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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5 조회수2,757 추천수7 반대(1) 신고

 

2017년 8월 25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제1독서

룻 1,1.3-6.14ㄴ-16.22

1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4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복음 마태 22,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제가 인천 시내를 나갈 때에

항상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워낙 자주 다니는 길이다 보니

어느 차선으로 가야

더 빨리 갈 수 있는지,

 어느 구간에 속도와

신호 단속 카메라가 있는지

등을 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가 없을 때에는

과속도 하게 되는 길입니다.
이렇게 잘 알고 있으니

누구보다도 빠르게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얼마나 빨리 도착하는지

시간을 재보았지요.

혹시라도 끼어드는 차로 인해

 방해받을까봐 앞 차에 바싹

 붙어서 운전을 했고,

과속을 할 수 있는 구간에서는

과감하게 과속도 했습니다.

빨리 갈 수 있는 차선을 찾아서

 계속 차선 변경도 했습니다.

성지까지 도착하는데

 40분 걸렸습니다.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다면서 흐뭇했지요.
다음 날에도 이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운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규정 속도를 철저히 지키고,

 앞 차와의 간격도 충분히 띄어

놓아서 다른 차들이 끼어드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지키면서

 또 여유를 가지고 운전을 했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렸을까요?

깜짝 놀랐습니다.

44분 걸렸습니다.

겨우 4분 차이인 것입니다.

이 4분을 단축하겠다고

 전날에는 40분을

 초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다른 차를 향해

부정적인 마음도 품었으며,

남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었습니다.

4분의 보상을 위해서 이러한

상황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저에게 이득일까요?

손해일까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입니다.

즉, 삶의 질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늘 속도를

 더욱 더 중시했던 것 같습니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고

바쁘게만 달려가면

목적지에서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한 율법 교사

한 명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옛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신 뒤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침으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계명을 나누고 쪼개어서

세부 조항을 만듭니다.

즉,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조항이 248개, ‘하지 마라.’는

조항이 365개,

도합 613개의 율법입니다.

이 율법 가운데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조금의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단호하게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시지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사랑의 마음 없이

행한다면 아무리 율법을

지킨다 해도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방향이 잘못된 것이지요.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사랑’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맞춰나간다면 어떨까요?

비록 속도가 느려도 방향만

제대로라면 분명히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의

선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꿈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남들보다

금 더 잘 하는 것,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그런 사소한 행복에

집중하는 게 중요해요.

(주호민)

송주석 안셀모 신부님

1주기 미사 다녀왔습니다.

"열의를 가져보세요.

배움이 재미있습니다."

학창시절에 학교 가기가

너무 싫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공부를 하다가 앞으로

학교 다닐 시간을 계산해보니

끔찍한 것입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여기에 대학교 4년까지

앞으로 10년을 꼼짝없이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신학교에 들어가서

대학원까지 다녔으니

도합 13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신부로 살아가면서

시험을 보는

학교에 갈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 주님도

 더 잘 알 수 있고,

주님의 뜻에 맞게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에는

이 사실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바로 열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서 처음 간

 본당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학교가 있었습니다.

학교라고 공식 명칭이

되어있는데,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1년이라는

 짧은 과정입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마칠 때쯤

어떤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뭔 놈의 대학이 1년 만에 끝나?

서운해 죽겠네.”
배움에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분명히

 배움에는 때가 없습니다.

열의만 있다면 누구보다도

신나게 공부할 수 있고,

기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해바라기가 벌써?

가을이 다 왔나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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