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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824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4 조회수3,19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8 24 () 가해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복음 묵상


요한 묵시록 21,9-14
요한복음 1,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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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요한 묵시록 21,9-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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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요한복음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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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24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다른 이름은 나타나엘입니다. 필립보 사도는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메시아, 나자렛 출신 요셉의 아들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공부한 사람이므로 유다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였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그럼에도 필립보 사도는 가서 예수님을 만나보자며 그를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거짓이 없는 참이스라엘 사람’,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임을 알아보셨습니다. 나타나엘도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고 고백하였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순교할 때까지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아르메니아와 아라비아에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의 축일을 맞아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그의 자세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도는 처음에 자신의 선입견과 학식에 의지하였으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하였습니다. 사도는 ‘하느님의 선물’이 되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바르톨로메오 사도를 본받아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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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 24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먼저 부르심을 받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소개하자, 그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당시 업신여김을 받던 나자렛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처럼 지역 차별이라는 하나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의 참모습을 아신 예수님께서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자신을 인정해 주자 나타나엘은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는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을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품을 수 있습니다. 사회의 규범에 얽매여 있거나, 내가 가진 정보나 지식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즉시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그러다 보니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억지 주장마저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굴레에서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지요.
하지만 나타나엘은 달랐습니다. 그는 즉시 고백하지요.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나타나엘의 열린 마음을 본받아 내가 가진 습관이나 태도, 가치관이 잘못되었으면, 이를 즉시 고치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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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24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요한 복음 앞부분에서는와서 보라.’는 초대가 이어집니다. 당신을 따르려는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와서 보라.’고 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 그분께서 머무르시는 곳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은 다음, 첫 제자가 됩니다(1,38-39 참조). 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안드레아는 가서 보고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고는, 형 시몬을 불러 그분께 데려갑니다(1,40-42 참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을 따라갔던 필립보도 나타나엘을 만나서는,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서가 예고하는 바로 그분이심을 전합니다.
와서 보라.’ 예수님에게서 시작하여 안드레아를 거쳐 시몬 베드로에게, 또 필립보를 통하여 나타나엘에게로 이어지는 이 고리가 우리에게까지 와 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시던 갈릴래아에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와서 보라.’는 초대를 전달하고 또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서 보고 믿었을까요?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에게까지……!
예수님께 이어져 있는 첫 번째 고리가 사도들입니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은 사도들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곧 교회의 초석이라고 선언합니다.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축일을 맞아, 우리에게와서 보라.’고 초대한 분들을 기억하고 또한 신앙의 모범을 통하여 우리도 다른 이에게와서 보라.’고 초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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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 24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연중 제2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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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 24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견우직녀라는 설화가 있습니다. 직녀와 견우가 혼인하여 사는데, 둘은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잠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직녀는 베를 짜는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여 하늘 나라에 옷이 부족하게 되고, 견우 역시 자기에게 맡겨진 가축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습니다. 옥황상제는 몹시 화가 나서 직녀는 은하수의 서쪽에서 베를 짜게 하고, 견우는 그 동쪽에서 살도록 명령합니다. 그 대신 일 년에 단 한 번, 곧 음력 칠월 초이렛날의 밤인 칠석에만 만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견우와 직녀가 일 년을 기다려 만나러 나왔지만 은하수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서 서로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들이 슬피 우는 모습을 본 까마귀와 까치는 너무 불쌍해서 서로 머리를 맞대 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이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그 다리를 오작교라고 합니다.
견우가 직녀를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저 멀리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오작교를 만드시어 우리를 만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과 인간,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시는 오작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하늘과 땅의 오작교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작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고, 이 세상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천사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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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 24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인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나타나엘이라는 이름은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에 압도되어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유다인들은 『성경』을 공부했어도 예수님을 믿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은 많은 표징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심지어 예수님께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그들과 달랐던 것입니다. 거짓이 없고 참된 사람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알아보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런 면에서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이끈 사람은 필립보 사도입니다. 필립보의 인도로 그는 주님을 만나 따랐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다른 이의 인도로 전해졌습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좋으신 분께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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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 24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하시면서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타나엘이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메시아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아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성경을 공부하고 토론을 하였습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 이끌려 새로운 삶으로 초대되기 전부터 이미 진리를 갈망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타나엘을 보시고, 그를 진실하고 진정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이웃과 나눔을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나타나엘이 메시아를 기다리며 말씀을 공부하던 모습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쾌락이 있는 곳으로 몰려갈지라도 신앙인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진실하고 가치 있는 삶인지를 고민하는 만남의 장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를 거슬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며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 나눌 때 우리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똑같이 칭찬하실 것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거짓이 없는 신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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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24)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러나 성령 강림 이후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그의 행적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교회 전승에 따라, 나타나엘이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아닐까 생각할 따름입니다.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라고 주님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면서, 주님의 존재를 잘 믿으려 하지 않았지요. 그러자 필립보가 “와서 보시오.” 하면서 그를 주님께 안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하시면서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나타나엘은 마침내 주님을 만나게 되자,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주님을 만났으니,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습니다. 이 만남으로 나타나엘은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분의 은총 덕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진실로 믿는 이들에게는 당신의 구원을 주시고, 당신 사업의 동반자로 삼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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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24)


“와서 보시오.” 필립보의 권고에 나타나엘은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의 운명이 바뀌는 만남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나타나엘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무엇인가’를 보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는지요? ‘진실’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진실한 마음’을 보지 못해도, 주님께서는 보십니다. 나타나엘은 ‘평상시 마음’ 그대로 나아갔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진실보다 소유를 선호합니다. 진실한 사람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더 챙깁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헤아리시지만, 우리는 물질을 가늠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고뇌와 번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필립보와 나타나엘,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삶 전체를 바꾼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뜻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평범한 삶이었는데 이제는 ‘고생하는 삶’이 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이런 삶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나타나엘은 훗날의 ‘바르톨로메오’ 사도입니다. 진실했기에 주님의 제자가 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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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24)


연중 제2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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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24)


우정이 두터운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작은 금덩이를 줍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둘은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배가 물 한가운데 왔을 때 금덩이를 가지고 있던 친구가 금덩이를 슬그머니 물속에 버렸습니다. 그제야 옆 친구가 놀라며 그 귀한 것을 왜 버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우정에 금이 갈까 봐 버렸다고 답했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과 통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목적 없이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려고 비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비워야 할 때를 알고 대처한다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와서 보시오.” 필립보의 이 한마디에 나타나엘은 자신의 뜻을 비우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질보다는 양을 내세우고 있는 요즈음 세상입니다. 무엇이든 많아야 하고, 숫자가 높아야 안심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교회마저 그러한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비우기보다는 닥치는 대로 채우려 든다면 어찌 주님의 힘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우정을 위하여 금덩이도 마다한 동화 속의 친구가 그립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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