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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4 조회수3,81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7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제1독서 묵시 21,9ㄴ-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복음 요한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철학가이자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은

“진정한 성공은 평화로운

상태에 놓이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곧바로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평화로운 상태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이지요.

그는 주체의 삶을 회복하고

타인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늘

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내 자신이

인정받는 것 같고,

그래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다보니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얼굴 표정에서부터

큰 변화가 옵니다.

즉, 얼굴 표정만 봐도

얼마나 화가 나는지

그리고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이 공존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큰 상처를

받았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두려움과

불안 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별 것이

아닐 때가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1미터 폭의 도로

밖을 벗어나지 않고 자전거를

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 어떤 분은 양 손을

들고 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10미터 높이에

위치하고 있는 난간이 없는

1미터 폭의 도로 위를

자전거로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쉬울까요?

곧바로 두려움과 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양손을 들고 자전거를

타겠다는 무모한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고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이란 10미터

높이에 위치시키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바로 땅으로 내려놓는다면

 별 것 아닌 것으로,

오히려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평화로운 상태에

놓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타나엘은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는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인정해주시는

 주님을 만나면서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라고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까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지켜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했고, 순교의 영광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 안에서 겪게 되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인정해주는 주님 안에서

극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의

상태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로써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들

역시 바로 이 평화로운 상태에

놓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통해 이 세상 안에서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또한 세상 안에서의 인정보다는

주님께 인정받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좀 더 평화로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계속해서 인정해주고

기다리려 주십니다.

인생은 요리와 같습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알려면

일단 모두 맛부터 봐야 하죠.

(파울로 코엘료)

바르톨로메오 사도.

"나의 다이아몬드."

어떤 사람이 자기의

농장을 팔아치우고

다이아몬드를 찾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많은 역경을 거치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하고 끝내

 큰 절망 속에서 집 없는

거지로 생을 마감했지요.
한편 그에게 농장을 매입한

새 주인은 그곳에서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열심히

이 땅을 가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글쎄 전 주인이 버려두었던

뒤뜰이 다이아몬드

광산이었던 것입니다.

한 에이커 밖에 안 되는 땅에

다이아몬드가

가득 묻혀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의

다이아몬드를 찾아 헤맵니다.

그런데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습니까?

산 넘고 물 건너 아주 먼 곳에

위치하고 있을까요?

렇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뒤뜰에 있었습니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일 등이 바로

나의 다이아몬드가 아닐까요?

그리고 나의 나눔, 희생,

사랑의 실천 등이

광산을 발견하는

힘찬 삽질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경관도

나의 다이아몬드가 아닐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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