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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7.24 월/ 회개하여 주님을 알아보고 표징이 되는 삶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23 조회수3,498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16주 월, 마태 12,38-42(17.7.24)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41)





The demand for a sign





 

회개하여 주님을 알아보고 표징이 되는 삶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수많은 징표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메시아임을 증명해줄 표징을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12,39)라 꾸짖으시며 그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십니다. 그리고 요나의 표징밖에는 다른 표징을 받지 못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갔던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요나 3장). 그런데 유다인들은 요나보다 훨씬 위대하신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12,41). 또한 이방인인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먼데서 찾아왔습니다(1열왕 10,1-13). 그런데 유다인들은 솔로몬보다 훨씬 위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12,42). 따라서 그들은 단죄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질책을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심판 때에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먼데서 찾아온 이방인 여인의 단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이신 분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채 새로운 표징을 요구한 그들은 예수님의 책망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자비의 징표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믿지 않을 때 스스로를 단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곧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좀 더 능동적인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사랑에서 멀어진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절박한 것은 느네베 사람들과 같은 회개입니다. 따뜻한 사랑이 없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려는 열정도 진실한 마음도 없이 다른 이들에게 설교하고 하느님을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모릅니다. 회개하여 만나고 체험한 하느님을 선포할 때에만 복음이 선포되겠지요.

사실 우리 사회의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현실을 바라보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리는 과연 어디인지 자못 의심스럽습니다. 한마디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늘 함께 하는 교회, 아픔을 함께 겪어내는 신앙인, 언행이 일치된 사목자들, 정의를 위해 연대하여 투신하는 실천하는 신앙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한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과 같습니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위대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를 알아보지 못한 채 나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까? 또 혹시 율법에 안주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무디고 독선적인 틀에 갇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모두 죄에 대한 무감각과 회개를 미루려는 게으름의 잠에서 깨어나, 영(靈)의 눈을 뜨고 ‘지금’ 회개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피조물, 그리고 세상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도록 해야겠습니다. 이제 표징을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이웃에게 사랑과 생명을 쏟아 붓는 ‘살아있는 표징’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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