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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1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18 조회수3,503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년 8월 18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제1독서 여호 24,1-13

그 무렵

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2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아브라함의

아버지이며 나호르의

아버지인 테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들은

강 건너편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3 그런데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다가, 온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게 하고 그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였다.
내가 그에게 이사악을 주고,

4 이사악에게는 야곱과

 에사우를 주었다.

 그리고 에사우에게는

세이르 산을 주어

차지하게 하였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내려갔지만,

5 나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이집트 가운데에서

그 모든 일을 하여

곳을 친 다음,

너희를 이끌어 내었다.

6 내가 너희 조상들을

이렇게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그 뒤에 너희는

바다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이

병거와 기병을 거느리고

갈대 바다까지 너희

조상들의 뒤를 쫓아왔다.
7 그래서 너희 조상들이

주님에게 부르짖자,

주님이 너희와 이집트인

사이에 암흑을 갖다 놓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그들을 덮쳐 버렸다.

이렇게 내가 이집트에서

한 일을 너희는

두 눈으로 보았다.
너희가 광야에서

 오랫동안 머무른 뒤에,

 8 나는 너희를 요르단

건너편에 사는

아모리인들의

 땅으로 데려갔다.

그때에 그들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으나,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어,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패망시킨 것이다.
9 그 뒤에 모압 임금,

치포르의 아들 발락이

나서서 이스라엘에게

 맞서 싸웠다.

그는 너희를 저주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을 불러왔다.

10 그러나 나는 발라암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해 주었다.

 나는 이렇게 너희를 발락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11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서

예리코에 이르렀을 때에는,

 예리코의 지주들,

곧 아모리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기르가스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다. 나는 그들도

너희 손에 넘겨주었다.
12 나는 또 너희보다

앞서 말벌을 보내어,

아모리족의 두 임금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었다.

그렇게 한 것은

너희의 칼도

너희의 화살도 아니다.
13 그러고 나서 나는

너희에게 너희가 일구지

않은 땅과 너희가 세우지

않은 성읍들을 주었다.

그래서 너희가

그 안에서 살고,

또 직접 가꾸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게 되었다.’”

복음 마태 19,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사진 속의 내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어렸을 때의 사진은

 ‘내가 이런 때가 다 있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요.

목소리도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사용하는

 ‘빠다킹’이라는

 닉네임은 목소리가

느끼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를 봐서

내 목소리가 느끼한가?’

싶었지요.

그래서 직접 미사 중의

제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정말로 느끼했습니다.
분명 제 모습인데도 낯설고,

분명 제 목소리인데도

제 목소리인지를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기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내 모습도

변화해서 잘 모른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잘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몸에는 50~7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지며,

그 중에서

200만~300만 개는

시시각각 교체됩니다.

적혈구의

수명은 약 4개월이고

 백혈구의 평균수명은

거의 1년입니다.

피부세포의 수명은

약 2~3주에 불과하고,

결장세포는

약 4일 후에 죽어갑니다.

이것만 봐도 우리의 몸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낯설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더불어 내 이웃 역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결혼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 교회 혼인법에 있는

‘불가해소성’의 기원이 바로

 이 예수님의 말씀이시지요.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당시는 남자 중심의 사회였고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거룩한

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아내를 버릴까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그래서 낯설게 느껴져서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혼이 굳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배우자를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낯설게 느끼니 함께

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몸 자체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내 배우자 역시 계속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혼인 무효’가 될 만한

행동까지 무조건

인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변화들을 인정하면서

 생활한다면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혼인을 소홀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전체가 되는 것이다.
(반 고흐)
오랜만에 원로신부님 모시고
소주 한 잔 했습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 갇혔다가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사람이
충동에 휘둘리지만,
가치관이 그를
 잡아준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충동에
지배 받을 지 아니면 그 충동을
지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가치관이라는 것이지요.
올바른 가치관이 없다면
성공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나버리고 만다고 하지요.
실제로 거액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뜻하지 않은 소위
 이 사회의 성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가치관 없이
 얻은 성공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아주 불행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성공이
한 순간의 플래시처럼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어떤 가치관과
원칙을 갖추어야 할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 가치관과 원칙을 마음속에
담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가치관과 원칙을
잊어버릴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냥 입으로만
믿을 뿐인 것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사랑’이라는 가치관과 원칙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금방 사라질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인천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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