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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같은 은총 다른 효과'가 생기는 이유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6 조회수3,450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년 가해 연중 제21주일


<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복음: 마태오 16,13-20





예수님 십자가의 길


MEMLING, Hans 작, (1470-71)

 

 

  

제가 통풍이 걸려서 양약을 복용하다 중도포기하고 지금은 한약으로 바꾸었습니다. 또 엄지발가락 관절이 부어서 그냥 한약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한약으로 바꾼 다음에는 요산수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또 한의사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병을 고치기는 쉽지 않을 듯 싶습니다.

 

약물을 복용할 때 그 약물을 얼마나 처방에 맞게 복용하느냐를 복약순응도라고 합니다. 한 뉴스에서 복약순응도에 따라 약물의 효과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방영했었습니다.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백혈병도 골수이식 없이도 약물만 잘 복용하면 치유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 인터뷰 환자는 백혈병인데도 약물복용만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약물을 처방에 맞게 제 때에 정량을 복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약물의 복용법은 제약회사가 수없는 실험을 거쳐 시간, 횟수, , 삼키는 방식, 물의 양, 삼가야 할 음식 등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지킬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합니다. 약물로만 백혈병을 이겨낸 환자는 목숨을 걸고처방대로 복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문영철 이대목동병원 혈액종양내과장이 백혈병 환자에게 같은 약을 처방해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환자의 40% 정도는 결국 병이 나빠지는 경우를 경험하는데, 대부분은 약을 정확하게 복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분들은 대게 2차 약제로 넘어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쁜 급성 백혈병으로 진행하면서 목숨을 잃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얻게 됩니다.”

‘40%’는 매우 큰 수치입니다. 이 수치가 약물의 내용이 아니라 복용의 방법에 따라 그렇게 나타난다니 놀랍기까지 합니다. 저도 의사가 시키는 대로 계속 할 걸!’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병을 치료하려면 의사가 주는 약은 물론이요 의사에 대한 신뢰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약물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총이라고 다 같은 효과를 내지는 않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

주님도 당신 귀중한 은총을 그 합당한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 하십니다. 이것이 같은 성체를 영해도 다른 효과가 나는 이유입니다.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모릅니다. 성체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성체를 영해봐야 그 효과가 매우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인 성체성혈을 돈을 받고 판다면 우리는 얼마를 드릴 수 있을까요?

한 임금이 다른 나라로부터 받은 커다란 두 진주를 하인에게 주며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거저 주라고 하였습니다. 과일장수는 사과 두 개를 주겠다고 했고 야채장수는 감자를 두 개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석상은 자신의 재산을 다 주겠으니 그것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그 진주가 누구의 차지가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성체를 영하려면 가진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면 그래도 영할 수 있을까요? 만약 성체 대신 자식의 목숨을 원한다고 해도 성체를 택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치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인 양 그것을 위해 세상 어떤 것도 아끼지 말아야합니다. 불과 100여년 전만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있는 신앙인들은 그렇게 값을 치르고 성체를 영했습니다. 미사나 고해성사 한 번 보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차자리가 부족하여 나오지 않고 본당 신부님에게 상처 받아 나오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내 자신도 그 은총에 합당한지도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교회를 세우실 반석을 찾으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며 그에게 당신의 성령인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는 당신이 가진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당신 피로 얻은 죄사함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총을 아무에게나 맡기신다면 홀대 받을 것이 뻔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임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사람이라야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알고 귀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인간이나 예언자들 중 하나로 여기면 그 받는 것도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같은 오단 묵주를 선물로 받았다고 해도 신부님이 준 것과 교황님이 주신 것과는 차이가 있겠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올바로 알아보는 이를 찾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만이 성령의 빛으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고백하여 교회의 반석이 됩니다. 교회는 그렇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베드로 덕에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만이 그 합당한 은총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교회를 그저 사람들의 집단으로 여기고 있다면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체성사나 고해성사도 그저 사람이 주는 작은 은총으로밖에 여기지 않고 그만큼밖에 죄사함을 받지 못하기에 또 같은 죄를 반복하게 됩니다. 바오로가 교회를 박해할 때 예수님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주시는 은총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처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합니다. 교회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교회에서 처방 받는 은총의 효과도 줄어드는 것입니다. 의사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약의 효과가 줄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1883년 체코 프라하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소년은 다른 남자아이들과 달리 감성적이고 섬세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만만하고 권위적인 그의 아버지에게 언제나 못마땅한 점이었고, 그는 끊임없이 남자답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다그침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반하는 욕구들이 가득했지만 겉으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소심하고 알 수 없는 죄의식에 빠진 온순한 소년이었던 그는 1901년 고등학교를 마치고 독일 뮌헨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지만, 사회적인 성공을 중요시하는 그의 아버지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그런 일을 싫어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힌 그는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관심도 없는 법학을 공부하던 그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그 친구의 도움과 격려가 없었더라면 글쓰기를 계속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소년은 바로 프란츠 카프카였으며, 그 친구는 막스 브로트였습니다. 카프카가 병으로 41년이라는 짧고도 긴 삶을 마쳤을 때 브로트는 그의 책상 서랍에서 자기에게 보내는 유언장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고독하고 망설임 투성이의 삶을 산 자신의 글은 모두 태워 없애달라는 부탁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출판된 책도 재판 발행을 중지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브로트가 그 부탁을 들어주었더라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은 살아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브로트는 유언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브로트가 절친한 친구의 유언을 이행하지 않았던 것은 카프카가 남긴 글들이 너무나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카프카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판>, <아메리카>, <>이라는 세 편의 소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로트의 덕택으로 오늘날 우리는 카프카의 수많은 단편과 일기, 편지 등을 읽게 된 것입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아들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순결한 눈으로 카프카를 바라볼 줄 아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브로트는 카프카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쓴 편지, 일기, 낙서까지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았습니다. 만약 어떤 누가 떠나가며 자신의 유산을 남기고 싶을 때 누구에게 그 유산을 남기고 싶겠습니까? 그 유산을 잘 지켜줄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 유산을 잘 지켜줄 사람은 그 유산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어떤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주교는 물러가라!”라며 교구청에 와서 크게 소리칩니다. 교회를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교가 없으면 교구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집회가 끝나면 꼭 미사에 참례해서 성체성사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성사는 은총이 되지 못합니다. 마치 그리스도를 물러가라고 해 놓고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교회를 먼저 완전하게 믿어야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통해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 아멘!”이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성체가 예수님의 몸임을 먼저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그 성체와 성혈의 변화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짐을 믿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먼저 믿지 않으면 그 은총의 효과도 보장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주는 약의 효능은 믿지만 그 약의 복약순응도는 떨어지는 신앙인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먼저 교회를 그리스도로 알아볼 줄 알아야 그 믿음 때문에 그 안에서 받는 성사 또한 그리스도께로부터 받는 은총의 효과를 그대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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