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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813 - 가해 연중 제19주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13 조회수2,77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8 13 () 가해 연중 제19주일 복음 묵상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열왕기 상 19,9.11-13
로마서 8,28-30
마태오복음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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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열왕기 상 19,9.11-13

그 무렵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 9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11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12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13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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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9,1-5

형제 여러분,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2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5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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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14,22-33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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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08 13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산 호렙 동굴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그는 강한 바람과 지진, 불길이 지난 다음에야 하느님을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잔잔하고 조용하게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들어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왔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불타는 엘리야는 부드러운 미풍과 같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찬 바람에 맞서 배를 몰고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는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신적 현존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동포인 유다인들이 그리스도를 몰라보는 것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과 영광을 받았음에도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을 믿게 할 요란한 표징과 기적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가 역경 중에 헤맬 때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존재 자체이신 그분께서는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침묵 중에 믿고 기다릴 때, 그분께서는 이미 우리 곁에 계십니다. 잔잔한 미풍처럼 그분께서는 우리의 고통스러운 실존을 감싸 안고 위로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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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07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가예타노 사제 기념일)

지혜서 18,6-9
히브리서 11,1-2.8-19
루카복음 12,32-48


오늘 복음은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깨어 준비하고 있다가 문을 열어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주인이 온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를 가리키는 것이며, 좁은 의미로는 하느님께서 개개인을 부르실 때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르실지 모르는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그 누구도, 언제 주님께 부름을 받을지 그 시기를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상태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가장 기쁨이 넘치겠습니까? 나에게 주어진 일을 다 마쳤을 때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일상생활 안에서는 맺고 끊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지요. 마음먹었는데도, 정작 시작하지도 못한 일, 반도 끝내지 못한 일, 결실 없이 어지럽게 벌여만 놓은 일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기에 나의 일을 다 마친 다음에 하느님을 뵙는다면 한 삶을 보람 있게 살았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한 17,4)
우리도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의 일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손쉬운 유혹은 “다음에 하자.”라는 속삭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루다 보면 결국 끝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늘 허리에 띠를 두르고, 하느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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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09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열왕기 상 19,4-8
에페소서 4,30-5,2
요한복음 6,41-51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하여 그들을 전멸시켰지만, 자기를 잡아 죽이고야 말겠다는 이제벨의 복수가 두려워 도망칩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목숨을 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 만에 지쳐 주저앉았습니다. 더 이상 살 힘도, 의욕도 없이 그저 싸리나무 아래 누워 주님께서 목숨을 거두어 가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아직도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까지 가야 합니다. 호렙은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을 만난 산입니다. 엘리야도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기까지, 가는 길이 어찌 이리 험난하기만 할까요? 엘리야 같은 인물도 자신의 못남을 탓하면서 죽고 싶을 지경에 이르렀다면, 우리가 어찌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하느님 계신 곳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요?
열왕기는 그 힘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엘리야는 싸워 이겼지만 결국 그의 힘은 바닥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힘으로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알았을 때, 대단한 싸움을 치른 그가 자기도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는 초라한 인간임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그에게 빵을 내려 주시어 밤낮 사십 일을 걷고 당신을 찾을 힘을 주십니다. 그가 이렇게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한 이후에는, 낙담하여 이제벨을 피해 줄행랑을 치던 그의 ‘도주로’가, 이제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한 ‘순례 여정’으로 바뀝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오늘 우리를 당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고 당신 앞에 불러 주신 주님, 신앙의 여정을 계속 걸어가도록 생명의 빵으로 우리를 길러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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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10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기념일)

열왕기 상 19,9.11-13
로마서 8,28-30
마태오복음 14,22-33


오늘 복음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신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면 오늘 복음의 첫 부분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호수 위에서의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에 집중하다 보면 자주 간과하곤 하는 이 부분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이처럼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걷는 기적을 통해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신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척 주의 깊게 이 만남을 준비하시는 것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직접 군중을 돌려보내셨습니다. 그 뒤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그곳에 머무르셨습니다. 배는 이미 뭍에서 멀어졌고 심한 풍랑이 일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심으로 이 만남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그들이 당신을 따른다는 것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깨달음을 위해 제자들은 군중 사이에서 자신들을 사로잡은 도취와 피상성에서 떨어져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 없이 시련을 만났을 때 자신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절감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얼마나 약한지, 그들을 위하여 나타나신 주님을 ‘못 알아볼 정도’로 얼마나 흔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체험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 당신과 인격적으로 만나라고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이제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는 갈 수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군중 속에 묻혀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용기 있게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각자를 위하여 이러한 만남을 준비하시고 다가오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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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11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지혜서 18,6-9
히브리서 11,1-2.8-19
루카복음 12,32-48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7.40)
군대에서는 ‘전투 준비 태세’라는 훈련을 자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가상해서 재빠르게 짐을 싸고 무기를 준비하여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훈련입니다. 저도 군대에 있을 때 이 훈련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대는 잠을 자다가도 ‘출동 준비!’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강릉에 무장 공비가 침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부대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출동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의 훈련이 없었다면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잘 모시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막상 예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분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지.’ ‘고난의 순간이 오더라도 잘 참고 견뎌야지.’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다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짐이 다짐으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평소에 조금씩 훈련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결정적으로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하거나 용서해야 할 때, 참으로 힘든 고난에 빠질 때 그 다짐을 잘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주인을 잘 맞이하는 충실한 종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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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12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기념일)

열왕기 상 19,4-8
에페소서 4,30-5,2
요한복음 6,41-51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사막을 유랑하던 시절 굶주림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불평하며 떠나온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만나를 내려 주시어 그들의 배를 채워 주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막을 헤매면서 만나로 배고픔을 달랜 옛 시절을 잊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에서 먹었던 만나와 당신 자신을 비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배고픔을 달래 주는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은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인 당신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주장은 유다인들을 무척 자극하게 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으로 많은 군중을 먹이신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표징으로 보지 않고 육신의 굶주린 배를 채운 것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순전히 물질적인 차원으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배고픔이 채워지면 그것을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이러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지상의 양식에만 관심을 두면 하느님의 생명과 단절됩니다. 유한한 것의 노예로 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천상의 양식을 바라고 그것을 먹고 살면 비록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더라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허무하게 살아갈 수도 있고, 영원히 살 수도 있습니다. 허무와 영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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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07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가예타노 사제 기념일)

열왕기 상 19,9.11-13
로마서 8,28-30
마태오복음 14,22-33


혼자 기도하시던 예수님께서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요?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호수를 걸으시어 한숨에 제자들에게 다가가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제자들이 깊은 밤에 호수 한가운데서 거센 바람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어둠 속에서 풍랑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자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게 달려가신 것입니다. 마치 위기에 놓인 자식을 보고 허둥지둥 달려가는 부모처럼 말입니다.
삶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복음에서 보듯, 어둠과 폭풍우입니다. 칠흑 같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나아갈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두렵습니다. 또한 폭풍우처럼 불현듯 우리 삶에 위기와 어려움이 불어닥칠까 봐 두렵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더 큰 두려움은 아무 기댈 곳 없고,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생깁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기가 닥치자 거센 바람을 뚫고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놓이든지, 주님께서는 우리의 두려움보다 먼저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이 잔잔한 호수 위를 떠다니듯 평온할 때도, 폭풍우가 몰아치듯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우리가 기대어 살 곳은 주님임을 늘 의식해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언제나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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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08)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지혜서 18,6-9
히브리서 11,1-2.8-19
루카복음 12,32-48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가진 것은 재물, 명예, 건강, 재능, 학력, 권력 등입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삶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웃과 나눌 줄 모르는 인색한 사람은 주인의 뜻을 모르고, 주인에게 불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주인의 뜻을 알면서도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인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뜻만을 내세워 살기 때문입니다.
자선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깨어 기다리다가 주님을 만나 뵙게 됩니다. 그가 바로 하늘에 재물을 쌓는 지혜로운 사람이며, 주님의 뜻을 알고 수행하는 충실한 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서 언제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충실히 살아갈 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으며, 참으로 행복한 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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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09)
(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열왕기 상 19,4-8
에페소서 4,30-5,2
요한복음 6,41-51


우리는 수없이 성체를 모셨습니다. 아직도 ‘영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돌아봐야 합니다. 어떻게 성체를 모셨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체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성체 앞에 선다는 것은 살아 계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생략되었기에, 당연한 듯 모시는 성체가 되었습니다. 구경하는 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늘의 힘은 거저 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부터 성체 신심에는 정성이 실렸습니다. 교회가 ‘공복재’를 규정한 것도 지성으로 모시라는 의도입니다. 지금의 공복재는 성체 모시기 전 ‘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는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70년 전만 해도 성체를 모시려면 전날 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선교사들의 지나친 신심 행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성체께 정성을 드리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성체를 자주 모시면 ‘그분의 힘’은 강하게 활동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불안과 허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빵이 주는 ‘천상의 힘’입니다. 누구라도 온몸으로 성체를 모시며 이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성으로 성체를 모시는 사람은 ‘이승과 저승’에서도 결코 헤매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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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10)
(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열왕기 상 19,9.11-13
로마서 8,28-30
마태오복음 14,22-3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가십니다. 누군가 소리 질렀습니다. “유령이다!” 제자들은 놀라 일어납니다. 기적의 음식인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를 먹은 것이 어저께의 일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스승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는 확인을 시도합니다.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황당한 반응이었지만 스승님께서는 받아 주십니다. 그러나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조금 가다 빠져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자 겁을 먹었고 결국은 물에 빠져 듭니다. 너무 쉽게 하느님의 기운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일도 주님의 기운을 지니면 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교훈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의 힘을 지니는 것이 되겠는지요?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그러니 일차적으로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유롭게 믿어야 합니다. 의심에서 자유로워야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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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12)
(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기념일)

지혜서 18,6-9
히브리서 11,1-2.8-19
루카복음 12,32-48


무엇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십니까? 물질의 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물질의 힘만을 믿었다가 주저앉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소리 없이 우리를 움직이십니다. 그분의 힘 속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올 때까지 깨어 기다리는 종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든 이를 향한 칭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은 늘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생각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늘 깨어 있으며 준비하는 삶입니다. 아브라함은 희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너무 늙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그는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의 믿음을 묵상하며 이번 한 주간을 지내도록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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