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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6 조회수4,089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7년 8월 26일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제1독서 룻

2,1-3.8-11; 4,13-17

엘리멜렉의 아내

1 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 가문으로

재산가였는데,

이름은 보아즈였다.
2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들로 나가,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 뒤에서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그래 가거라, 내 딸아.”

하고 말하였다.

3 그래서 룻은 들로 나가

수확꾼들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

가문인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
8 보아즈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들어라.

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갈 것 없다.

여기에서 멀리 가지 말고

내 여종들 곁에 있어라.

9 수확하는 밭에서

눈을 떼지 말고 있다가

여종들 뒤를 따라가거라.

내가 종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였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 있는 데로 가서

종들이 길어다 놓은

물을 마셔라.”
10 그러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방인인데,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
11 보아즈가 대답하였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
4,13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점지해 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5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는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이 아기가

그대의 생기를 북돋우고

그대의 노후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복음 마태 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저는 형제가 많다보니

조카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첫째 조카에 대한

기억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또 오래

간직되는 것 같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고

그 자리에서

제가 대부를 섰던 기억,

삼촌이라고 말하면서 졸졸

제 뒤를 쫓아다니던 귀여운

조카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커버리고

말았습니다.

결혼을 해서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또 직장에서는 충실한 직원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쳐다봐도

귀엽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번쩍 안았을 때 까르르 웃던

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제는 키도 저보다 훨씬 커버려서

안고 싶어도 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렸을 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어렸을 때의 모습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변해 버린 조카를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크게

성장했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조금 아쉬움은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만 사랑하고

변해버린 모습은 사랑하지

않는다면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변해버린

모습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변화를 떠올려 보십시오.

전혀 성장하지 않고 그냥 똑같은

모습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까?

변하는 모습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변한 모습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사람이 변했어.”

라고 말하면서 실망하고 다투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 지요.

변하는 모습까지 사랑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며

행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 계속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꾸짖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율법에 얽매여

있어서 말만 하고 사랑의 실천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흐름, 그리고 사람의

변화에 맞춰서 사랑의 실천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인데,

실천보다는 과거 율법의 세세한

조항만을 무조건 따르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종교지도자들처럼 과거에

 매어 있어서 어렵고 힘든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족쇄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롭게 하는

그래서 더욱 더 기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위해

높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높은 사람은

지시만 할 뿐이지요.

그래서 말만 하게 됩니다.

사랑은 이 세상 안에서

늘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에,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말만 하는

높은 자리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대신 낮아지고 낮아져야지만

주님의 사랑을 우리의 몸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이

거꾸로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이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은 다 걸어다니는

거울이에요.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기란 어려운 일인데,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거지요.

(정복)

조카의 결혼식날...

결혼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알지 못하더라도"

(‘좋은생각’ 중에서)

뉴질랜드 목장에서 양을

키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양들을

몰고 나가 풀을 뜯게 하고

저녁에는 다시

목장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그는 양들의

다리에서 피가 나는 걸 보았다.

알고 보니 산길을 내려오다

가시나무에 찔린 것이었다.

그 가시나무에는 뽑힌

양털이 수북했다.

그는 가시나무를 베기로 했다.
다음 날, 도끼를 들고

가시나무 근처에 다다랐을 때

그는 주위에 모여 있는

새들을 발견했다.

새들은 양털을

입에 물고 날아갔다.

알을 품는 둥지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나무를

베지 않고 돌아왔다.

친구가 이유를 묻자

그는 말했다.
“새들은 양의 털이 뽑히는

아픔을 모를 거야.

 양 또한 자신이 새에게

도움을 주는지 모르겠지.

우리도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희생과 배려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어떤 것도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 세상을

고 있는 내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갑곶성지에서 발행하는 저의 묵상집..

 쓰담쓰담 9월호가 나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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