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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28.마태23.13.-22(파티마 성모님 한국순회를 위한 9일기도 일곱째 날" - 파주 올리베따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8 조회수2,530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태 23,13-22(파티마 성모님 한국순회 9일기도 일곱째 날)

 

오늘우리는 파티마 성모님 한국순회를 위한 9일기도 일곱째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유난히 극성스럽던 장마도 지나고,찜통더위도 지나고결실이 익어가는 맑고 드높은 하늘의 가을 문턱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도 사랑도 희망도 우리 주님과 성모님 안에서 맑아지고 드높아질 것입니다성모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으니까요!

 

우리는 오늘부터 <독서>로 <신약성경>에서 제일 먼저 기록된 것으로 받아 들려지고 있는,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를 듣게 됩니다이 <편지>는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말씀을 들려줍니다.

이 <편지>의 시작부분인 오늘 <독서>에서는 인사와 감사선택됨과 그들의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곧 은총과 평화의 인사(1,1)그들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희망의 인내를 기억하여 드리는 감사(1,2-3)성령으로 선택되었음(1,4-5), 그리고 살아계신 참 하느님을 섬김(1,9)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재림에 대한 기다림을 그들이 지닌 믿음(1,10)으로 말해줍니다.

이는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이 받아들인 믿음의 핵심이었습니다또한 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사실오늘 <복음>도 이를 깨우쳐줍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 토요일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의 초기에, “산상설교를 통하여 여덟 가지의 행복을 선언하셨습니다(마태 5,3-12). 그리고 이제 공생활을 마감하는 지점에 이르러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일곱 가지의 불행을 선언하십니다오늘 <복음>은 그중에서 첫 번째에서 세 번째까지의 말씀입니다.

 

<첫 번째 불행선언>에서는 그들의 그릇된 가르침과 신앙이 사람들이 구원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두 번째 불행선언>에서는 그들의 그릇된 인도곧 그들의 행실이 사람들을 지옥으로 빠뜨리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세 번째 불행선언>에서는 자신의 신앙과 경건함을 과시하고심지어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물질적 이득을 위해 맹세를 남발함을 경고합니다.

이 경고에서 우리는 영적 우둔함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한 예수님의 애절한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이는 회개로의 절실한 호소입니다.

 

여기에서우리는 불행이 선언되고 지탄을 받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주시해야 합니다그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라는 소위 종교지도자들이라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그들의 사명은 종교적 진리를 가르치고 그 가르친 바를 살며그리하여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그들이 그 사명을 잃고 이탈하게 되면단지 그들 자신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맡겨진 다른 이들까지 파멸로 인도될 수 있기에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 할 것입니다.

사실이 모두는 그들이 가치관의 혼란에 빠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곧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우선적인 것인지무엇이 우선적이고 무엇이 부차적인 것인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그러한 가치관의 혼란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신원과 사명 자신의 신원에 따라 주어진 자리와 그 자리의 사명과 본질을 망각하는 데서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오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태오복음> 23장의 시작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마태 23,2)라는 자리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그리고 그 자리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문장의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마태 23,22)으로부터 주어진 자리로결국 오늘 말씀은 그 자리에 따른 사명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여된 각자의 신원과 자리가 있습니다아버지와 어머니로서의 신원과 자리자녀로서의 신원과 자리신앙인으로서레지오 단원으로서 각각의 신원과 그에 따른 자리가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더러는 방법상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또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선의로 뒤로 물러나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그렇지만 대체 무엇이 체()이고무엇이 용(활용)인지는 명확히 알아야 할 일입니다자칫 그렇지 못하게 되면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선자요 눈 먼 인도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질적인 것을 향하여 열정을 불살랐던 성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영혼에 울려오는 한 말씀을 듣습니다집어서 읽어라!”(tolle lege!). 그는 성경을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2-14)그리하여마침내 그는 그 모든 것의 본질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는 참으로실상 필요한 한 가지를 찾았던 것입니다그래서 그는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방향 지워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그리고그분께 이르기까지는 착찹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그리고 항상 그분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앞세웠습니다그래서 그는 말합니다.먼저 사랑하십시오그리고 원하는 바를 행하십시오충고하더라도 사랑으로 충고하고침묵하더라도 사랑으로 침묵하십시오.”

사실제 세례명이 아오스딩 입니다.그리고 제가 서품 받을 때 모토로 뽑은 성구는 그가 심취했던 바오로 사도의 십자가에 처형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1고린 2,2)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예물이냐아니면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마태 23,17-18)

 

그렇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게 묻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마태 23,17.19.)

 

그것은 본질적인 삶곧 실상 필요한 한 가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금이냐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예물이냐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하느님이 계신 곳이냐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이냐?

일을 잘 하는 것이냐일을 사랑으로 하는 것이냐?

내 뜻을 완수하는 것이냐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냐?

너 자신이냐주님이신 하느님이냐?

그러기에먼저 본질적이고 우선적인 것을 맑고 명료한 분별과 그를 따를 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곧 언제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무슨 일에서나 주 하느님을 찾고 따를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이는 또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맡겨진 사명이기도 합니다그러기에주님의 도움과 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지혜를 성모님에게서 배웁니다성모님께서는 무엇보다도,우리가 자신의 신원에 따라 있어야할 자리에서해야 할 일을 하되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가르쳐줍니다우리는 이를 특별히 중재자이신 성모님에게서 배웁니다.

 

마리아의 교종이라고 불리는 성인 교종’ 요한 바오로 2세를 기억할 것입니다교종께서는 착좌하실 때,어머니저는 온전히 당신 것입니다(totus tuus) 라는 성모님께 대한 봉헌을 표어로 정하셨습니다.

교종께서는 그리스도 탄생 2000년을 맞아 삼천년기의 문을 여는 희년으로, 1987년 6월 7일 성령강림대축일부터 1988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까지를 성모성년으로 선포하고<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1987)를 <회칙>으로 반포하셨습니다,

베네딕도 16세와 폰 발타사르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해석한 이 <회칙>의 <서론>(1-6)에서는 구세주의 어머니는 그리스도의 구원계획 안에서 명백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4항 참조)고 규명합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구세사적 위치<첫 번째>로는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의 마리아(7-24), <두 번째>로는 순례하는 교회의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어머니(25-37), <세 번째로>는 어머니의 중재(38-50)라는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여기서마리아의 중재는 주님의 여종으로서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중재로 그리스도의 중재에 참여하는 것임을 말하면서 동시에그것은 신적 모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가득한 은총의 토대 위에 온전한 자의(自意)안에서 표현된 특별하고 예외적인 중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8-39항 참조).

그리고 <결론>(51-52)에서교회는~그리스도교 백성들을 도와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게’ 하시는 마리아의 도우심을 본다.”(52)라는 말씀으로 마칩니다.

여기서우리는 성모님께서 당신의 자리”, 그 자리에 맡겨진 사명을 어떻게 실현하셨는지를 통해서우리도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사명을 어떻게 실현할 것이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중개자이신 성모님의 모습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그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성모님께서는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요한 2,3) 이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채십니다그리고 마치 당신의 일처럼 여기십니다그것은 난감한 처지에 대한 연민과 위하는 마음’, 곧 사랑입니다바로 이 사랑의 마음이 중재를 불러옵니다.

 

그런데우리는 어떻습니까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 알고 돌보고 있습니까아니면,오히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채우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습니다이웃의 어려움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어찌 사랑의 중재를 할 수 있겠습니까사랑의 중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성모님을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사실우리는 자칫 자신만 죄짓지 않고 사는 것에 머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또 자신이나 자기 가족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에 머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들을 향한 사랑의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악을 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죄를 짓지 않은 이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사랑을 베푸는 이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중요한 사실은 성모님께서 이 곤란한 사실을 잔치주관자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아드님께 알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성모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결핍을 살펴보시고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아드님에게,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채워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다만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사실을 알려드릴 뿐입니다.

이는 성모님의 중재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곧 중재의 뿌리는 자신이 결정한 바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아들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탁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자리곧 어머니이지만 여종의 자리라는 있어야 할 자리와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각성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곧 당신의 신원과 사명에 대한 자각에서 흘러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보채거나 더 강력하게 강요하지 않으시고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말씀하십니다곧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아드님이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모님의 중재는 당신의 뜻을 내려놓고자신을 아드님께 의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성모님 당신의 뜻이 아닌아드님의 원의에 모든 것을 맡기신 것입니다.그것은 당신 아드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당신의 뜻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십니다이는 하인에게만 그렇게 하라고 하신 말씀만이 아니라,당신도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아드님께서 하라는 대로 따르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순명입니다아드님의 명령이 있기도 전에,이미 아드님께 순명하신 것에 해당합니다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이미 잉태하셨듯이믿음 안에서 이미 예수님께 순명하신 것을 뜻합니다제자들은 기적을 보고서 믿었지만성모님은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의 권능을 믿으신 것입니다.

이토록성모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자세로곧 여종의 자리를 지키는 겸손과 의탁신뢰와 순명으로 전구하시고 중재하시며사랑으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중재자 성모님에게서,본질적이고 우선적인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웁니다우리의 신원과 사명을 부여된 자리에서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해결사곧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구원자는 주님이시요우리는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짝지요 동반자요 협조자요 도우미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이제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무엇이 더 중요하냐?(마태 23,17)

내 뜻을 완수하는 것이냐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냐?

너 자신이냐주님이신 하느님이냐?

 

주님제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게 하소서.

제 자신을 진리인 양 앞세우지 않고,진리가 제 자신을 이끌게 하소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게 하소서.

내 뜻인지 하느님의 뜻인지내 자신인지 주님이신 하느님인지!

앞세워야 할 일을 선택할 수 있는 맑고 명료한 눈을 주소서!

그를 따를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주소서!

무엇을 하든지누구를 만나든지사랑 외엔 아무 것도 아니게 하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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