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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0818 -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18 조회수3,56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8 18 () 가해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여호수아기 24,1-13 /
에제키엘서 16,1-15.60.63
마태오복음 1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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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여호수아기 24,1-13

그 무렵 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으로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와 섰다. 2 그러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아브라함의 아버지이며 나호르의 아버지인 테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들은 강 건너편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3 그런데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편에서 데려다가, 온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게 하고 그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였다.

내가 그에게 이사악을 주고, 4 이사악에게는 야곱과 에사우를 주었다. 그리고 에사우에게는 세이르 산을 주어 차지하게 하였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내려갔지만, 5 나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이집트 가운데에서 그 모든 일을 하여 그곳을 친 다음, 너희를 이끌어 내었다. 6 내가 너희 조상들을 이렇게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그 뒤에 너희는 바다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이 병거와 기병을 거느리고 갈대 바다까지 너희 조상들의 뒤를 쫓아왔다.
7 그래서 너희 조상들이 주님에게 부르짖자, 주님이 너희와 이집트인 사이에 암흑을 갖다 놓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그들을 덮쳐 버렸다. 이렇게 내가 이집트에서 한 일을 너희는 두 눈으로 보았다.

너희가 광야에서 오랫동안 머무른 뒤에, 8 나는 너희를 요르단 건너편에 사는 아모리인들의 땅으로 데려갔다. 그때에 그들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으나,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어, 너희가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패망시킨 것이다.
9 그 뒤에 모압 임금, 치포르의 아들 발락이 나서서 이스라엘에게 맞서 싸웠다. 그는 너희를 저주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을 불러왔다. 10 그러나 나는 발라암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너희에게 축복해 주었다. 나는 이렇게 너희를 발락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11 너희가 요르단을 건너서 예리코에 이르렀을 때에는, 예리코의 지주들, 곧 아모리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기르가스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너희에게 맞서 싸웠다. 나는 그들도 너희 손에 넘겨주었다.

12 나는 또 너희보다 앞서 말벌을 보내어, 아모리족의 두 임금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었다. 그렇게 한 것은 너희의 칼도 너희의 화살도 아니다.

13 그러고 나서 나는 너희에게 너희가 일구지 않은 땅과 너희가 세우지 않은 성읍들을 주었다. 그래서 너희가 그 안에서 살고, 또 직접 가꾸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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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에제키엘서 16,1-15.60.63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
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에게 자기가 저지른 역겨운 짓들을 알려 주어라. 3 너는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예루살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혈통과 태생으로 말하자면, 너는 가나안 땅 출신이다. 너의 아버지는 아모리 남자고 너의 어머니는 히타이트 여자다.
4
네가 태어난 일을 말하자면, 네가 나던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 주지 않고, 물로 네 몸을 깨끗이 씻어 주지 않았으며, 아무도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질러 주지 않고 포대기로 싸 주지 않았다.
5
너를 애처롭게 보아서, 동정심으로 이런 일을 하나라도 해 주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네가 나던 날, 너를 싫어하여 들판에 던져 버렸다.
6
그때에 내가 네 곁을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살아남아라!′ 하고 말하였다. 7 그러고 나서 너를 들의 풀처럼 자라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서 꽃다운 나이에 이르렀다.
젖가슴은 또렷이 드러나고 털도 다 자랐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벌거벗은 알몸뚱이였다.
8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9
나는 너를 물로 씻어 주고 네 몸에 묻은 피를 닦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돌고래 가죽신을 신겨 주었고, 아마포 띠를 매어 주고 비단으로 너를 덮어 주었으며, 11 장신구로 치장해 주었다.
두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고, 12 코에는 코걸이를, 두 귀에는 귀걸이를 달아 주었으며,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13
이렇게 너는 금과 은으로 치장하고, 아마포 옷과 비단옷과 수놓은 옷을 입고서, 고운 곡식 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었다. 너는 더욱더 아름다워져 왕비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14
네 아름다움 때문에 너의 명성이 민족들에게 퍼져 나갔다.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던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5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에 힘입어 불륜을 저질렀다. 지나가는 아무하고나 마구 불륜을 저질렀다.
60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63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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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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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19,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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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18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는 질문은 예수님 당대의 혼인 개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혼인하면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이 되는 시대에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한다면 ‘아내가 남편을 버려도 됩니까?’라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남녀의 혼인은 세상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제도입니다. 남녀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꽃피는 장소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는 혼인은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 주는 거룩한 성사가 됩니다. 혼인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부부의 결합이므로 거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7)라는 말씀은 혼인 생활의 기본 지침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 차이, 경제 문제, 가족 간의 불화, 배우자의 부정 등으로 이혼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에 부부들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부부의 아름다움은 상대방의 약점과 단점을 덮어 주고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이 우리 눈에 불가능해 보일 때도 있지만 하느님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부의 사랑을 완성하시면서 구원에 이르도록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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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 12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기념일)


오늘날 가정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가족이 저마다 바쁜 나날을 지내다 보니, 심지어 가정이 마치 잠만 자는 곳 정도로 전락해 버린 경우도 있지요. 모처럼 가족이 함께 모여도 대화를 깊게 나누기가 힘듭니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정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초적인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가정 안에서 자녀들은 듣고 말하며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인격을 형성해 나가지요. 그러기에 가정의 역할과 사명은 더욱 중대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부의 정체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창조주께서 처음부터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이처럼 남자와 여자는 서로 보완하여 완전해지도록 협조자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각자 혼자로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부족과 결점을 언제나 그대로 받아 주시듯이, 우리도 서로를 받아 주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만 하지요. 그럴 때 자녀들이 이를 본받고 배우게 될 것이 아닙니까? 특히 짧은 시간이라도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자리가 꼭 필요합니다.
작은 교회라고도 부르는 가정이 더욱 화목해지고 사랑의 실천을 나눌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커다란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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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14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혼인에 대한 말씀도 독신에 대한 말씀도 그러합니다.
혼인하면서 부부가 서로에게 사랑과 존경을 약속하지만, 죽는 날까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모세 시대 사람들은 마음이 완고해서 모세가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혼인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차라리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도 그들에 못지않습니다. 자녀가 결혼을 하면 안심이 됩니까, 걱정이 앞서십니까? 창세기에 기록된 하느님의 계획은 머나먼 이상처럼 보입니다. 적지 않은 신자 부부도 오직 신앙의 힘으로 주어진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하늘 나라를 위하여 독신으로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신을 약속한 이들 모두가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가 그런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요?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혼인이나 독신에 대한 충실함이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그 시대 사람들의 약함을 인정했습니다. 충실치 못한 인간의 약함을 탓하기보다, 오늘 하루 내가 성실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질그릇 같은 저는 오늘 하루만, 내일도 하루만, 매일같이 그렇게 하루마다 독신 서약을 갱신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약속한 바를 철저하게 지키고 하느님으로부터 약속 받은 것을 열렬히 갈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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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 15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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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 16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기념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부란 본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으로 둘이 아니라 한 몸이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군 생활을 할 때 뜻하지 않게군기 교육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군인들의 복무 자세를 바로잡는다는 그곳에서 저는 얼차려(기합)를 받다가 난생처음으로 체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그때에 저는 탈진 상태에 있으면서, 도저히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십자가의 길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라는 언덕까지 오르실 때 세 번 쓰러지셨는데, 그 고통이 생각보다 매우 처절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더 나아가, 당시 군인 신학생이었던 저는 사제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제로 평생 살아가려면 적어도 세 번은 처절하게 쓰러지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부부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혼인하여 가정을 일구고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을 많이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겪는 가운데 자신의 배우자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의 위기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곧 십자가의 길이 그렇고, 사제나 수도자의 길이 그러하듯, 부부 생활에서도 적어도 세 번은 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쓰러짐은 도저히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게 다가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이 오더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부르심에는 이러한 위기가 따르기 마련이고,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그러한 위기를 이겨 내며 다시 일어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고, 교회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신앙인들이 그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한 몸이 된 부부들 또한 쓰러져도 일어서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를 원하시고, 또한 그렇게 일어서도록 힘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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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 17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슨 이유가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는지 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어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혼인은 하느님의 계획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혼은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뜻하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이러한 뜻을 받들어 혼인의불가 해소성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혼인을 일종의 매매 계약으로 여겼습니다. 여자는 혼인을 하면 남자의 소유물이 되었고, 재산권과 상속권이 없었습니다. 물론 여자에게는 이혼의 권리도 없었습니다. 율법에는 여자가 부정한 일을 범하면 이혼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이러한 규정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혼인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생각을 돌리게 하시며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끔 혼인하려는 젊은이들과 면담을 하고혼인 전 당사자의 진술서를 받게 됩니다. 그 진술서 가운데에는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이 혼인에 어떠한 조건이 있습니까?” 교회법에서는 조건부로 혼인을 맺으면 유효한 혼인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교회법 1102조 참조).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우리 신앙인들까지도 학벌이나 경제적 능력, 가문을 혼인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혼인은 흥정이나 거래가 아닙니다. 혼인에 굳이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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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 12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기념일)


언젠가 혼인을 눈앞에 둔 한 쌍의 청춘 남녀가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 한평생 살아갈 미래 청사진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들은 얼마 뒤에는 어떤 차를 사고, 자녀는 언제쯤 낳고, 수년 뒤에는 집을 사고 또 돈은 얼마를 모아 노후에는 여행을 다니면서 살겠다는 제법 구체적인 계획을 나열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의 꿈과 계획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지니고 살며 삶에서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세속적인 목표만 있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목표와 가치관이 없으면 영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혼인은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가벼운 계약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그에 합당한 소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혼인 예식 때 하느님과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인격을 걸고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서로가 한 몸이 되라는 혼인의 신비는 그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한집에 산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약한 점과 부족한 점을 채워 주고 품어 주라고 주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참된 가치관을 가지고 주어진 운명을 지고 한 분이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이런 혼인의 부르심에 끝까지 충실한 부부는 세상에서 출세와 성공을 한 그 어떤 누구보다도 소중한 것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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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13)
(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남녀의 혼인을 하느님의 거룩한 일, 곧 성사적(聖事的) 지위로 올려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혼인의 첫째 목적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경우에, 이혼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자녀까지 출산하고, 또 이미 노년이 된 부부도 이혼을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한 듯합니다.
사랑은 진실하고 영원하며,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인데도, 한순간의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하여 약간의 배려도 하지 못하고 갈라서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스럽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랑이신 주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기 맘대로 살다가 결국 주님을 등지며 떠나 버리고 말지는 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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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14)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많은 사람들이 헤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이혼입니다. 쉽게 갈라서는 부부가 어디 있을는지요? 하지만 이혼은 상처입니다. 두 사람은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아픔을 남깁니다. 살면서 이혼의 충동을 느끼지 않는 부부는 없습니다. 극복했기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혼도 결국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바리사이들의 항의성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완고했기 때문’이라고 답하십니다. 모세의 ‘예외 규정’ 역시 ‘마음이 문제’였다는 가르침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이 사실을 혼인 생활의 기초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혼인해서 함께 살면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지 않습니다. 몸이 ‘함께 있다고’ 마음도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혼란케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해의 늪’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붙잡아 주셨기에 이혼의 결정적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면 웬만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자연은 낮은 모습으로 움직이기에 여유와 아름다움을 간직합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질서대로 살아간다면 결국은 행복을 깨닫게 됩니다. 겸손한 부부가 행복한 부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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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15)


성모 승천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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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17)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바리사이들의 이 질문에는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바리사이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역시 날카로웠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유다인들은 쉽게 이혼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현실을 예수님께서 꾸짖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선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혼인하여 살다가 헤어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혼도 있을 것입니다. 금실 좋은 부부라 하더라도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가 감정싸움으로 확대되면 서로 헤어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혼은 결코 해결책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혼의 예외 규정을 허락한 것은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이라고 오늘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내가 마음을 풀면 상대방도 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을 하느님의 창조 질서로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살아갈 때 행복도 함께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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