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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0807 -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06 조회수2,652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08 07 () 가해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가예타노 사제 기념일)

민수기 11,4-15 / 예레미야서 28,1-17
마태오복음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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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민수기 11,4-15

그 무렵 이스라엘 자손들이 4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5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6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 보이는 것은 이 만나뿐, 아무것도 없구나.
7
만나는 고수 씨앗과 비슷하고 그 빛깔은 브델리움 같았다. 8 백성은 돌아다니며 그것을 거두어서,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빻아 냄비에다 구워 과자를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과자 맛과 같았다. 9 밤에 이슬이 진영 위로 내리면, 만나도 함께 내리곤 하였다.
10
모세는 백성이 씨족끼리 저마다 제 천막 어귀에 앉아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대단히 진노하셨다. 모세에게도 그것이 언짢았다. 11 그래서 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당신의 이 종을 괴롭히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의 눈 밖에 나서, 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십니까? 12 제가 이 온 백성을 배기라도 하였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하였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당신께서는 그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유모가 젖먹이를 안고 가듯, 그들을 제 품에 안고 가라 하십니까?
13
백성은 울면서 ‘먹을 고기를 우리에게 주시오.’ 하지만,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14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15
저에게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제발 저를 죽여 주십시오. 제가 당신의 눈에 든다면, 제가 이 불행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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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 28,1-17

1
유다 임금 치드키야의 통치 초기 제사년 다섯째 달에, 기브온 출신의 예언자이며 아쭈르의 아들인 하난야가 주님의 집에서 사제들과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에게 말하였다.
2 “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기로 하였다. 3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곳에서 가져가 바빌론으로 옮겨 놓은 주님의 집 모든 기물을, 내가 이곳에 다시 돌려 놓겠다.
4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유다의 모든 유배자를 이 자리에 다시 데려다 놓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정녕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겠다.’”
5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가 사제들과, 주님의 집 안에 서 있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6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였다. “아무렴,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소! 주님께서 당신이 예언한 말을 실현시키시어, 주님의 집 모든 기물과 모든 유배자를 바빌론에서 이곳으로 옮겨 주시기를 바라오.
7
그러나 이제 내가 당신의 귀와 온 백성의 귀에 전하는 이 말씀을 들어 보시오. 8 예로부터, 나와 당신에 앞서 활동한 예언자들은 많은 나라와 큰 왕국들에게 전쟁과 재앙과 흑사병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였소. 9 평화를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가 참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드러나는 것이오.”
10
그러자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내어 부수었다. 11 그러고 나서 하난야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모든 민족들의 목에서 벗겨 이와 같이 부수겠다.’”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기 길을 떠났다. 12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부순 뒤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13 “
가서 하난야에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고, 오히려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 14 참으로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모든 민족들의 목에 쇠 멍에를 씌우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길 것이다. 나는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넘겨주었다.′’”
15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하난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17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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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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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07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가예타노 사제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물러가 쉬고자 하셨습니다. 가까운 친척이자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더 깊이 준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한적한 곳에서 침잠하고자 하신 예수님의 의도와는 달리 군중은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몰려드는 백성을 가엾이 여기시며 군중이 먹을 빵을 걱정하셨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백성에게 먹일 빵과 고기 걱정으로 짓눌린 나머지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였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시며 빵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육신을 살리는 빵을 주시는 것에 그치지 않으시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자 준비하셨습니다.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성찬을 ‘빵의 기적’을 통해 준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구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준비할 작은 정성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의 작은 정성으로 커다란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우리의 봉헌을 구원 사업의 큰 도구로 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미약한 우리의 선행과 기도도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질 때 세상을 구원할 양식이 됩니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도 주님의 은총으로 나날이 성장하며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로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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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01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이에 머물지 않고 허기진 군중에게 빵을 나누어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육신적 아픔, 배고픔까지 모두 해결해 주시기 때문이지요.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셨다는 점입니다. 측은한 마음이 드셨기에 병자들을 고쳐 주고, 배고픈 군중을 한곳에 모이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제자들은 군중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서 먹도록 했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라고 이르셨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런 관심과 배려가 있으셨기에 빵을 모두 배불리 먹게 된 것이 아닙니까?
우리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깊어가고, 나눔을 실천하기를 꺼립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공동체는 가진 것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아픔마저도 함께 나누는 공동체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으셨기에 모든 이가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랑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지요.
이웃과의 관계에서 매사에 깊은 관심을 두는 것이 사랑의 기적을 만드는 출발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길가의 돌이 보석으로 변하는 식의 기적을 바라기보다는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내어 주는 나눔의 기적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처럼, 힘든 처지에 놓인 이웃을 늘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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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03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것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대단히 진노하셨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만나와 메추라기에 관하여 전하는 또 다른 성경 본문인 어제 제1독서인 탈출기 16장에는 하느님께서 진노하셨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탈출기와 민수기 사이에는 시나이 계약이 있습니다. 탈출기의 광야는 이집트를 떠나 시나이에 이르기까지 여정이고, 민수기의 광야는 시나이에서 출발하여 모압 평야까지 여정입니다. 그 두 여정 사이에 시나이 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십계명과 법전도 받았습니다. 애인 관계와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가 차이가 있다면, 민수기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이미 부부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탈출기에서 백성의 불평이 단순한 배고픔의 호소였다면, 민수기에서 불평은 하느님에 대한 불신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진노와 징벌을 가져옵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에게서 구할 수 있었는데 모세도 잊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명하실 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었어야 했지요. 주님께서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망설임 없이 빵 다섯 개를 들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을 철석같이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주님께서 이미 우리 손을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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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04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2009
년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이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는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선종 150주년에 선포한사제의 해가 이어지던 2010년의 어느 봄날, 저는 동창 신부와 함께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르스에 머물렀습니다. 모든 사제의 영원한 모범인아르스의 성자비안네 신부님의 자취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어귀에는 비안네 신부님과 어린 소년이 대화하는 모습의 동상이 서 있는데, 거기의 글귀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귀여운 꼬마 친구야, 나에게 아르스로 가는 길을 알려 주면, 나는 네게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을 보여 줄게.” 신부님이 부임 첫날 이 꼬마 목동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1818년 본당 신부로 부임하시어 일흔셋의 나이로 선종하실 때까지 41년 동안 신부님은 이 시골 마을에서 헌신하셨습니다. 10년 동안 이어진 프랑스 혁명은 오래전에 끝났으나 그로 말미암아 신앙을 잃고 인간성을 상실한 이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불어넣으셨던 것입니다.
신부님은 무엇보다도 고해소에서 사람들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깊은 치유를 체험하도록 자신을 주님의 도구로 쉼 없이 내어놓으셨습니다. 신부님의 성덕이 알려지면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고해성사를 베푸는 일이 그분의 일상이었습니다. 프랑스 종교 문학의 거장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비안네 신부님의 삶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쓴 소설 『사탄의 태양 아래서』의 마지막 장은 신부님께 바치는 헌사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얇은 나무 격자창을 바라보면서, 그 뒤에서 고해 신자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영웅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언변이 부드럽고도 힘찬, 인간 영혼을 아주 많이 겪어 본 위대한 사제의 모습을 말이다. (중략) 그렇다! 그렇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무릎을 꿇고 그 선한 노인의 말을 들은 뒤, 마음의 짐을 내리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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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05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것도 유용하게 쓰시는 분이시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맥가이버」라는 외국 드라마를 기억하십니까?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맥가이버는 풍선껌, 나뭇가지, 껌 종이, 담배 가루, 안경알 등 일상의 하찮은 것들을 이용해 화학 무기, 운송 수단, 관측 도구 등 요긴한 장치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해서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러한 맥가이버와 같으신 분이 아닐는지요?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그야말로 하찮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는 것도 예수님을 통하면 오천 명 모두에게 유용한 식량이 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도구로 삼으시어 구원 사업을 이끄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저 보잘것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니, 부족한 우리이지만 다른 이에게 도움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술과 경제적 능력, 사회적 여건 등이 보잘것없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맙시다. 예수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겠다며 우리 자신을 봉헌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양식, 곧 빵과 물고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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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06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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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01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호수 한가운데서 작은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은 거센 바람이 불어 대자 몹시 불안해합니다. 어부 출신인 베드로는 양편에서 불어 대는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 자신들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마저 배에 함께 계시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다가옵니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더 큰 두려움에 싸여 “유령이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귀가 번쩍 뜨입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닫고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예수님만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도 물 위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베드로가 제정신으로 돌아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걸을 때는 몰랐는데, 거센 바람이 부는 호수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곧 베드로는 물에 빠집니다. 예수님께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베드로를 건져 올리시고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칩니다.
오늘 복음은 분명합니다. 우리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만 시선을 두고 있을 때는 풍랑을 뚫고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두던 시선을 놓치고 자기에게 닥친 풍랑을 바라보는 순간 물에 빠집니다. 우리 삶에 어려움과 위기가 닥칠 때 삶의 문제만 바라보면 결국 더욱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어려울수록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풍랑은 잦아들고 다시 평화가 찾아옵니다. 주님께 시선을 두고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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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02)
(
베르첼리의 성 에우세비오 주교 기념일)
(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사제 기념일)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배를 타시고 외딴곳으로 물러가십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당신께 몰려드는 백성을 가엾게 여기시며 빵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새로운 생활 방식과 하느님 나라를 백성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거룩한 잔치, 곧 성찬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모인 백성은 성찬에 참여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성찬은 주님의 현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사입니다. 성찬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르심을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기억하게 해 주는 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것을 통하여 당신 백성에게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가진 것이 제아무리 부족하고 초라해도 참으로 주님께 봉헌하는 삶이 될 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시어, 다른 사람들에게 크나큰 사랑의 일을 하십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의 신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그 기쁨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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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03)


“여기는 외딴곳이라 먹을 곳이 없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을 보내야겠습니다.” 제자들은 걱정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배고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시장기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화들짝 놀랍니다. ‘저희가 무엇을 어떻게 줄 수 있단 말씀입니까?’ 자신들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적의 스승님을 곁에 두고도 그런 생각에 빠진 것입니다. 제자들도 ‘있어야’ 준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를 구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하찮은 것도 당신께는 기적의 음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마음도 바뀝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제자들 앞에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사람들보다 제자들이 더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리 ‘적어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정도의 ‘무엇’은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며 ‘감사히 받아들이면’ 됩니다. 결과는 서서히 나타날 것입니다. 오천 명이 먹고도 남았다는 복음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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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04)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예레미야서 28,1-17
마태오복음 14,22-36


그 누구도 물 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가십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물 위를 걸어갑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자 겁을 먹습니다. 그 순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허우적거리는 그에게 스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의 능력을 지니는 것이 되겠는지요? 물에 빠져 드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그러므로 의심하지 않을 때 참된 믿음이 생깁니다. 의심을 버리는 순간 주님의 능력은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실패합니다. 굳게 믿다가도 교회 일 때문에 상처받고 돌아섭니다. 열심히 살다가도 교회 사람에게 좌절하여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그럴수록 주님께서는 가까이 계십니다. 그럴 때일수록 믿음은 그분과 이루는 관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가까이 지냈던 베드로도 물에 빠졌습니다.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언제라도 다시 출발하고 새롭게 시작하면 그분의 능력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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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06)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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