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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819 -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19 조회수2,886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
08 19 () 가해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성 요한 외드 사제 기념일)

여호수아기 24,14-29 /
에제키엘서 18,1-10.13.30-32
마태오복음 19,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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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여호수아기 24,14-29

그 무렵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4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 그리고 너희 조상이 강 건너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주님을 섬겨라.
15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16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17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또한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이 땅에 사는 아모리족을 우리 앞에서 몰아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19 그러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주님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느님으로서, 너희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20 너희가 주님을 저버리고 낯선 신들을 섬기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선을 베푸신 뒤에라도, 돌아서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망시켜 버리실 것이다.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너희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한 그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가 증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3 “그러면 이제 너희 가운데에 있는 낯선 신들을 치워 버리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마음을 기울여라.” 하자,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25 그날 여호수아는 스켐에서 백성과 계약을 맺고 그들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웠다. 26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모두 하느님의 율법서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그곳 주님의 성소에 있는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 27 그러고 나서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은 너희가 너희 하느님을 부정하지 못하게 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28 여호수아는 백성을 저마다 상속 재산으로 받은 땅으로 돌려보냈다.

29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주님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죽었다. 그의 나이는 백열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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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 (짝수 해)


에제키엘서 18,1-10.13.30-32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
너희는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말해 대느냐?
3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다시는 이 속담을 이스라엘에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4 보아라, 모든 목숨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목숨도 자식의 목숨도 나의 것이다. 죄지은 자만 죽는다.
5
어떤 사람이 의로워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6 곧 산 위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이스라엘 집안의 우상들에게 눈을 들어 올리지 않으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않고 달거리하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7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빚 담보로 받은 것을 돌려주며, 강도 짓을 하지 않고 굶주린 이에게 빵을 주며,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혀 주고, 8 변리를 받으려고 돈을 내놓지 않으며, 이자를 받지 않고 불의에서 손을 떼며,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한 판결을 내리면서, 9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진실하게 지키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니 반드시 살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0
이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남의 피를 흘리게 하면, 13 아들이 살 것 같으냐? 그는 살지 못한다. 이 모든 역겨운 짓을 저질렀으니,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가 죽은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30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안아,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 그렇게 하여 죄가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여라.
31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32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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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19,13-15

13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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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19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성 요한 외드 사제 기념일)


제자들은 어린이들이 예수님의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될까봐 예수님께 다가가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다가가려고 할 때, 막은 적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에 수많은 교육적 요구와 경쟁으로 부모들은 어린이들이 성당에 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성당에 보내면 아이들은 예수님의 축복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받게 되면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신앙 교육과 성사 생활을 도와주지 않는 부모는 예수님께 꾸지람을 받는 사람들이 됩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이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순진하고 남을 신뢰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의 선한 마음을 악용해 그들을 유괴하고 해치기까지 합니다. 어린이는 단순하고 정신력도 약하며 육체적 발달도 잘 이루어지지 않은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약하고 어린 존재를 사랑하십니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편이 됩니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실존적 성찰을 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어린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재력은 하느님 앞에 지푸라기같이 미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능력 있는 사람처럼 나서면 결코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은 순수하고 겸손한 영혼에게 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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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 13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은 어린이들이 예수님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는 데 어린이들이 방해된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막지 말라고 이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는 많이 보고 듣고 배울수록 겸손해져야만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에 만족하다 보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만심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알고,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자부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 하느님마저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가 없게 되지요. 그렇게 신심 깊고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마저 십자가에 매달지 않았습니까?
어린이들처럼 아무런 개인적 욕심이나 이기심에 얽매이지 않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 뜻을 실천하려 할 때만 우리는 하느님을 뵈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유다인들 가운데 내려오는 격언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들만이 지혜로운 랍비들보다 하느님께 가까울 수 있다.” 인간의 오만함을 꾸짖는 내용이지요.
우리 역시 늘 순수함과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말고, 주님의 뜻을 옳게 깨우치며 이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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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15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성모 승천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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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 16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기념일)


오늘은 한국 교회의 124위 순교자들이 복자의 반열에 오르는 경사로운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몸소 이 땅에서 집전하시는 시복식은 우리 신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잊히지 않을 모습으로 남을 것입니다. 시복 미사에 참여하고자 전국에서 수많은 교우들이 새벽부터 모여들어 번거로운 입장 절차도 감수하며 여러 시간을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이렇게 많은 이가 땀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다는 감격 때문만이 아닙니다. 시복식은 인간적 영광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순교자들의 삶을 되새기고 그분들의 순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겠다는 다짐의 자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복식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도 국가적 지원과 온 국민의 주목을 받으며 거창하게 준비한 시복식이일회적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사실 시복식의 의미와 가치는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보이는 신앙생활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복식에 함께하는 열정 이상의 노력으로 순교자들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순교자들을 공경하고 칭송하지만 그분들의 삶에 무관심하기 십상입니다. 순교자들은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살아 있는 상징입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현대 철학자 폴 리쾨르는상징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순교자들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우리를 깊이 고뇌하게 합니다. 그분들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따라서 시복식은 순교자들을 화려하게박제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분들과의 생생한 만남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시대의 고민을 안고 순교자들과 만나 그분들의 삶을 모범으로 삼고,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와싸워 이기고자하는 것이 진정한 순교자 현양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신 크나큰 은총의 시복식을 맞아 이러한 생각이 가슴속 깊이 새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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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 17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도대체 어린이들의 어떤 특성이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어린이들은 어른들처럼 죄를 짓지 않고 순수하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처럼, 하느님께 의탁할 줄 알아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약함입니다.
오늘날과 달리 예수님 시대에는 유아 사망률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고, 충분한 영양 섭취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린이야말로 그 사회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 하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이들의 차지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배려해야 한다고 우리는 교리를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를 차지하려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곧 교회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가 되어야 합니다. 강자의 처지에서 약자를 보살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약자가 되어 약자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약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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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 18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장영희 교수가 쓴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작은 선행이 가져온 기쁨을 담백하게 적어 놓은 글이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많은데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에는 1달러가량의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씩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요금소에서 어떤 기분 좋은 운전자가 2달러를 내면서내 뒷사람 것까지요.” 하고 가면 징수원이 뒤차 운전자에게앞차가 내고 갔어요.”라고 말합니다. 뒤차 운전자는 자신이 준비했던 1달러를 내면서그럼 이건 내 뒷사람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시작한 작은 선행이 때로는 하루 종일 릴레이 식으로 다음 사람에게 이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기분 좋은 미소까지 전달되겠지요.
작은 일, 작은 사랑에 충실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창하지 않은 사랑이지만 일상의 대수롭지 않은 일도 사랑으로 실천하면 주위에 기쁨을 줍니다. 이는 어린이의 단순하고 천진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태도입니다. 어린이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알기에 하느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깁니다. 하늘 나라는 바로 이런 어린이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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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 13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마르타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한평생 일하며 가난하게 사시다가 류머티즘이 심해져서 걷지 못하고 장애인이 되신 할머니입니다. 한 평도 안 되는 방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기도만 하며 지내셨습니다. 요즘은 앉아 있는 것마저 어려워 누워 계셔야만 합니다. 통증 때문에 묵주도 드실 수 없어 겨우 손가락으로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십니다. 사는 것이 지옥 아닌 지옥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일 텐데, 그 할머니는 여전히 천진한 어린이처럼 맑고 밝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다시 어린이처럼 단순해지기 시작합니다. 육체적 기력도 약해져서 일을 할 수도 없고 기억력도 떨어져서 모든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어린이가 자주 삐지 듯이 작은 일에도 섭섭해지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단순해지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단순해지느냐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젊어서 받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분노만 남아 있는 사람도 있고, 젊어서 욕심만 채우며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도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우고 기도하면서 산 사람들은 천진한 어린이처럼 다시 해맑아지고 노년이 아름답습니다. 바로 고통 속에서 누워만 계시지만 기도가 자신의 소명이 되어 사시는 마르타 할머니의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어 우리가 단순해지는 이유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해맑고 순수한 어린이처럼 단순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삶에 맑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만 남게 하고 나머지는 자꾸자꾸 비워 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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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14)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어린이는 순진하고 이해타산이 적은 이들이지만, 그것보다는 사회적으로 약자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강자인 어른들은 약자인 어린이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해타산의 방편으로 삼으려 드는 경향이 짙고, 때로는 자신들의 노리갯감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은 우선 약하고 가난한 이들 편에 서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행하시는 중용(中庸)의 도()입니다. 중용의 도는 저울추와 같아, 모자라면 보태 주고, 넉넉하면 덜어 내어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가진 사람들은 못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배운 사람들은 못 배운 사람들에게 배운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약자인 어린이들이 당신께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십니다. 주님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모두가 잘났다고 나서며, 더 가지려는 욕심으로 얼룩진 어른들에게 보내시는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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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15)


성모 승천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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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16)
(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기념일)


정아는 올 봄에 엄마를 잃었습니다. 이제 일곱 살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운명입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코끝이 찡해집니다. 정아의 유일한 희망은 천국에서 엄마를 만나는 일입니다. “정아야 잘 있었니? 할머니도 잘 계시고?” 어린이 미사 때면 일부러 정아에게 말을 건네려 애씁니다
승미는 아빠가 없습니다. 지난해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늘 어두운 그림자가 작은 어깨에 얹혀 있습니다. 주일 학교에서도 말이 없습니다. 어린것이 안쓰러워 만날 때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시키곤 합니다. 그럴 때면 쳐다보는 눈가에 목마름이 가득합니다.
미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흩어져도 승미는 가지 않고 기다립니다. 어깨를 안아 주고 잘 가라며 토닥거려야 떠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저는 승미의 아빠가 됩니다. 너무 빨리 삶의 슬픔에 적응해 가는 승미가 안타깝습니다. 시련이 은총이란 걸 언제쯤 깨닫게 될는지요?
세상에는 가슴 아픈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부분 어른들의 잘못이 원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 아이들을 축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축복하고 계십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따듯한 빛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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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18)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축복해 주시기를 청하는 모습을 전합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과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저지합니다. 아이들을 성가신 존재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을 귀찮은 일로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르셨습니다. 어린이들에 대한 축복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것은, 어린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수하게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마음을 지녀야 하늘 나라의 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어떠한 마음과 생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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