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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실까?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30 조회수2,790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모든 우화에서 흔히 그렇듯이

 

이 짧은 우화에는 도덕심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숨겨진 보물을 찾으면 그 보물은

 

발견한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상점 주인이 안식일에 쓰려고

 

돈을 더 많이 주고 생선을 샀는데

 

평생 놀고 살아도 남을 만큼 비싼 진주가 생선 뱃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 이 우화에서는 보물이 묻혀 있는 밭 주인을 속이는 것과

보물을 팔아 흥청망청 쓰다가 폐가(廢家) 망신(亡身)하는 것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지

 

그 보물의 가치와 발견한 기쁨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늘나라에서 느끼는 평화와 기쁨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외에는 상상에 맡기셨습니다.

 

 

 

미국의 여류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머틀 리드(Myrtle Reed, 1874-1911)가 말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정원지기로 알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서야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보고서야 믿어 왔던 사람들이

 

보고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듣고 나서 알아 본 것은 무척 아이러니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앞으로는 영원히 나를 보지 못하고

 

나의 목소리만 듣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시다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마르 8,29; 루카 9,18; 마태 16,13)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의 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무늬만 신자인지 아니면 영성을 애타게 찾고 있는 신자인지’,

 

그리스도의 제자인지’, ‘그리스도의 친구인지’,

 

성령을 입고 있는 사제인지 아닌지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을 돌이켜 볼 때마다

 

시간 낭비였다고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침묵하지 않아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무 밑에 앉아 나무에 대한 시()

 

나무에 대한 아름다운 말을 떠올리고 있다면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나무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나무를 알려면 아무 말도 말아야 합니다.

관상(觀想)은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상 중에는 어떤 말이나 선입관이 떠오르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려고 참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설명하고 싶은 대로 설명합니다.”

 

라틴어에서 관상(contemplation)’설명(explanation)’을 뜻합니다.

관상을 할 때에는 자신의 짧은 지혜로 진리를 설명하려고 들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로 끝나는 수가 많기에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지혜라는 말을 더 즐겨 사용했습니다.

 

 

 

곤경에 처해있을 때 친한 친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처해있는 처지를 정확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도 불충분하게 마련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설명을 한다는 것은 덜 떨어진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억지로 주입시키려는 행위인지도 모릅니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지혜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끼리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엇은『네 개의 사중주』<번트 노튼(Burnt Norton)>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서만 말이 움직이고, 음악이 움직인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만이 죽을 수 있다.

 

말이 끝난 다음에는 침묵이 흐른다.

 

중국 자기(瓷器)가 고요함 속에서 영원히 움직이듯이

 

말이나 음악은 오직 형상으로써만 고요에 이른다.

 

바이올린 연주를 멈추어도 악보는 존속하며 공존하고 있다.

 

즉 끝이 시작 앞에 있었지만 끝과 시작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지금은 영원히 계속된다.

 

 

 

언어는 시간의 중압(重壓)에 못 이겨

 

긴장하고, 금이 가고, 깨어지기도 한다.

 

긴장에 못 이겨 마지못해 움직이지만 미끄러지고 사라지며,

 

부정확하여 쇠약해지고, 제 자리에 있지도 못하고,

 

고요히 머물러 있지도 못한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꾸짖거나, 조롱하거나,

 

또는 재잘거리기만 하면서

 

항상 말을 공격한다.

 

광야의 말씀도

 

유혹의 목소리들과 저주에 찬 울부짖는 그림자와
위로할 수도 없는 괴물의 통곡소리의 공격을 가장 많이 받았다.

 

형상(形像)은 움직임들로 알아차릴 수 있다.

 

욕망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움직임이다.
사랑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 시간적이며 무욕(無慾)

 

움직임의 원인이며 목적일 뿐이다.

 

사랑은 시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존재와 비 존재 사이에 있는

 

극한(極限)의 형상(形像)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먼지가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 한줄기 빛 속에 홀연히

 

무성한 수풀 속에 있던 어린이들의 숨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빨리 지금 당장, 여기, 지금, 영원히,

 

앞과 뒤로 이어져 있는

 

텅 빈 구슬픈 시간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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