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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23 조회수3,88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7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일

제1독서 지혜 12,13.16-19

13 만물을 돌보시는

당신 말고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는

불의하게 심판하지

않으셨음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16 당신의 힘이

정의의 원천입니다.

당신께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지니고 계시므로

만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17 정녕 당신의

완전한 권능이 불신을

받을 때에만 당신께서는

힘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오만한 자세를

질책하십니다.
18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19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제2독서 로마 8,26-27

형제 여러분,

26 성령께서는 나약한

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7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 마태 13,24-43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24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31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34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

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36 그 뒤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종종 제 글을 사용해도

 되냐는 문의를 받습니다.

그때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합니다.
“제 글에는 저작권이 없습니다.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오.”
창조자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단지

모방할 따름이지요.

 저 역시 글을 쓰고 있지만

완벽한 새로움은

없다고 봅니다.

젠가 읽었던 글의 내용,

누군가에게 들은 내용들이

내 삶과 연결되어서 묵상 글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종종 제 글에 이러한

댓글을 대시는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신부님, 어떻게 제 이야기를

 콕 집어서 하십니까?

제 얘기를 하시는 것 같아요.’
그분을 만난 적도 없고 따라서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 글에 공감을 느

끼는 것은 같은 시공간 안에

살면서 서로 비슷한 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인데 제가 감히

저작권을 어떻게 주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한 번은 어느 신자로부터

자기 본당신부님께서 미사 때

저의 묵상 글을 토씨(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읽는다는

 고발(?)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미사 내내 분심이

드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순간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좋은 글이라고 하면,

몇 번을 읽어도 또 다른

사람이 읽어도 좋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제 글에 분심이

드셨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글이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그 신부님을 미워할 필요도

 또 판단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늘 글이 별로라서

다시 듣는 신부님 강론이

와 닿지 않는구나.’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즉, 좋은 글이라 생각하면

또 들어도 좋다고

받아들이면 되고,

나쁜 글이라 생각되면

쿨하게 안 들으면 됩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면 결국

힘들어지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 속에 머물고 있는

‘나’ 자신일 뿐입니다.

왜 손해 보는 일을 스스로

나서서 하고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원수가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린 것이지요.

분명히 좋은 씨앗이었지만

가라지와 함께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가라지를 거두어 낼까요?”

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좋은 밀까지

뽑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수확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지요.

 그리고 가라지는 태워 버리고,

밀은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도 판단을

 뒤로 미루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판단은 어떠했을까요?

늘 재빨랐습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얼마나 재빠르게 이루어집니까?

사람에 대해, 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심판 날에 주님께서

 판단하시도록 두어야 합니다.

미리 판단하면 힘들어지는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지혜서는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라고 전해줍니다.

주님의 자비를 본받아

우리 역시 내 이웃들에게

자비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그의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적을 함께 봐야 한다.

(조셉 콘래드)

밀과 가라지와 보리입니다.

구별이 힘들지요?

"주님의 목소리 듣기"

다른 이들에게 비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십니까?

칭찬보다는 트집 잡는 것이

 더 쉽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래서 내게 트집과 비판을

과감하게 던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내가 응대를

하면서 싸우려들면,

그들의 트집과 비판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화를 내면서 맞서 싸우면

그들 역시 또 다른 논리로 더욱 더

거세게 내게 다가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처는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내가 얻는 이득을

생각해보십시오.
첫째, 화가 나지 않습니다.

 둘째, 쓸데없는 곳에 귀중한

내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잘 했어. 사랑한다. 힘들지?”

등의 말씀으로 계속해서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말과 행동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요?

사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성경 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이웃들을 통해서

이 주님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집니다.
세상의 판단을 무시하고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를 때,

당신은 이기고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지게 될 것입니다.

어제 조카 집 축복이 있었습니다.

축복식 후, 직접 만든

초계면을 맛있겠 먹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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