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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826 -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6 조회수3,31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8 26 () 가해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룻기 2,1-3.8-11; 4,13-17 / 에제키엘서 43,1-7
마태오복음 2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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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룻기 2,1-3.8-11; 4,13-17

엘리멜렉의 아내 1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 가문으로 재산가였는데, 이름은 보아즈였다.
2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들로 나가,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 뒤에서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래 가거라, 내 딸아.” 하고 말하였다. 3 그래서 룻은 들로 나가 수확꾼들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 가문인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
8
보아즈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들어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갈 것 없다. 여기에서 멀리 가지 말고 내 여종들 곁에 있어라. 9 수확하는 밭에서 눈을 떼지 말고 있다가 여종들 뒤를 따라가거라. 내가 종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였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 있는 데로 가서 종들이 길어다 놓은 물을 마셔라.
10
그러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방인인데,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
11
보아즈가 대답하였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4,13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점지해 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5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는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이 아기가 그대의 생기를 북돋우고 그대의 노후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Ru 2:1-3, 8-11; 4:13-17

Naomi had a prominent kinsman named Boaz, of the clan of her husband Elimelech.
Ruth the Moabite said to Naomi, "Let me go and glean ears of grain in the field of anyone who will allow me that favor."
Naomi said to her, "Go, my daughter," and she went. The field she entered to glean after the harvesters happened to be the section belonging to Boaz of the clan of Elimelech.

Boaz said to Ruth, "Listen, my daughter! Do not go to glean in anyone else's field; you are not to leave here. Stay here with my women servants. Watch to see which field is to be harvested, and follow them; I have commanded the young men to do you no harm. When you are thirsty, you may go and drink from the vessels the young men have filled."
Casting herself prostrate upon the ground, Ruth said to him, "Why should I, a foreigner, be favored with your notice?"
Boaz answered her: "I have had a complete account of what you have done for your mother-in-law after your husband's death; you have left your father and your mother and the land of your birth, and have come to a people whom you did not know previously."

Boaz took Ruth.
When they came together as man and wife, the LORD enabled her to conceive and she bore a son.
Then the women said to Naomi, "Blessed is the LORD who has not failed to provide you today with an heir! May he become famous in Israel! He will be your comfort and the support of your old age, for his mother is the daughter-in-law who loves you. She is worth more to you than seven sons!"
Naomi took the child, placed him on her lap, and became his nurse.
And the neighbor women gave him his name, at the news that a grandson had been born to Naomi.
They called him Obed.
He was the father of Jesse, the father of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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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 (짝수 해)


에제키엘서 43,1-7

천사가 1 나를 대문으로, 동쪽으로 난 대문으로 데리고 나갔다. 2 그런데 보라,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동쪽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았고, 땅은 그분의 영광으로 빛났다.
3
그 모습은 내가 본 환시, 곧 그분께서 이 도성을 파멸시키러 오실 때에 내가 본 환시와 같았고, 또 그 모습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본 환시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4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5 그때 영이 나를 들어 올려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6
그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는데, 주님의 집에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7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사람의 아들아, 이곳은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이다.”


EZ 43:1-7AB

The angel led me to the gate which faces the east, and there I saw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coming from the east.
I heard a sound like the roaring of many waters, and the earth shone with his glory.
The vision was like that which I had seen when he came to destroy the city, and like that which I had seen by the river Chebar.
I fell prone as the glory of the LORD entered the temple by way of the gate which faces the east, but spirit lifted me up and brought me to the inner court.
And I saw that the temple was filled with the glory of the LORD.
Then I heard someone speaking to me from the temple, while the man stood beside me.
The voice said to me: Son of man, this is where my throne shall be, this is where I will set the soles of my feet; here I will dwell among the children of Israel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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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Mt 23:1-12

Jesus spoke to the crowds and to his disciples, saying, "The scribes and the Pharisees have taken their seat on the chair of Moses. Therefore, do and observe all things whatsoever they tell you, but do not follow their example. For they preach but they do not practice. They tie up heavy burdens hard to carry and lay them on people's shoulders, but they will not lift a finger to move them. All their works are performed to be seen. They widen their phylacteries and lengthen their tassels. They love places of honor at banquets, seats of honor in synagogues, greetings in marketplaces, and the salutation 'Rabbi.' As for you, do not be called 'Rabbi.' You have but one teacher, and you are all brothers. Call no one on earth your father; you have but one Father in heaven. Do not be called 'Master'; you have but one master, the Christ. The greatest among you must be your servant. Whoever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but whoever humbles himself will be exal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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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26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과 허영을 질책하십니다. 높은 자리를 찾으며 남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알맹이 없는 삶이며 쭉정이 같은 겉치레를 낳습니다. 바리사이였던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깊이 새겼습니다. 사도는 율법의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리는’(2코린 3,6 참조)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보이려고 선행과 기도를 한다면, 바리사이처럼 ‘회칠한 무덤’이 됩니다. 우리가 모든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신한다면, ‘율법 학자의 교만’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윗자리를 좋아하고 존경 받기를 바란다면, 그들의 허영을 배우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모시는 우리는 그분의 겸손과 고난을 따라야 합니다.
율법은 거룩한 것이지만, “율법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죄 많은 여러 욕정이 우리 지체 안에서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로마 7,5)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갑니다. 율법의 행위로 완성되지 못한 구원이 속죄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영적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율법에 사로잡혀 말로만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의 의로움은 외적인 행위로 하느님을 완전히 섬길 수 있다는 자만을 낳습니다. 은총의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성덕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성령에 따라 살며 그리스도의 생명과 평화를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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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 20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오늘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강력히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막상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율법의 근본정신은 무엇입니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하느님을 흠숭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나아가 이웃의 범위를 확장하며,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목적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주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인간을 부당한 억압과 멍에로부터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경우 율법의 정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또 다른 멍에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예 지키지도 못할 많은 규율과 범례를 만들고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찬 사람들에게 그 어려운 율법의 세세한 조항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얼마나 자비하신 분이신지를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도 몰랐던 것이지요.
우리는 종교를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 계명의 껍질보다도 그 속뜻을 알려고 노력해야 하지요. 동시에 우리 주변의 사람 하나하나를 다 예수님 대하듯 귀하게 대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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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22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당시 지도층에 속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질타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위선자라는 그리스 말에는 가면을 쓴 연극배우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위선자는 하느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는 자기 자신 앞에서도 연극하는 것처럼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앞의 말씀은 우리가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자위하면서 누군가를 비난할 때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정치적으로든 사회적 또는 종교적으로든 권위를 지닌 사람들 아래 있는 이들이 자주 되뇌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특별히 한 구절이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권위마저 잃게 되지요. 그래서 말만 번드럽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경우, 그들의 말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옳은 말을 한다면, 그가 그대로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처럼 살아가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가르침에는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모세의 자리에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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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 23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기념일)


오늘 복음은 가치의 경중을 가늠하는 우리의 관점과 지향이 얼마나 세속에 뿌리 깊이 물들어 있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학식과 지위와 존경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남들과 다른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이 느끼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성공한 삶의 핵심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시듯, 대접받는 것과 선생 노릇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 모든 이가 학식이나 지위, 나이나 연륜에 상관없이 유일하고 참된 스승인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배우고 나누는 가르침과 존경은, 주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진리를모시고살도록 서로서로섬기는형제적 사랑으로 표현될 때에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올해는 평신도로서 농민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힘썼고 깊은 영성으로 가톨릭 생명운동의 선구자가 된 무위당 장일순 요한 선생의 2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말과 글을 아낀 사람이지만 그의 이야기들은 옷깃을 여미게 하고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합니다. 그는 진리를 모시고 서로 섬기며 사는 삶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소박하게 자신의 몫을 실천하는 데서 비롯한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오랜만에 그의 그윽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진리이신 주님을 겸손하게 모시고 서로서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절감합니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만 가지를 다 헤아리고 갈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러나 자기가 타고난 성품대로 물가에 피는 꽃이면 물가에 피는 꽃대로, 돌이 놓여 있을 자리면 돌이 놓여 있을 만큼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가면모시는 것을 다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나락 한 알 속의 우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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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 24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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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 25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루도비코 기념일)
(
성 요셉 데 갈라산즈 사제 기념일)


바리사이들은 위선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들은 윗자리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 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전문가라고 자처하였지만 실은 율법을 빙자한 허영과 가식의 전문가였습니다. 그들은 남에게 보이고자 겉모습을 꾸몄습니다. 남에게 보이려는 선행과 기도는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회칠한 무덤은 아무리 겉이 화려해도 그 속에는 썩은 시체가 들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스스로 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하느님 없이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하느님 앞에 인정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세입니다. 심지어 성인들도 생전에 잘못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인은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굳게 믿은 사람입니다.
경전을 가르치는 선생은 많아도 사람됨을 가르치는 스승은 적다.”고 합니다. 머리로 가르치는 것은 쉬워도 몸으로 가르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허리를 굽혀 남을 섬기는 사람이 큰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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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 20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어느 신문에서 대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제1순위는정치인이었습니다. 한편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물었더니, ‘환경 미화원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젊은이들 마음속에 가장 힘없어 보이지만 묵묵히 세상을 위해 일하는 가난한 사람이 가장 존경스러워 보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적 권위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과거와 달리 어떤 인물이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존경 받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행위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와 신분을 가졌어도 멸시 받을 수 있으며, 아무리 약하고 힘없어 보이며 작은 일을 한다 해도 존경 받으며 권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이미 이런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가리키시며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삶에 알맹이는 없으며, 쭉정이 같은 겉치레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생색내기에만 열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에는 묵묵히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겉꾸밈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에만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와 같은 사람들은 결국자기가 아닌 자기가 주인이 되어 광대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결국 그를 광대로만 바라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수많은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도 진실한 내 삶을 보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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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21)
(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백성 위에 군림하려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을 심하게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며,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들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식인과 지도자가 되려면, 자신의 지식을 못 배운 사람과 나누고, 자신을 낮추어 가난한 백성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참된 지식인과 지도자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리스도인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주님을 닮아,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낮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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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22)
(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참스승은 주님뿐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으로부터 인정받고 힘을 받아야 ‘또 다른’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생명은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셨기에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진정한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는 한 분이시며, ‘하늘에 계신 그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못 알아보고 있습니다. 지식과 ‘이론의 틀 속에 갇혀’ 못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낮추라고 하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주님 앞에 서라는 말씀입니다. 겸손하면 하늘이 도와주고 은총이 보호합니다. 신앙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는지요? 먼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바리사이’들은 민중과 떨어져 살려고 애썼습니다. 함께 살면 율법을 어기고 부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율법의 스승으로 처신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율법의 ‘근본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선자라고 꾸중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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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23)
(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기념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승이라 불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렵게 접근할 표현은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스승이고 아버지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육친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아버지는 하느님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스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은 주님께만 있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고 계십니다. 말은 잘하면서 실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에게는 의무를 지우면서 본인들은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윗자리를 찾고,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스승이라 불리고 싶어 합니다.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성경뿐 아니라 조상들의 전통에 있는 율법까지도 지키려 하였습니다. 자기들만이라도 계명에 철저한 사람들로 남으려 했습니다. 그래야만 민족의 구원이 앞당겨진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바리사이’라는 용어는 ‘분리하다, 구별하다’는 동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민중과 분리되어 살려고 무던히 애썼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다 보면 율법에서 말하는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알고 그랬건 모르고 그랬건 그러한 행동은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에 위배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예수님의 질책을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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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25)
(
성 루도비코 기념일)
(
성 요셉 데 갈라산즈 사제 기념일)


성경을 보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가끔 예수님을 반대합니다. 그들의 심성이 악하거나 악의 세력과 연계되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앞장서서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질책을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의 신앙이 위선과 형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닌 잘못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믿음, 하느님보다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신앙,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세 등입니다. 그러니 계명을 잘 지키고 열심히 단식하고 아무리 애써 기도해도 참된 존경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세가 없으면 그렇게 된다고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세는 마음먹는다고 저절로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은총의 도움이 함께하여야 합니다. 섬기는 자세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은총이 주어질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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