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차동엽 신부(은사, 사용해야 보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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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7-08-16 | 조회수3,02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은사, 사용해야 보배 조예가 깊어지면 그 분야에 대해서 미래예측이 가능해진다. 메츠(J.B. Metz)의 말에서 미래 교회를 위한 예언(預言)을 발견한다.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는 기류를 진지하게 관측한 결과 이제 더 이상 위대한 예언자들의 시대도 아니요, 탁월한 신학자의 시대는 더욱 아니다. 교회의 시대는 바야흐로 작은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점차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는 시대, 곧 작은 예언자들의 시대요, 작고 이름 없는 성인들의 시대이며, 이런 의미에서 바닥의 두고 이 선언을 했다. 위기와 도전 속에서 교회를 이끌어온 주역들은 예언자요 '위대한 예언자', '위대한 성인', '탁월한 신학자'들만 가지고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도전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딱히 몇 가지로 정체를 도전은 사방팔방에서 '양의 탈'을 쓰고 교묘하게 침투해 오고 있기에 스스로가 자신을 지키는 영적 파수꾼이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시대 흐름은 점점 직접 참여를 촉구하기 때문이다. 참여의 시대다. 이 시대 지도력은 위대한 한 사람에게 시민들에게 공유된다. 이런 추세는 교회생활에서도 요청되고 감지된다. 이런 경향을 굳이 막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의 시대가 아닌 '작은 이들의 시대', '작고 이름 주도적 활동에 따라서 판가름날 것이다. 자신들의 은사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쇠가 이제 평신도는 단순히 사목 대상이 아니라 교회 활동 주체다. 평신도의 은사와 직분을 인정하는 선언을 했고, 예언직 수행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은사를 주신다.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1고린 12,7-11). 그에 걸맞는 사명(mission)과 역량(competence)을 동시에 불어넣어 준다. 성령의 은사는 사명으로 불타는 열정(passion)과 능력으로 충만한 부어주는 것이다. 신자들이 지닌 이 은사를 스스로 발견하고 사용하도록 그러면 우리는 각자가 지닌 은사를 어떻게 발굴할 수 있을까? 은사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재밌어 하는 것이 은사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꼽아보라고 하면 뒷걸음질치는 말하라고 하면 곧잘 말한다. 바로 그것이 그에게는 하늘이 요리, 운동, 기계, 수학, 그 밖에 무엇을 재밌어 하든지 그것은 대부분 그 분야에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계발하면 그것이 은사가 되는 것이다. 고유한 성품이 은사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성격의 사람들이 있다.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들이 왜 서로 갈등했는지 쉽게 사목활동에 있어서 좋고 나쁜 성격이란 있을 수 없다. 조화를 위해서도 각기 다른 성격이 필요하다. 성격은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많은 색깔과 무늬로 하느님 빛을 반영한다. '정의구현'에서 은사를 발휘할 수 있고, 온유한 성품의 사람은 경험이 은사다. 가족 경험, 교육 경험, 직업 경험, 영적 경험들, 교회 활동, 그것이 은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상처의 경험도 은사가 될 수 있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둔 부모가 그 부모를 대상으로 사역할 때, 알코올 중독 경험을 가진 자가 현재 중독증에 처해 있는 이들을 위해 사역할 때, 그보다 더 잘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또 남편이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갔을 때, 그와 같은 일을 경험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은사도 발휘하지 않으면 녹이 슬고 곰팡이가 낀다.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성령의 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봉사를 위해 내어놓을수록 불어난다. 성령은 감춰둘수록 줄어들고, 나만을 위해 움켜쥘수록 사그라진다.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게을리한 개인을 향한 경고인 동시에 교회를 향한 잘하는 사목은 특출난 능력으로 신자들을 훌륭하게 정말로 잘하는 사목은 '전 신자'가 각자 은사를 돕고 기회를 주는 사목이다. 성령의 은사는 그냥 얻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얻는다는 성령으로 충만케 해준다. 특 히 의무적으로 바치는 기도가 그리고 성령 강림을 바라는 기대로 바치는 기도는 더욱 그렇다. 갖은 박해에도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성령의 능력을 합심해 간구했다.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100% 들어주셨다. 모여 있던 곳이 흔들리고 사람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서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 (사도 4,31). 내가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 -차동엽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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