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8월 16일 (수) 가해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신명기 34,1-12
마태오복음 18,15-20
윤용선 바오로 신부님
< 대화를 통한 일치의 필요성 >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복음 말씀인 마태오복음 18장 15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은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서로
대화하고 일치하는 형제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대화를
통한 일치’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보이는, 나에게 잘못한 형제를 조용히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는 모습과 두세
사람의 증언으로 사실을 밝히는 모습, 이 두 모습은 어찌 보면 마치 잘못한 형제를 나무라고 결국은 나
자신이나 공동체로부터 그를 분리시켜 버리려는 모습들처럼 보일 수 있으나, 복음의 가르침은 이러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타일러 주고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나에게
잘못한 형제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며, 결국은 그 사람과 일치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화를 통한 일치가 이루어 졌을 때, 우리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와 일치라는 것은 일방적이 아닌 쌍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형제’와 ‘나’, 이 둘의 모든 입장에서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쪽 입장에서만 마음을 연다면, 대화는
불가능하고 결국 일치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 ‘나’
또한 다른 형제에게 잘못할 수 있고, 그래서 나도 ‘남에게 잘못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쌍방적 성격의 대화와 일치의 결과로써, 이 지상의 삶에서 서로 잘못 묶여있던 것들은 풀리게
되고, 이는 바로 하늘나라에서도 동시에 풀려 있음을 우리는 오늘 복음 속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함께’,
일치된 모습의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이 세상의 삶 안에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한다는 것’이 어렵듯, ‘대화를 통한 일치’를 추구함 또한, 부족한 인간으로서 어려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으며, 너희가 마음을 모아 구하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니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말과 이러한 마음 자세를 지니고 살 수 있으며, 이를 또한 우리의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우리는 ‘대화’ 할 수 있고, ‘일치’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천상의 삶을 미리 맛보며, 이 지상에서도 함께, 아름답게, 매일을
이웃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윤용선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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