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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에는 과연 정답이 없는 것일까?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6 조회수2,882 추천수1 반대(0) 신고

물론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생에 정답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느님 모습으로서의 사람(capax dei)’으로 태어났지만 타락하고 말았으나

 

다시 하느님 모습으로서의 사람(capax dei)’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의 꼬락서니를 알아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아 자신의 참 모습을 모르고 살다가 죽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인 필록테테스(Philokt?t?s)

 

고통과 시련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뱀에게 물린 상처와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불행과

 

이 섬에서 겪어야 했던 처절한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마치 짐승처럼 생각도 없고 근심걱정도 없었을 것이다.

 

고통이 내 영혼을 휘어잡아 깊은 고뇌에 빠뜨렸을 때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되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 모습으로서의 사람(capax dei)’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태어나서부터 한평생 배우고 수행(修行)하며 성숙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최상의 가치는 자기 자신이고 곧 자신의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고 돈, 지식, 명예보다 자신을 제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곧 자신의 내면을 귀하게 여기고 회개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가면과 역할들에 가려져 살고 있는 수가 많습니다.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것은

 

감추고 싶은 자아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포함해서

 

자신의 인간적인 자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 내어

 

원래 대리석에 들어있던 조각상을 꺼냈을 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대답과 같이,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불필요함을 버림으로써

 

온전한 자신을 꺼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바람직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하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하며 우리 목적을 이루는 삶

 

곧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 영광과 권능을 드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신 모든 일을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모든 역사(役事),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기를 예수님 안에서 간절히 바라는 일,

 

예수님의 치유능력을 깨닫는 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영광과 권능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가난, 우리의 연약함, 예수님 앞에서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당연히 자신의 소유, 지식, 명예로

 

하느님께 영광과 권능을 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 됨됨이로 하느님께 영광과 권능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당면하고 귀한 것은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여 하느님나라의 희망을 안고 사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자리를 지니려면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 다음 네 단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들음(audients)’입니다.

 

복음적 침묵 가운데서 온 존재와 인격을 다해듣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피조물의 소리와 형제자매들의 인격을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깨달음(intelligunt)’입니다.

 

이는 지식을 통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성령의 이끄심에 의한 영적 직관에 의해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깨달음은 말씀을 깊은 묵상과 기도의 정신 안에서

 

문자 그대로 자신 앞에 두고 사랑으로 기다릴 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말씀을 명심(銘心)하는(retinent) 입니다.

 

여기서 명심한다는 것은 자신이 의지나 지성적 판단에 의해 획득한 것을

 

계속해서 지니는 것이나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마음 밭에 하느님께서 뿌려주신 말씀의 씨가 자라나도록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채 말씀을 되새기며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끝으로 인내하면서(in patientia) 말씀의 열매를 맺는 것(fructum afferunt)’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 앞에서 이런 네 단계에 집중하여

 

말씀과 깊은 인격적 관계를 맺고 내면화하여야 합니다.

 

 

 

옛날의 열쇠는 크고 무거워서 어깨에 메고 다녔습니다.

 

(이사 22,22;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그러나 오늘날의 열쇠는 아주 작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즉 예수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살아계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곳에 계시다고 믿는 것입니다.

 

나그네나 죄인이나 제3자의 눈에는 예수님이 잘 보입니다.

 

열쇠는 닫는 데에도 쓰이지만 여는 데에도 쓰입니다.

 

자신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먼저 활짝 열어야 합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 식사 때에

 

엘리야를 위하여 빈 의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다시 돌아와서

 

메시아가 오시도록 준비해줄 것을 기대하고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행(慣行)은 두 구약성경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엘리야가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며(2열왕 2,11),

 

두 번째는 엘리야가 다시 돌아와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도록 준비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입니다(말라 3,23).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세례자 요한이라는 사람으로

 

올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의 목사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 1926-2015)가 말했습니다.

 

“아무 결점 없이 하려고 하다가 아무 일도 못하는 것보다

 

불완전하더라도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불완전하더라도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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