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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806 - 가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6 조회수3,199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7
08 06 () 가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복음 묵상


다니엘서 7,9-10.13-14
베드로 2 1,16-19
마태오복음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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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다니엘서 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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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독서


▥ 베드로 2 1,16-19

사랑하는 여러분, 16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17
그분은 정녕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존귀한 영광의 하느님에게서, “이는 내 아들,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하는 소리가 그분께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18 우리도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19
이로써 우리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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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17,1-9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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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06일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실 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말하였습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2). 실망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알아챈 예수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갖고 계신 당신의 영광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타볼 산에 올라 기도하시자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변화하였습니다. 다니엘은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대해,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완성하시는 분이심을 모세와 엘리야도 증언합니다. 빛나는 구름 사이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증언은 예수님의 신원을 결정적으로 확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실 때 세 명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 때까지, ‘거룩한 변모’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그만큼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신비한 사건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권능과 재림을 신자들에게 주지시키면서, “그 거룩한 산에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고 목격담을 전해 줍니다.
우리는 고통과 희생 없이 영광만을 바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주님의 십자가를 충실히 따를 때 우리가 받는 영광에 대해 알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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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06일 토요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다니엘서 7,9-10.13-14
루카복음 9,28-36


오늘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복음에서처럼 예수님께서 빛나는 존재가 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고 마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그 죽음을 끝내 이기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미리 알려 주고 있지요.
또한, 그 자리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두 사람은 구약의 모든 예언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이미 구약 시대 때부터 예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요
그런데 베드로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영광의 자리에만 머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없는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역시 이런 유혹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지요. 고통과 희생 없이 영광만을 맛보려 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만큼 하루하루 많은 십자가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날의 고통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요.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느님께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역시, 이런 덧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끝나고 말 것이 아니라, 언젠가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고통을 함께 나누시며, 우리의 삶에 동참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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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06일 목요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다니엘서 7,9-10.13-14
마르코복음 9,2-10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세 제자가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그들만이 높은 산에 올라 예수님의 변모를 보았습니다. 새하얗게 빛나는 그분의 옷을, 그분의 신성을 보았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변모는 실상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본디 지니신 모습을 그대로 계시하시는 것이었고, 언젠가 온전히 드러날 당신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평소에 보아 온 그 모습이, 인성 안에 당신 신성을 감추시고 당신의 찬란하심을 가리신 모습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공생활 동안 그들이 보았던 기적도, 가르침도, 군중이 그분을 따르는 것도, 그분이 본디 지니신 영광의 찬란함에 비하면 모두 희미하고 초라할 뿐입니다.
우리도 그분의 참모습을 아직 뵙지 못하였기에 그 제자들을 부러워합니다. 셋째 하늘에까지 올라갔던 바오로 사도 또한, 지금 우리는 그분을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볼 뿐이고 그분을 부분적으로 알 뿐이라고 고백합니다(1코린 13,12 참조). 그래서 그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날을 갈망합니다. ‘세 제자 앞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주님, 당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때 저희를 당신 모습으로 변모시켜 주소서!
이어서 거룩한 모습을 보여 주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찬란한 모습을 본 제자들도 영광의 타보르 산에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곳은 영광보다는 고통과 시련이 기다리는 현장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일상과 세상을 사랑이 충만한 곳으로 거룩하게 변모시키고자 우리도 주님께서 맡겨 주시는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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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06일 수요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다니엘서 7,9-10.13-14
마태오복음 17,1-9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세 가지 대목에 집중해 보았습니다. 먼저 주님께서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시어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대목입니다. 두 번째로는 빛나는 구름 사이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실 때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날 때까지, 그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시는 함구령입니다.
이 대목들에 머무르면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에 대한 묵상은 ‘초월’과 ‘추종’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참된 체험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높은 산에 오르심은 우리가 하느님의 초월성에 대한 경외심과 그것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함을 상징합니다. 그 길은 우리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몸소 이끄신다는 점도 알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당신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 주셨다는 대목에서, 초월은 우리의 의식과 감정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드러남’에 나를 내어놓는 것을 뜻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초월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베드로의 말에서 느낄 수 있는 황홀한 도취나, 제자들이 보여 준 두려움이 아닙니다. 바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하늘의 소리에 대한 조건 없는 ‘추종’입니다. 추종의 태도만이 초월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며, 초월의 체험을 왜곡 없이 간직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추종의 삶이 강박이나 자기기만이 아니려면 ‘초월 체험’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리신 함구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새겨 볼 수도 있겠습니다. 초월의 체험이 추종의 삶으로 열매 맺고 추종의 길이 초월을 내적 근원으로 삼을 수 있으려면 반드시 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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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06일 화요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다니엘서 7,9-10.13-14
루카복음 9,28-36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예수님께서 변하셨습니다. 그 변하신 모습이 평소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고 특별하여 우리는 이를 ‘거룩한 변모’ 또는 ‘영광스러운 변모’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변모’는 예수님의 본디 모습입니다. 천상에서부터, 영원에서부터, 태초부터 이미 지니셨던 그분의 참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다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인마처럼 보이는 자도 있고, 천사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빛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둠의 그늘 속에 파묻힌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탐욕에 젖어 정신없이 바쁜 모습을 지니는가 하면,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닌 가장 근본적인 모습은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본디의 모습으로 거룩하게 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도 ‘거룩한 변모’를 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복음 말씀을 되새겨 봅시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예수님에게서 그분 본연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때가 언제였습니까? 바로 기도하실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거룩하게 변모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겉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옷도 화려한 것을 입고, 화장도 열심히 하며, 심지어 얼굴을 뜯어고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의 가장 고유하고 근본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지니는 거룩함입니다. 그 모습은 바로 기도하는 동안에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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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06일 월요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다니엘서 7,9-10.13-14
마르코복음 9,2-10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오르시자 얼굴 모습이 변하시고 옷은 새하얗게 빛났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엘리야는 예언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을 완성하시는 분이심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의 시대, 곧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왔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평지가 일상생활을 나타내는 곳이라면, 산은 외딴곳으로서 하느님을 만나는 좋은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산으로 가시어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하나가 되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느님을 닮아 거룩하게 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러 외딴곳으로 피정을 하러 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고 그분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을 닮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신 것도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밖의 태양 빛을 받아 성당 안을 아름답게 비추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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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06일 토요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다니엘서 7,9-10.13-14
마태오복음 17,1-9


한 그루의 나무, 그냥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나무에게 나이를 물어보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물어보십시오. 그 옛날 어느 때인가 한 작은 씨앗으로 생겨나 여기 이 땅에 터를 잡았던 그 사연을 물어보십시오. 긴 세월 동안 스쳐 갔던 밤과 낮, 비와 눈, 바람과 이슬, 계절의 변화 겹겹이 품고 있는 나무의 모든 이야기를 물어보십시오.

발끝에 부딪히는 돌멩이 하나, 그냥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돌멩이에게 나이를 물어보고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보십시오. 수억 년 그 땅속 깊은 곳에 굳어지고 굳어져 저 산꼭대기 우뚝 바위로 솟아올라 당당했던 시절의 이야기, 비바람에 깎이고 깎여 여기 한 덩이 돌멩이가 된 사연을 물어보십시오.

스쳐 지나가는 사람, 그냥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그가 존재하고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헤아려 보십시오. 태초부터 지금까지 점점이 이어져 온 사람들을 거쳐 여기, 오늘 지금 만난 이 사람이 왜 나와 함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그의 삶을 듣고 그를 있게 한 역사를 듣고 그를 있게 한 시원(始原)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를 빚어 만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그 무엇도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가난한 떠돌이 예수님 그 안에 타보르 산에서 보았던 황홀한 세계가 있듯, 보이는 것 그 깊은 곳에 눈부신 부활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주 만물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생겨났고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으니, 그 깊고 깊은 곳에는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

나무는 저 깊은 곳에서 하늘 나라의 숲이 되고, 돌멩이는 저 깊은 곳에서 하늘 나라의 산이 됩니다. 내가 만난 사람은 저 깊은 곳에서 하늘 나라의 영원한 친구가 되고 보이는 것 모두 다 저 깊은 곳에서 영원한 하느님 나라가 되니, 세상에서 만난 모든 것 모든 이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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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06일 금요일)

다니엘서 7,9-10.13-14
루카복음 9,28-36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영원한 삶, 곧 부활의 표지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수행하고 계시는 사명을 중단하자고 요청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시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누구신지를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살아 계신 분이시며,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모든 존재는 그분에게서 생명력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의 온갖 죄와 죽음의 사슬을 끊어 버리시고 우리를 다시 생명으로 부르실 분이십니다. 그러시기에 앞서 먼저 십자가를 지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제자들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우리는 어떠합니까? 영광과 평안을 찾기 전에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걸어갈 준비는 되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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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06일 목요일)

다니엘서 7,9-10.13-14
마르코복음 9,2-10


‘마전’은 옷감을 희게 한다는 옛말입니다. 흔히 피륙을 바랜다고 하지요. 피륙은 무명베나 비단 같은 것을 말합니다. 삶거나 빨아 볕에 쬐어 ‘희게 하는 작업’이 마전입니다. ‘마전장이’는 이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지요. 예수님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라고 오늘 복음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이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의 의복을 입으셨다는 표현입니다. 그곳에는 ‘엘리야’와 ‘모세’도 등장합니다. 역시 천국에 계시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제자들에게는 완벽한 하늘 나라의 체험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놀랍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잠시라도 ‘천상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앞으로 어떤 사건을 만나더라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변모 사건’은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몰랐을 뿐입니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청년들의 모습에서, 가족들의 모습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는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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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06일 수요일)

다니엘서 7,9-10.13-14
마태오복음 17,1-9


하느님께서는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모든 존재는 그분에게서 생명력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리를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강렬한 느낌은 없습니다. 나날이 생명력을 주시는 분이신데도 뚜렷한 감정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막연히 하늘에 계신 분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니 계신 데 없으시고’ 모든 사람 안에 계신다고 하지만 감각적인 깨달음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힘을 느끼고 부딪혔던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수없이 만나고 함께하면서 경험하였지만 그냥 지나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세계 밖에 존재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건 감싸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무들을 감싸고 새들을 감싸고 들판의 풀들과 미물(微物)까지도 감싸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변모에만 놀란 것이 아닙니다. 만물 안에 숨겨진 창조주의 모습을 비로소 깨달았기에 감동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변모 사건은 은총입니다. 제자들에게 드러내신 그분의 사랑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주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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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06일 월요일)

다니엘서 7,9-10.13-14
루카복음 9,28-3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당신의 모습을 바꾸십니다. 현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그분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스러웠을까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드러내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내다보셨습니다. 제자들의 방황도 함께 보셨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천상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당신이 수난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더라도 좌절하지 말라는 의도였습니다. 당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처럼 생명의 나라에 있을 것이라는 암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스승의 격려와 위안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체험이 없을까요? 인생에서 낙심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개입하신 사건은 없을까요? 누구에게나 은혜로운 일은 있기 마련입니다. 고통으로 시작되었다가 유익함으로 마감되는 일들입니다. 주님의 개입 없이 그러한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님을 믿는 이에게 즐겨 드러내시는 당신의 변모 사건인 것입니다.

은총은 예고 없이 내리고, 생각지도 않은 때에 함께합니다. 꾸준한 기도와 작은 선행이 결정적 순간에 은총을 모셔 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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