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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20 조회수3,796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7년 7월 20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 3,13-20

그 무렵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16 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

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19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0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복음 마태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글쓰기를 할 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무조건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제일 필요한 것을

하나 꼽는다면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관심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글을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요?

평범한 일상일까요?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집안 청소를 하다가

아침 드라마를 봤다.

시간이 되어서 성당에 가서

 미사 참석을 했고,

레지오 활동도 하고 왔다.

오후에 집에 들어와

저녁 준비를 하고,

가족들에게 저녁을 차려준 뒤에

인기 있는 드라마를

시청한 뒤에 잠들었다.”

라고 글을 썼습니다.

분명히 이것 역시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글을

사람들이 굳이 찾아서 볼까요?

자신의 삶과 별 차이 없는

이야기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굳이 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이라 할지라도

의미를 담고 있는 글,

그렇지 않다면 어렵고 힘든

삶이 분명히 이야기가 되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글은 어떤

이야기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살아야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범한 일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즉,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삶을 원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삶은

문제도 있고,

의미를 찾아 나갈 때

가능합니다.

 따라서 고통과 시련을

무조건 피하려는 내 모습,

아무 문제 없는 평범한

일상을 원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는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나는 오늘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오늘 주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생과 무거운 짐을 아예

주시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고통과

시련처럼 보이는 ‘이야기’ 없이는

제대로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이 고통과

시련을 잘 이겨내기 힘들다는 것

역시 잘 알고 계셨지요.

그래서 당신에게 오라고 하십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멋진

늘이라는 점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평범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통해서는 어떤 사람에게도

진한 감동을 전해 줄 수 없으며,

리고 내 자신 역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힘듭니다.

따라서 고통과 시련을 주신

주님께 불평불만을 던지고,

그래서 주님 곁을 과감하게(?)

떠나는 어리석은 행동은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수록 주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들의

고생과 무거운 짐을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치유는 과거를 흔적 없이 잊거나
고통을 완전히 삭제해 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과거대로
고통은 고통대로 함께
사는 법을 아는 것이다.
(정목)
수시로 적는 저의 이야기 노트입니다.
"독서"
독서를 하면 할수록
느끼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정말로
 훌륭한 책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걸 다 읽으려면
시간이 많지 않겠다.”
글을 매일 쓰고 있지만,
제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훌륭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책들을 자주 만나기
때문에 책의 소중함을
 더욱더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 책들을 다 읽는
 시간을 따져보니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 훌륭한 책들을 다 읽지
못할 정도로 부족합니다.
책을 통해 얻는 기쁨을
생각하면, 제가 쓸데없이
보낸 시간들은 결국 기쁨을
걷어차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솔직히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을
선택할 때가 참 많습니다.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들을
조금씩 줄여나간다면
기쁨의 시간이 반대로
조금씩 늘어나지 않을까요? 
읽을 책이 정말로 많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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