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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21 조회수3,415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7년 7월 21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제1독서 탈출 11,10─12,14

그 무렵

10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에서

모든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기 땅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12,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9 그것을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복음 마태 12,1-8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였는지 너희는 읽

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신부님,
저는 유아세례를 받았고요.
제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성당에 다녔습니다.
 특히 중학생 때까지
성당 복사까지 섰다니까요.”
어떤 청년과 우연한 기회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듣게 된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이나 큰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가 지금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렇게 말해요.
“요즘에 너무 바빠서
그냥 주일미사만 간신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유아세례 받은 뒤부터라고
 했으니 30년 넘게 신앙인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있습니다.
하루에 2~3시간씩 10년을
투자하면 어떤 분야이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법칙입니다.
그렇다면 30년을 신앙인으로
살았다면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를 전혀 하지 않고,
성경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교리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어서
누가 물어보면 “나는 몰라.”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성당 안에서 어떤 봉사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이다 보니
30년을 신앙인이라는
타이틀만 달고 있었을 뿐,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냥 신앙이라는
틀 안에 한쪽발만 담가놓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 정도라도 어디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쪽 발만 담가놓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담가놓은 발을 들어서
 다른 곳에 옮겨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쉽게 자신의 신앙을 거부하고
세상의 흐름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비신앙인의 모습으로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면서
예수님께 강력하게 항의를 합니다.
즉,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다는 것이
항의의 원인이었습니다.
 별 것을 가지고 다 항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밀 이삭을 좀 뜯어 먹은 것이
뭐가 큰 죄일까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안식일 법을
확대 해석하고 있습니다.
밀 이삭을 뜯었으니 추수행위를
한 것이고, 먹기 위해서 비볐으니
 타작을 했다는 것이지요.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듣고
보고 자랐던 바리사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안식일 법을 제정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규제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쉼의 시간을 갖도록 해주시기 위한
 하느님의 큰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 근본적인 것은
보지 않고 확대 해석해서
죄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를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 사랑의 모범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곧 안식일의 근본 뜻이
사랑에 있음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사랑을 먼저
생각하는 참 신앙인으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겉으로만 그리고 말로만
 신앙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는
변화가 진정으로 필요합니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자는
누구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
(제롬 블래트너)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고 있을까요?
"은혜를 받으면"
(‘좋은생각’ 중에서)
1980년대 초반
 에티오피아에선 기근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1984~5년 사이에 극심한
가뭄이 이어져 피해가 컸다.
곳곳에서 에티오피아를 향한
지원이 쏟아질 무렵,
모두가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에티오피아가 재난 구호 자금
5,000달러를
멕시코로 보낸 것이다.
지진으로 피해 입은 멕시코
 국민을 위한 돈이었다.
“에티오피아가 돈을 보냈다고?
거꾸로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구호 자금을 보낸 이유는
멕시코에 진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1935년,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아 어려움에 처하자
멕시코가 기꺼이
원조한 적이 있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상호성의 효과’라고 부른다.
사람은 하나를 받으면
주려 하는 경향이 생긴다.
과학자 ‘에이블 에이베스펠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흥미로운
사건을 발견했다.
한 독일 병사가 적군을 생포했다.
혼자 빵을 먹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받은 상대는 당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든 빵을
독일 병사에게 주었다.
독일 병사는 얼떨결에
빵을 받아먹었다.
한데 빵을 먹고 나자 불쑥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배고픈 상황에서 먹을 걸
 나눠 준 마음에 감격한 것이다.
그 보답으로 그를 돌려보냈다.
 작은 빵 하나로
목숨을 구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차고 넘칠 때에만
남을 돕겠다고 말하지요.
그런데 차고 넘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늘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어렵고 힘든 상황이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때에 평소에 내가 아무런
나눔도 행하지 않았다면,
내 자신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손을
내밀어줄 누가 있을까요?
멋진 하늘만 바라봐도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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