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0822 -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2 조회수3,04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8 22 () 가해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판관기 6,11-24 / 에제키엘서 28,1-10
마태오복음 19,23-30

 

-------------------------------------------------

 

 

1독서 (홀수 해)

 

▥ 판관기 6,11-24

그 무렵 11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제르 사람 요아스의 땅 오프라에 있는 향엽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12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기드온이 천사에게 물었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저희 조상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으셨더냐?’ 하며 이야기한 주님의 그 놀라운 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

14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15 그러자 기드온이 말하였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16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러자 기드온이 또 말하였다. “참으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면, 저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18 제가 예물을 꺼내다가 당신 앞에 놓을 터이니, 제가 올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이에 주님께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19 기드온은 가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잡고 밀가루 한 에파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기는 광주리에, 국물은 냄비에 담아 가지고 향엽나무 아래에 있는 그분께 내다 바쳤다.

20 그러자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렇게 하였더니, 21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내밀어, 그 끝을 고기와 누룩 없는 빵에 대었다. 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22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23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그래서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라고 하였다.


 

-------------------------------------------------

 

 

1독서 (짝수 해)

 

에제키엘서 28,1-10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
사람의 아들아, 티로의 군주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3
과연 너는 다니엘보다 더 지혜로워, 어떤 비밀도 너에게는 심오하지 않다. 4 너는 지혜와 슬기로 재산을 모으고, 금과 은을 창고에 쌓았다.
5
너는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6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7
그러므로 나 이제 이방인들을, 가장 잔혹한 민족들을 너에게 끌어들이리니, 그들이 칼을 빼 들어, 네 지혜로 이룬 아름다운 것들을 치고, 너의 영화를 더럽히며, 8 너를 구덩이로 내던지리라. 그러면 너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참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9
너를 학살하는 자 앞에서도, 네가 감히나는 신이다.′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너를 살해하는 자들의 손에 달린 사람일 뿐이지 신이 아니다. 10 너는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죽음을 맞이하리라. 정녕 내가 말하였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

 

 

복음


+
마태오복음 19,23-30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22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주님의 천사는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주님의 천사에게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삼켜” 버리게 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심을 확신하며 평화를 얻었습니다.
또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하고 인사하였습니다. 마리아가 그 인사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자,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을 낳게 될 것과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며 하느님께 순명하였습니다.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선포 100주년 기념으로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축일을 성모 승천 대축일의 팔일 축제가 끝나는 오늘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른 사도들이 영광스러운 열두 옥좌에 앉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뒤 성모님께도 승천의 영광을 입게 하시고,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성모님의 영광은 피조물이 받을 영광의 정점에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사도들의 모후로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 16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기념일)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시며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물론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바늘구멍이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매우 작은 문을 의미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큰 성문 곁에는 밤에만 출입하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매우 작아서 사람 하나도 간신히 통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작은 문을 당시 사람들은 바늘귀라고도 부르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 말씀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란 그만큼 어렵고, 유혹이 많이 따른다는 의미이지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유혹은, 권력과 재물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에 사회 여러 곳마다 부패가 생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재물만 가지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지 않습니까?
물론 재물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람은 세상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세상일에 관심이 많으면 그만큼 하느님의 필요성을 잊어버릴 위험이 많게 되지요. 그렇다고 오늘 예수님 말씀은, 부자들은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탈렌트나 재산을 이웃을 위해 어떻게 선용하는가 하는 점이지요. 바로 이 점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18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기드온은 보잘것없는 집안의 후손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이스라엘을 외적의 손아귀에서 구원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기드온을 하느님께서는 선택하십니다. 기드온과 함께 미디안을 치러 나설 군대도, 수만 명이 아니라 삼백 명이어야 했습니다. 숫자가 많으면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미디안을 쳐서 이긴 줄로 자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오늘 독서의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부자를 여러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권력이나 재능, 든든한 인맥이나 인기 등, 어딘가 확실하게 기댈 곳이 있는 사람을 부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 갖추고 있으면 하느님께 의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려울 때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스스로 믿고 의지하던 그 무엇이 무참하게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을 찾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흔합니까!
기드온이 스스로보잘것없는 자라고 고백하자, 하느님께서는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돈이면 다 해결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스스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자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지요. 또한 모든 희망을 지상의 것들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는커녕 하느님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지요. 그래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부자로 알려진 세관장 자캐오와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니코데모와 같은 사람을 본받아,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더 낫고, 보존하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진리를 명심하면서, 잠시 지나가는 보이는 것에 휘말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잊거나 놓치는 커다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 19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요한 외드 사제 기념일)


오늘은 내가 햇볕 속에 앉아 있는데, 푸른 자줏빛을 띤 큰 물고기가 텅 빈 마음의 어둠 속에서 헤엄쳐 지나간다. 눈을 감자 그 바다가 내 안에 펼쳐진다. 유쾌한 어두움, 즐거운 태양, 내가 염려하는 모든 것이 이미 끝난 세상을 비춘다”(『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요나의 표징』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담고 있는 바다를 머릿속에 그려 봅니다. 이럴 때면 앞에 인용한, 영성 작가 토머스 머튼의 바다에 대한 묵상이 떠오릅니다. 짧으나 깊디깊은 이 묵상은 매우 오래 전부터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감을 준다고 해야 할 머튼의 이 묵상을 되새기면 언제나 바다가 제게로 다가옵니다.
머튼은 바다의 서로 다른 세 가지 깊이의 단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수면이 가볍게 움직이는 바다, 거기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계획을 세웁니다. 두 번째 단계의 깊이에서는 눈을 감으면 다가오는 내적 존재의 동굴과도 같은 어둠이 다가옵니다. 태양 아래 바다 깊은 곳엔 평화가 있고, 우리는 거기서 기도합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더 이상 물처럼 깊지 않고 공기처럼 순수하고 짙은 어두움에서 뛰노는 적극적 삶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밤이기는 하지만 무엇이나 다 영적 지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추측이 없으며 깨어 있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 지혜의 순간을 만납니다. “우리는 요나를 고래에게서 구해야 한다. 요나가 자유로워져 열심히 기도하며, 올바른 정신으로 자유롭고 거룩해져 바닷가를 걸을 때 고래는 죽어야 한다.”
아주 오래 전 이 묵상을 대했을 때나 지금이나, 알 듯 모를 듯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묵상을 설명하는 것보다, 이 묵상을 대하면 기도에 푹 빠지게 하는 바다가 제 가슴속을 채운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인가 깨달았습니다. 이 여름, 그 바다가 다시 제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 20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이러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으라고? 아니야. 난 나를 믿어.” 어느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 열심히 살면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나를 믿는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독일 출신의 유명한 철학자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은 죄와 고통, 허무와 죽음 같은 한계 상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디 이 한계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교란 바로 이러한 인간의 한계 상황을 벗어난 영역, 곧 초월적인 영역을 제시하고 안내하며 이끌어 주는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한계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여기서 부자는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사람의 힘에 의존하는 이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공동번역 성서』 인용).
사람의 힘, 그것이 권력이든 재력이든 사교술이든, 또는 인내력이나 기획력, 창의력 등 어떤 능력이든 그 힘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 능력들이 인간의 한계 상황을 벗어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능력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죄와 고통, 허무와 죽음 같은 한계 상황은 더욱 뚜렷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힘에 의지하며 사는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 21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알렉산더 대왕은 죽기 직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죽게 되면 손을 관 밖으로 꺼내 주시오. 천하를 손에 쥐었던 자도 죽을 때에는 결국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오.” 사람은 한평생을 살면서 모았던 재물이나 쥐었던 권력을 죽을 때에는 놓고 갑니다. 죽을 때에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이를 잊은 채 살아갑니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바람입니다. 그런데 풍요로운 삶은 재물의 축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재물을 많이 가질수록 욕심과 걱정은 늘어 갑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가진 것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7). 가진 것을 아무리 움켜쥐어도 죽을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만, 가진 것을 남에게 주어 사랑의 흔적을 남기면 그 사람은 영원히 다른 이의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어 하늘의 곳간에 덕을 많이 쌓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 16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기념일)


출가’(出家)가출’(家出)은 똑같은 한자를 앞뒤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그 뜻은 참 다릅니다. 출가는 어떤 큰 뜻을 목적으로 하여 집을 떠나는 것이고, 가출은 다만 집을 나가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출가는 내적 자유를 위해 세속적인 인연과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집을 떠나는 것이기에 종교적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나 가출은 어떤 짐이나 문제를 벗어 버리려고 집을 나가는 것이기에 도피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출가는 단순히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며, 마음이 붙잡혀 있는 곳을 향하여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가짐에서도 어느 순간 또 다른 집을 짓고 그곳에 안주하고 싶은 순간이 옵니다. 살던 집은 떠났지만 어딘가에 다시 집을 짓고 거기서 머무르려는 순간부터 출가는 진정한 의미를 잃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출가를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의 마지막 결론은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입니다.
출가는 단 한 번〔家〕을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신의’()에서, 집착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그저 가출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실 제자들의 출가는 그들의 집을 나왔을 때가 아니라, 주님 부활 이후 그 진리에 온전히 투신할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신앙을 선택한다는 것은 굳이 사제나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출가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어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가치대로 산다면 그는 출가한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집을 떠나 있어도 세상 것에 대한 온갖 번뇌와 집착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는 가출한 사람일 뿐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17)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재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재물은 삶의 방편이며 수단일 뿐입니다. 재물은 결코 인간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줄 수도 없습니다.
무소유(無所有)는 가진 것이 없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소유는 가진 것을 비워 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덜어 내고 비워 내면서 주님의 뒤를 따른다면, 주님께서는 당신 은총으로 차고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텅 빈 충만’입니다. 썩어 없어질 하찮은 재물 때문에 주님을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삶의 태도가 어떠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18)


재물이 많다고 모두 부자는 아닙니다. 진정한 부자는 만족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재물에 감사할 줄 모르면 부자 대열에 들 수 없습니다. 재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삶의 ‘첫 자리’에 재물을 두고 늘 따라다닙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부자입니다.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에 비유되었던 부자입니다
만족하지 않기에 부족을 느낍니다. ‘영적 빈곤’입니다. 재물이든 지식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곁에서 볼 때는 ‘참 많이’ 가졌건만 밝은 모습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나무랄 데 없는’ 조건이지만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굶주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힘을 받지 못하면 그런 삶을 계속하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언제라도 ‘주님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힘이 재물의 힘보다 강하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힘이 주어집니다. 만족할 수 있는 힘이 살아납니다. 진정한 의미의 부자입니다. 생각이 마음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승과 저승에서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신앙인들은 ‘주님의 말씀’에서 힘을 얻습니다. 희망을 느낍니다. 재물보다 강한 것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19)
(
성 요한 외드 사제 기념일)


부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맨손으로 출발해 부자가 된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잘살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자는 ‘하늘이 정해 준다.’는 논리입니다.
하늘을 두려워하기에 절약할 줄 압니다. 실패를 만나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성공해도 겸손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2세들은 다릅니다. 그들이 물려받은 가업이 무너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똑똑하고 자신감 넘치게 운영하지만 결과는 석연치 않습니다. 하늘이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모르기에 부적을 찾기도 합니다. 수천만 원짜리 부적이 유행하는 이유입니다. 그까짓 종이가 무슨 힘이 있을는지요? 하늘이 함께해 주기를 바라는 증표일 뿐입니다.
재물이 많아지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재물은 ‘하늘과 멀어지라.’고 유혹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재물에 정신을 빼앗기면 구원은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21)
(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재물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재물의 힘을 하느님보다 강하다고 믿는 사람을 뜻합니다. 곧 재물이 많은 사람보다 재물의 위력에 굴복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족함을 느끼며 삽니다. 만족하며 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저 사람은 부자’라고 할 정도일지라도 본인이 ‘아니다. 나는 늘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이 보기에 가난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본인은 만족하며 산다면 그는 분명 부자인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구원에 이릅니다. 구원은 만족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니 재물이 최고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여기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위에 주님의 능력이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백 배의 상을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든 내세에서 이루어지든 우리는 그 말씀에 희망을 두며 살 뿐입니다.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분명 부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