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느려 터져도 상관없습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민승기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3 조회수4,030 추천수1 반대(0) 신고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분들, 언제나 꽃길만 걸어온 분들, 한걸음에 두 세 계단을 거침없이 뛰어오르시던 분들이었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제는 기력이 쇠하여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생무상(人生無常)도 느끼지만 동시에 인생의 신비도 체험합니다.

 

 

은혜로운 주님의 초대로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를 되돌아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기억해보십시오. 우리는 당시 눈도 채 못 뜬 갓 난 아기였습니다. 먹는 것, 씻는 것, 움직이는 것, 그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없다면 단 하루도 연명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누릴 것 안 누릴 것 다 누렸었지요. 그런데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또 다시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못 가누는 갓난아기로 되돌아갈 순간입니다. 인생이 참 불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공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우리의 근본, 근원을 망각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철부지요 애물단지, 골칫거리요 천덕꾸러기였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덕이 겸손의 덕,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그리고 ‘한결같은’ 겸손의 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코헬렛의 저자는 늙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읽는다.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트리는 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렛 12장 2~8절)

 

 

점점 눈에 띄게 쇠락하시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뵐 때 마다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저를 데리고 이리저리 다니시면서 아름다운 세상 구경을 마음껏 시켜주셨는데...그때가 참 좋았는데...이제는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어디가나 부축해드리고 보살펴드려야 하는 현실이 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신발 신기도 힘든 어머님의 신발을 신겨드릴 때 마다 요한복음사가의 말씀이 남의 말 같지 않습니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주고서, 네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한복음 22장 18절)

 

 

새삼 노약자들과 장애우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고마워집니다. 부모님 모시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를 때 마다 장애우들을 위한 주차 공간, 장애우들을 위한 화장실이 얼마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길을 가다가 만나는 몇 센티미터 안 되는 작은 턱 하나가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장애우들이나 노약자들에게는 큰 산 하나 넘는 것 못지않게 큰 도전입니다. 우리에게는 단 1분이면 충분한 계단 몇 개가 그들에게는 젖 먹던 힘을 다 써야 도달할 수 있는 엄청난 거리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2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약간은 이해하기 힘든 비유 말씀을 전개하고 계십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 포도밭에 일하러 온 일꾼들이 여러 명인데, 일이 끝나고 품삯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주인은 새벽 6시에 온 일꾼이나, 오전 9시에 온 일꾼이나, 오후 3시, 그리고 5시에 온 일꾼에게 조차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했다는 스토리입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이 복음이 정말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이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수님의 처사가 점점 고마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살고 있습니다. 물 찬 제비처럼 동작이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굼벵이나 나무늘보처럼 느려터진 사람도 있습니다. 머리회전이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오정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일개미나 꿀벌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채 하나 손에 들고 느릿느릿 한량처럼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완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한계와 부족함을 지니고 자신의 결핍 때문에 스스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점점 불러오는 아랫배와 비례해서 동작이 느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느려터진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저녁 5시까지 느긋이 기다려주시는 주님이 너무 좋습니다.

 

 

지각해도 상관없습니다. 게을러도 상관없습니다. 깜박하고 10시까지 잠을 자도 괜찮습니다. 늦어도 괜찮다, 늦었지만 왔으니 됐다며, 느려터진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당을 지급하시는 주님이 계셔 천만 다행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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