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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 강희재 요셉 신부님 말씀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19 조회수3,652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여호 24,14)” 여호수아는 모세가 했던 그대로 다시 약속의 땅에서 살게 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을 온전히 진실하게 섬길 약속과 다짐을 받아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주고받은 대화에서 여호수아의 간절함에 반해 이스라엘 백성의 가벼운 응답이 오고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하며 그들이 이미 알고 있고 또 실천해야 할 부분을 외우듯 대답합니다. 특별히 결코라는 말이 굳건한 의지의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가볍고 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간사한 마음과 나약함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의 의지와 능력은 한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의 약속은 의지의 문제이기 전에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차이가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일평생 하느님만을 섬기고 믿어왔던 여호수아와 달리 자신의 이해관계와 욕구에 따라 불만불평을 일삼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결코라는 말이 과연 힘이 실릴 수 있을까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그분을 섬겨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는 여호수아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온전하고 진실함은 참 많은 인내와 희생이 수반되는 만큼 그 차이를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께 온전함과 진실함을 한결같이 간직할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그 답을 줍니다.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이 그 답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할 수 있는 단순함 순수함, 믿음에 있어서 절대적인 신뢰, 언제든지 기대줄 아는 의탁, 손잡고 걸어가는 기쁨, 거짓 없이 진실하게 마주하는 태도,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청할 줄 아는 용기가 어린이와 같이 된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어린이에게는 결코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결코라는 말은 그 뒷면에 언제든 선택이 가능하다는 뜻이 있고, 자신의 이해와 해석에 따라 결코가 다른 곳에 붙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는 지금 보고 믿고 사랑하는 그 한 존재에 대한 단 하나의 선택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믿고 결코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기려는 열망을 키우고 갈망하는 것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처럼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안식을 누리는 복된 그분의 자녀로 변화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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