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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6 조회수2,76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제1독서 다니 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제2독서 2베드 1,16-19

사랑하는 여러분,

 16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17 그분은 정녕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존귀한 영광의

하느님에게서,

 “이는 내 아들,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하는 소리가 그분께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18 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19 이로써 우리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복음 마태 17,1-9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아침에 양말을 신을 때면

 가끔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왜냐하면 예전의 기억이 하나

떠올려지기 때문이지요.

벌써 20년 전의 일이네요.

당시에는 신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 테니스를 치다가

갑자기 허리의 큰 통증을

느끼면서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허리를 조금도

 움직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심

지어 양말도 혼자 신을 수가

없어서 같은 방을 쓰는

동창신부가 허리가 나을 때까지

양말을 직접 신겨주었습니다.

스스로 양말을 신을 수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양말을 신을 때,

그때의 기억이 나면서 저절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려다 볼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올려다

보려고만 하지요.

 즉,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늘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지요.

특히 성공에 집착하는

사회이다 보니 평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평균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전 세계 인구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대단한 것이 아닐까요?
하루에 1,500원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이

30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상에서 맑은 물을

구경조차 못하는 사람이

7억 8,300명에 달합니다.

그래도 잘 산다고 하는

미국에서만도 대도시의

길거리에서 추위와

싸워야 하는 노숙자가

75만 명에 가깝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내려다보면 분명히

 내 자신이 행복한

존재라는 사실,

그래서 감사할 이유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을 기리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함께

그 옆에 있는 모세와 엘리야를 본

 제자 중의 대표격인 베드로는

그 자리가 너무나 좋았나 봅니다.

하긴 당시의 전교여행으로

무척이나 피곤했겠지요.

더군다나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이에 따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복잡한

세상을 뒤로 하고

영광스러운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어서, 초막 셋을 짓

겠다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만

머물려는 제자들을 향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님의 말씀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말씀이었습니다.

올려다보는 사랑이 아닌,

내려다보는 사랑이었습니다.
내려다보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비로소 주님의

거룩한 변모의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즉, 어렵고 힘들어하는

나의 이웃에게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당신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

텅 빈 공간만을

발견할 것입니다.

(앨런 코헨)

주님의 거룩한 변모 성당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공부하려고 파견된

수녀님께서 학위를

받기로 한 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의 순간,

수녀님께서는 원장

수녀님께 물었습니다.
“왜 이토록 빨리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시죠?”
원장 수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녀님의 일이 아니라

수녀님을 바라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수녀님께서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죽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았는가에 따라

심판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일

자체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성당의 지하 성당.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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