로 변화가 일어나는
 임계점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삶 안에는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는 임계점이 있습니다.
어제 자동차 정비를 하고 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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