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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827 - 가해 연중 제21주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7 조회수2,53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8 27 () 가해 연중 제21주일 복음 묵상

(성녀 모니카 기념일)

이사야서 22,19-23
로마서 11,33-36
마태오복음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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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이사야서 22,19-23

주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나는 너를 네 자리에서 내쫓고, 너를 네 관직에서 끌어내리리라.
2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나는 힐키야의 아들인 나의 종 엘야킴을 불러, 21 그에게 너의 관복을 입히고, 그에게 너의 띠를 매어 주며, 그의 손에 너의 권력을 넘겨주리라. 그러면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집안의 아버지가 되리라.
22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23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왕좌가 되리라.

Is 22:19-23

Thus says the LORD to Shebna, master of the palace:
"I will thrust you from your office and pull you down from your station. On that day I will summon my servant Eliakim, son of Hilkiah; I will clothe him with your robe, and gird him with your sash, and give over to him your authority. He shall be a father to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and to the house of Judah. I will place the key of the House of David on Eliakim's shoulder; when he opens, no one shall shut when he shuts, no one shall open. I will fix him like a peg in a sure spot, to be a place of honor for his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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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1,33-36

33
!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Rom 11:33-36


Oh, the depth of the riches and wisdom and knowledge of God!
How inscrutable are his judgments and how unsearchable his ways!
For who has known the mind of the Lord or who has been his counselor?
Or who has given the Lord anything that he may be repaid?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for him are all things.
To him be glory forever.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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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16,13-20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Mt 16:13-20

Jesus went into the region of Caesarea Philippi and he asked his disciples, "Who do people say that the Son of Man is?" 
They replied, "Some say John the Baptist, others Elijah, still others Jeremiah or one of the prophets."
He said to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Simon Peter said in reply,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Jesus said to him in reply, "Blessed are you, Simon son of Jonah. For flesh and blood has not revealed this to you, but my heavenly Father. And so I say to you,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the netherworld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I will give you the keys to the kingdom of heaven. Whatever you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Then he strictly ordered his disciples to tell no one that he was the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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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08 20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
성녀 모니카 기념일)


이사야 예언자는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하고 예언하며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해 계시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유다인들의 불순종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퍼졌다는 역설적인 설명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교도 지역인 티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다가 어떤 가나안 부인의 절박한 소원을 듣게 됩니다. 그 어머니는 딸의 고통을 통해서 구세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외침을 주위 사람들이 무시하였으며 예수님마저 그 여인의 인내심과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이방인 여인은 구세주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며 딸의 치유를 끈질기게 간청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식탁의 빵 부스러기 같은 은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한 어머니의 커다란 믿음으로 딸이 악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방인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의 보편적 자비와 사랑을 드러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믿음은 주님의 몸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경배하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방인 여인의 믿음은 마귀 들린 딸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은 고통과 속박이 클수록 좌절하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움을 갈구하게 됩니다. 티로와 시돈 지방의 가나안 여인은 주님을 선택하였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온갖 비하와 소외감도 그녀를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믿음은 모든 고통을 이겨 내게 합니다. 믿음은 온갖 속박의 사슬을 끊어 버립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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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21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이사야서 66,18-21
히브리서 12,5-7.11-13
루카복음 13,22-30


오늘 복음 첫머리를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성찰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는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내 상태에 안주해서는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도 믿음을 굳게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려면 먼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 나는 그분 앞에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부터 인정해야만 합니다. 물론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악과 불의가 선과 정의를 이기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천사, 영혼, 사랑 등이지요. 어떤 사물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은 ‘내가 하느님을 볼 수 있으므로 믿는다.’가 아니라, ‘하느님을 볼 수 없어도 믿는다.’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지금 들어주시기에 믿기보다는 나의 기도를 지금 들어주지 않으셔도 믿어야 합니다. 이럴 때 나의 믿음은 굳건해질 것이며, 나에게 주어지는 시련과 고통마저도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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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23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기념일)

여호수아기 24,1-2.15-17.18
에페소서 5,21-32
요한복음 6,60-69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다른 신이 아닌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음 장면에서 여호수아는 거룩하신 하느님, 우상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그들이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으리라고 단언하는데, 그래도 이스라엘은 그분을 섬기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너희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한 그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여호 24,22) 하고 다짐합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많은 이가 이미 예수님을 떠나간 다음의 말씀인데, 떠나려면 일찌감치 떠나라는 분위기의 어조입니다. 만약 그때 베드로도 자리를 박차고 떠나가서 다시 갈릴래아의 어부가 되었더라면 그의 삶은 평탄했겠지요.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요? 아주 가끔은, 지금보다 인생을 좀 더 쉽고 안락하게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곧 제자리로 돌아오고 맙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진리를 포기하고 다른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더 자구적으로 번역하면 “누구를 향하여 떠나가겠습니까?”입니다. 베드로는 달리 갈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자기 자신과 타협하고 하느님 아닌 것과 타협할 때, 결국은 하느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다섯 주 동안 주일마다 생명의 빵에 관한 요한 복음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동안 요한 복음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앗아 가는 죽음을 어떻게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바로 ‘생명, 생명의 빛, 생명의 빵’이시기에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그분과 연결되어 있으면 참생명을 얻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훗날, 죽은 다음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분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며, 이렇게 시작된 생명은 죽음의 문을 넘어서고 종말에 가서 완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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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24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이사야서 22,19-23
로마서 11,33-36
마태오복음 16,13-20


이번 주일과 다가오는 주간에도 여름 휴가철의 마지막을 놓치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이 산과 바다와 계곡을 찾을 것입니다. 여름철이 막바지에 이르면 휴가 때의 흐뭇함과 아쉬움을 함께 느낍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멀리 있는 친척 집이나 휴가지에서 보낸 날들이 먼 훗날에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자 인생에 대하여 몸으로 깨치는 생생한 교육이 됩니다. 느긋하고 조금은 게으르게 보낸 것 같은 이 여름날에 어쩌면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이 더욱 튼실하게 여물지도 모릅니다. 사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보낸 여름날의 기억은 설레는 모험처럼 간직되며, 그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극작가 마르셀 파뇰이 여름 방학 때 시골에서 지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 『마르셀의 여름』을 읽었습니다.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이 책을 읽으며 여름 방학 때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한 시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두 문장이 내내 마음에 남습니다. “방학은 항상 그날이 그날 같아서 시간이 흘러가는 게 느껴지지 않았고, 여름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린이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물이 물레방아를 돌리듯, 그렇게 시간은 우리 인생의 바퀴를 돌리며 흘러간다.” 작가가 나이 든 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느끼는,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함께 묻어 있는 감회입니다.
뜨거운 태양의 이 계절에 주님께서 허락하신 쉼의 시간을 보내면서 특히 아이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이 방울방울 맺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어른들은 무상한 세월을 실감하며 살지라도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곳에서 쌓은 추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믿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앞으로 그리워할 아름다운 추억은 바로 오늘 생겨난다는 것을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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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25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성 루도비코 기념일)
(
성 요셉 데 갈라산즈 사제 기념일)

이사야서 66,18-21
히브리서 12,5-7.11-13
루카복음 13,22-30


한번은 동창 신부가 그의 부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 하였는데, 그분은 공직자로서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비근한 예로, 추석 같은 명절 때가 되면 사람들이 과일 등의 선물을 보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곧바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 누구에게서도 단돈 만 원 한 장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버지가 아들 신부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지키려고 했던 원칙 하나가 있단다. 사람이 살다 보면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단다. 선택할 때에는 언제나 선택하기 싫은 것, 바로 그것을 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될 거야.
덜 원하는 것, 덜 편한 것, 덜 쉬운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복음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를 보여 줍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좁은 문은 들어가기가 불편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오그려야 합니다. 그 반면, 넓은 문은 대접받는 사람들을 위한 문입니다. 그래서 그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편하고 쾌적합니다. 이 두 개의 문 가운데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좁은 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떠올리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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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26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여호수아기 24,1-2.15-17.18
에페소서 5,21-32
요한복음 6,60-69


제자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영으로 다시 나지 않고 육에 따라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육에 따라 지배 받으면 영에 자신을 맡기지 못합니다. 육은 시간이 지나면 죽음으로 사라집니다. 육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로 나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도 끊임없이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삶은 영과 육의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육은 이기심과 악으로 나아가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 이 육에 따라 살아가면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갈라 5,17 참조)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이 벌어집니다. 사람에게는 육의 충동과 영의 충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고 쾌락적인 생활 속에서는 영에 따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육을 이겨 내려면 성령의 인도에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만 성령을 맞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따라 살게 되면 평화와 기쁨이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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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21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이사야서 22,19-23
로마서 11,33-36
마태오복음 16,13-20


어떤 사람이 자기의 소원을 다 들어주시는 주님을 너무나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빛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다음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부에서 일등을 하고 싶어 하니 노력을 안 했는데도 일등을 하였고,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생각만 해도 생겼습니다.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을 갖추었는데 이상하게 그의 마음은 점점 허전해지고 우울해졌습니다. 그가 다시 주님께 하소연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생겼지만 늘 공허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했더니, 주님께서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을 해 보아라. 그러면 너는 삶이 보람 있고 행복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닐 기유메트가 쓴 『독수리 날개에 태워』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것은 우리 삶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실천하며 살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열쇠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전하는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전해 주신 복음적 삶을 살 때 하늘 나라가 열립니다. 그래서 이 열쇠는 곧 십자가 모양이라고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고 하듯, 우리 삶의 의미를 주님 십자가의 열쇠로 풀어야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 없으면 하늘 나라는 열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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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22)
(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이사야서 66,18-21
히브리서 12,5-7.11-13
루카복음 13,22-30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보편적입니다. 아무도 그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일정한 한계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구원의 문이 좁은 문이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길입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이며, 그 문은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참된 진리를 찾으며, 언제나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그곳에 다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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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23)
(
리마의 성녀 로사 동정 기념일)

여호수아기 24,1-2.15-17.18
에페소서 5,21-32
요한복음 6,60-69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갑니다. 예수님께 불만을 토하고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스승님은 맥이 빠집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열두 제자를 향한 외침은 꾸중이 아니라 마음을 다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떠나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습니다. “신부님, 성당에 다녀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귀찮고 번거로울 때가 더 많습니다. 한두 번 안 나가니까 오히려 더 편안하네요.” “성당에 다니다 그만두면 하느님께서 벌주시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냉담하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입니다.
복음의 사람들은 불평하며 돌아섰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것은 내용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말씀의 실천입니다. 떠나는 사람들은 ‘기적의 열매’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에서 멀어지는 이들도 비슷합니다. 그들 역시 ‘은총의 결실’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실천에는 게을렀습니다. 당연히 믿음의 기쁨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실천이 없으면 은총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만이 누적되고, 시간 낭비라는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발길을 끊게 되는 것이지요. 은총의 체험은 행동에 있습니다. 기도와 성사 생활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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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24)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이사야서 22,19-23
로마서 11,33-36
마태오복음 16,13-20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예언자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답변에 스승님께서는 별 반응이 없으십니다. 세상의 판단보다 제자들의 생각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답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자 스승님께서는 칭찬하십니다.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하늘의 아버지시다. 너에게 축복이 있기를.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한다면 그 자체가 축복이 됩니다. 아무나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세주란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인’이란 의미입니다. 어떤 세상이겠습니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구입니까? 아니면 우주입니까?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먼저 나 자신과 연관된 세상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살고 있고, 내가 책임질 사람이 있고, 내 소유와 미래가 있는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라는 고백은 엄청난 신앙 행위입니다. 누구나 입술로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승복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주님을 만나야 승복이 가능해집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이렇게 고백한다면 그분의 능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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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08 26)

이사야서 66,18-21
히브리서 12,5-7.11-13
루카복음 13,22-30


우리 신앙의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왜 믿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도착점은 같습니다. 온갖 이론과 지식도 결국은 구원에 대한 안내일 따름입니다. 구원의 이론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 말씀대로 좁은 문입니다.
구원의 문은 좁습니다. 하지만 좁아도 들어가야 합니다. 경쟁률이 높기에 좁은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낮추고 작아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기에 좁은 문입니다
작아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깨닫는 행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은총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잘못을 거듭해도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이러한 은총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작아지는 것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의 약한 모습을 수없이 체험합니다. 비참한 일이나 억울한 일로 상처받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일을 불평과 분노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작아지는 생활의 출발이요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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