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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신부님복음묵상(보물을 찾은 사람은 기도할 줄 안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31 조회수3,645 추천수3 반대(0) 신고

 

요셉신부님복음묵상

2017년 가해 연중 제17주일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복음: 마태 13,44-52

2017년 가해 연중 제17주일

"보물을 찾은 사람은

기도할 줄 안다."

<명품의 탄생>

의 저자 이광표는

 예술작품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예술가의 손에서,

또 한 번은 그것을

느끼고 향유하는 사람,

즉 감상자나 컬렉터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라고 했습니다.

작품이 있어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 작품은 모독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소개하려 했던

세례자 요한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마태 11,12)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든 그 가치를

알게 된다면 그것을 위해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됩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조선의 수많은

보물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벽지로 사용되거나 일본인들에 의해

약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정면으로 맞서 혼자 국보 12

보물 10점이나 되는 엄청난 민족의

보물들을 수집한 인물이 있습니다.

간송 전형필(1906-1962)

이라고 하는데

나라도 없는 주제에!”라고 던진

 일본인의 한 마디가 등에 박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문화재를

지키는 일로 잃어버린 나라를 위해

무언가라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제일가는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재산을 물려받아 조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모든

문화재들을 사들였습니다.

 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이

1,000원이었는데 10,000원을

주고 사온 것은 달랑

낡은 그릇 하나였습니다.

그는 1,000원만 주고

가져가라는 물건이 있어도

 그 값어치를 봐서 10,000

주고 샀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재산,

논 일만 마지기를 모조리 팔아

일본에 건너가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의 문화재들을

다시 사왔습니다.

그가 모은 문화재는 고려청자,

 조선 백자를 비롯하여,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수많은 나라의 보물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간송이 가장

아꼈던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이었습니다.

 당시 언어 말살 정책에 의해

한글이 몽고 말을 베낀 것이다,

혹은 문 창살 무늬로 창안해서

만든 것이라는 소문 등이

퍼졌었지만 그가 지니고 있던

훈민정음 원본에 의해 한글의

자음들이 인간의 구강구조의

모양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져 우리 언어의 우수성이

다시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훈민정음 원본을 잃지

않기 위해 6.25 피난 당시 항상

가슴에 지니고 다녔고 베게 밑에

두고 잤다고까지 합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그만큼

지불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내가 그것을

위해 얼마나 투자할 수

있느냐가 결정됩니다.

민족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모든 재산을 다 써버렸던 간송

전형필에 비해,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오늘 밭에 숨겨진 보물

비유는

 좋아하지 않으면 안 준다

명확한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는

그저 돌덩이일 뿐입니다.

그 가치를 안다면 세상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것이

무엇이 힘드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강의를 하다보면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안 될 때는 대부분

저의 준비가 부족해서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졸거나

거부하는 표정을 보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납니다.

그냥 대충 할까?’

그러면서 찾는 사람은

그래도 개중에 눈이

초롱초롱한 사람입니다.

나의 말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을 보며 준비해

온 것을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제 강의가

무의미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 소중한

보물인 하늘 나라를

주시는데 아무 관심도 없는

이들에게 분별없이

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하늘 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라면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

(로마 14,17)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하느님 자신을 내어주셔서

우리 안에 이루시는 행복이

하늘 나라인 것입니다.

 야곱이 야뽁강에서 축복을

 달라고 청하는 장면이

천사와 밤새 씨름하며

정강이뼈까지 부러지는

이야기로 표현됩니다.

이는 하느님도 인간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을 조금은

꺼려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청을

거부하시며 처음엔 포도주의

기적을 원치

않으셨던 것과 같습니다.

포도주란 결국 그리스도의

피이고 그래서 성모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하늘 나라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주어지는 참다운

 보물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그분께서 주시는 보물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보물을 찾는 밭이란 성령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을 만나는 밭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밭에서 우연히

발견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그 사람은 그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밭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께서 성령을 내려주신

밭은 바로 교회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며

죄를 용서해 주라고 하셨고,

또 성령강림도 당신이 세우신

교회에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밭에 묻힌 보물에

관련된 사람은 이미 교회에

열심히 나오며 그 교회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밭에 묻힌 보물은

찾으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머물다보면

 우연히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원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가게 된 피정을 통해서,

혹은 어떤 사람은 소공동체

모임을 하다가도 만나게 됩니다.

아니면 그냥 성체조배 중에

성령의 엄청난 은총을 체험하며

황홀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 단 한 순간이라도

그렇게 하늘 나라의 행복을

맛 본 사람이 하게 되는

행동은 무엇일까요?

그 사람은 다시 그 순간의

행복을 맛보기 위해

어떤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내리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려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끊어야합니다.

 만약 성령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맛보았다고 한다면 세상의 기쁨들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안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아직

하느님 나라를 만난 사람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비오는 밤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번개가 한 번 번쩍이면

가야 할 길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본 길을 더듬어 가게 됩니다.

번개가 치는 때가 보물을 만난 때고

길을 더듬으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 길을 찾는데 사용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기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성인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 상당한

유산을 남겼지만 부자 청년처럼

되지 않기 위해 가진 것을 하느님

나라를 위해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간 곳이 사막이고

빵과 물과 소금으로 평생을

 기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수도원의 기원이

시작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물고기를 많이 잡게 된 것이

바로 보물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분을 떠났다면

그는 그 보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따랐고

항상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것,

이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구하고 청하고

두드리면 반드시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성령을 통하여 누리게 된

하느님 나라를 체험했는데

어떻게 구하고 청하고 두드리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하느님 나라가 무엇인지 모르고

발견하지도 못한 것이거나

아니면 발견했더라도

그 가치를 몰라 그냥 묻어두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밭을 가는 일 자체가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데 주님을

만났다는 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사 시간에,

어떤 사람은 성체 조배시간에,

어떤 사람은 피정에 가서,

어떤 사람은 소공동체에 가서,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다가,

어떤 사람은 영성서적을 읽다가

하늘 나라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만났기에

물고기를 많이 잡는 기적을 체험했고,

안토니오 성인도 성경말씀을

듣는 때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결국 하늘 나라는 기도하는

이에게 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합니다.

우선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기도를 합시다.

그러면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기도를

멈추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기도보다 소중한 시간은 없어질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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