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마태복음 6,19-21 ;25-34의 해설
작성자김철근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2 조회수3,937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태오619-21절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루카 12,33-34)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이 말씀은 여러 부류로 말씀을 전할 수 있는데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루카복음 1216-21절의 말씀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 하다 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루카복음 1233절에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마련 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 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 한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서 집회서29,12절에서는

네 곳간에 자선을 쌓아 두어라

그것이 너를 온갖 재앙에서 구해 주리라

자선은 튼튼한 방패와 단단한 창 이상으로

너를 위해 원수와 맞서 싸워 주리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집회서 330절에서는

물은 타오르는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고 하셨으며

잠언19,17절에서는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 드리는 이

그분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웃이고 가난한자 입니까?

우리는 자선을 베풀라,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라 하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 우리는 이상한 속담이나 격언을 빌미로 자신을 정당화 시킵니다

그러한 예를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5,5과 마르코복음 7,11절에서

아버지나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을 하느님 핑계를 대면서

하지 않는 것을 예를 들어 말씀 하시면서 너희의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 하는 것 이라고 경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좋은 전통을 좋지 않은 해석으로 하는 예를 봅시다

 

형제간에 친구 간에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합니다

원래 하느님께서는 형제를 세상에 내 보낼 때 서로 도우라고

같은 부모 아래 보내 준 것입니다,

그래서 7명의 자녀를 두어도 모두 다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형제지간에 돈놀이를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형제간에는 돈 놀이를 하지 말고 그냥 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들은 이것을 악용하여 돈 이야기를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거절하기는 어렵지만 눈을 감고 외면하는 것이

결국 서로에게 좋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형제뿐 아니라 자기 이웃들에게도 잘 대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경주 최씨 부자의 예를 본다면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만석 이상의 소출은 사회에 환원해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혀라 하면서

이웃들을 배려 하면서 명문가를 유지 하였고

 

1739-1812년 조선 정조때에 제주도에서 장사를 하며 살았던

김만덕 이라는 여인은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양민들이 다 굶어 죽게 되자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을 구입하여 구호식량으로 내어 놓아 

굶어 죽어가는 양민들을 살려 조정에서 상과 의녀라는 벼슬을 내리고

제주도에 사는 이들은 절대 육지로 나올 수 없다는 국법을 정조대왕이

풀어주어 그녀의 소원대로 금강산을 구경하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그녀를 우리 모두는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의 부모 형제뿐만이 아니라

이웃 까지도 잘 베풀고 보살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요즈음 한 가족이 차를 몰고 한꺼번에 강물로 내달려

자살하는 이야기들을 뉴스를 통해서 듣습니다,

대 부분이 생활고를 비관해서 동반 자살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부모나 형제나 친구들이 돈놀이를 하지 않고 도와 주었다면

과연 그들이 동반 자살하여 죽었겠습니까?

과연 부모 형제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죽었다면

돈이 자식이나 형이나 누나보다 동생보다 그렇게 더 중요했단 말입니까?

 

왜 자신이 나온 학교나 자신이 가입되어 있는 클럽에는 장학금이나

기부금을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몇 억도 척척 내면서

자신의 동생이나 누이들이 돈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매정하게 형제지간에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말도 못하게 하십니까?

왜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나 개들이 아프거나 다치면 수 백만원씩 들여서

고치고 수술해주면서 형제간이 아플 때는 외면해야 합니까?

그 고양이나 개들이 주인에게 감사하다며 갚아 주십니까?

그 돈으로 잘 살지 못해 고등학교나 대학 등록금이 없어 애 태우는

조카에게 장학금식으로 내어 주시면 안 되는 것입니까?

남들이 거의 다 가는 학원을 돈이 없어 못가는 조카에게 학원비 한번

대 주시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하면 그 조카가 얼마나 좋아하고 감사하겠습니까?

한때 그렇게 도와주시면 그 조카는 평생 그 아저씨 고모 이모 할아버지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느님을 믿는 백성이라면

하느님께 기도라도 바쳐드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행동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실천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것을 실천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거지가 없다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유태인들은 8가구에서 15가구 정도 되면 랍비를 모시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모임 중에서 어떤 이가 천재지변이나 또는 어떤 일로 인해서

망하게 된 가정이 생기면

그 망한 사람을 불러 사유를 듣고 회생 할 수 있는 방안을 듣는다 합니다

그리고서는 다른 사업을 하든 어떤 사업을 하던지 간에

필요한 자금을 그 공동체들과 협의하여 도움을 받아 아무런 조건 없이

빌려준다고 합니다,

단지 조건이 있다고 하면 네가 힘 들 때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었으니

네가 성공하면 너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는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3번까지 도와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이상 실패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은 우리나라 어떤 사람이 2년 전에 1억을 아무런 조건 없이

이자도 받지 않고 빌려준다고 컴퓨터에 올렸더니 몇 만명이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국 어떻게 처리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거지가 없다는 것 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내 이웃에서 굶어죽는 사람이나

내 친척과 내 친구 중에서 돈이 없어 자살하는 없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도와줄 때는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말 그대로 주십시오

그때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아멘 !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이 말씀은 두 마음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24절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며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이 말씀은 신명기6,13절을 들어보게 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하느님을 섬겨야하는데

하느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말의 뜻은 무엇 이겠습니까?

국어사전을 보면 섬긴다는 말은

윗사람이나 어른을 모시어 받들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곧 이 말은 하느님을 모시고 받든다는 말입니다

곧 하느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수 있습니까?

나 자신이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면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가 온전히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좋아하는 것만을 하고 싫어하는것을 하지않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무엇을 하든 제일먼저 사랑하는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곧 내 인생의 모든일에서 제일 우선순위로 하느님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젊을 때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주고 싶고

멋진 옷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사주고 싶고

내 멋진 모습과 표정이 그 사람이 기뻐하면 좋겠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곳을 가려고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려하고

늘 항시 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모든 일의 첫 자리에

예수님을 생각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내 인생의 첫 자리에 놓는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늘 기쁘고 늘 마음이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돈이나 명예, 또는 권력에 놓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가장 최우선으로 하는 돈이나 명예, 권력은

한때 만족이나 행복을 줄지는 모르나 영원하지 않고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느님을 우선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625-33절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루카 12,22-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결국 이 말씀도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라는

이런 세상적인 문제에 얽히지 말고 먼저 네가 구해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 와 하느님의 뜻을 알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네 인생의 최우선으로 삼지 말고

하느님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네가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너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 환경과 힘을 너에게 마련해 주실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나 과거가 아닌 현재 이 순간

바로 오늘 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 우리에게 한 치의 앞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쓸데없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걱정하며 살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으로도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blog.naver.com/bedori12  성모님(말씀으로 본)바로알기 사이트 마태오6,19-33해설 중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