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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829 -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9 조회수3,63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8 29 () 가해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복음 묵상

Memorial of the Passion of Saint John the Baptist

예레미야서 1,17-19
마르코복음 6,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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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예레미야서 1,17-19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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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르코복음 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 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Mk 6:17-29

Herod was the one who had John the Baptist arrested and bound in prison on account of Herodias, the wife of his brother Philip, whom he had married.
John had said to Herod, "It is not lawful for you to have your brother's wife."
Herodias harbored a grudge against him and wanted to kill him but was unable to do so.
Herod feared John, knowing him to be a righteous and holy man, and kept him in custody.
When he heard him speak he was very much perplexed, yet he liked to listen to him.
She had an opportunity one day when Herod, on his birthday, gave a banquet for his courtiers, his military officers, and the leading men of Galilee.
Herodias' own daughter came in and performed a dance that delighted Herod and his guests.
The king said to the girl, "Ask of me whatever you wish and I will grant it to you."
He even swore many things to her, "I will grant you whatever you ask of me, even to half of my kingdom."
She went out and said to her mother, "What shall I ask for?"
She replied,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The girl hurried back to the king's presence and made her request, "I want you to give me at once on a platte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The king was deeply distressed, but because of his oaths and the guests he did not wish to break his word to her.
So he promptly dispatched an executioner with orders to bring back his head.
He went off and beheaded him in the prison.
He brought in the head on a platter and gave it to the girl.
The girl in turn gave it to her mother.
When his disciples heard about it, they came and took his body and laid it in a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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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29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세례자 요한이 탄생하였을 때, 유다의 온 산악 지방 사람들은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 하고 말하였습니다. 아기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루카 1,76)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사명은 그분을 이스라엘에 알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헤로데 영주에게 바른말을 하여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한에게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는 그를 죽일 기회를 얻습니다. 그녀의 딸 살로메는 고관대작들이 모여 있는 잔치에서 춤을 잘 춰 헤로데의 환심을 사자, 상으로 요한의 목을 청합니다. 물론 이는 헤로디아의 간계입니다.
헤로데 임금의 명으로 참수당한 요한의 목을 본 헤로디아는 승리감에 도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수난은 하느님의 섭리로 이미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의 길을 준비하는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메시아를 어떻게 다룰지 예언하였습니다. 요한의 수난은 우리에게 회개의 세례와 수난의 세례를 받도록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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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 29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복음을 통해 몇 가지 부류의 사람을 만납니다. 정의를 외치는 세례자 요한,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미워 요한을 죽이려는 헤로디아, 그리고 무엇이 옳은 줄 알면서도 헛된 약속과 체면 때문에 불의를 택하고 마는 헤로데입니다.
헤로디아는 남편의 형인 헤로데와 결혼했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비난한 요한을 죽이려고 어린 딸을 이용하지 않습니까? 더 큰 문제는 헤로데에게 있습니다. 복음을 보면 그는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고, 그 약속이 부당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요한의 목을 베도록 명하고 맙니다.
반면 요한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자신의 목을 기꺼이 내놓지 않았습니까? 약속이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지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내용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면, 즉시 그 약속을 철회해야만 하지 않습니까? 나의 아집이나 체면 때문에 그 부당한 약속에 연연한다면, 또 다른 불의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세례자 요한은 그 누구보다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고, 그런 만큼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미리 준비한 분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영광보다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신 분이지요.
우리도 주님의 도구가 되도록 비록 작은 일이라도 실천 가능한 것을 한 가지씩 결심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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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29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평소에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는 싫어하였지만, 진리 편에서 말하는 그에게 강렬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딸과 무모한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쏟아질 비난과 비웃음이 두려워 요한의 목을 베도록 지시한 뒤, 괴로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자기의 불의를 질타하는 요한을 죽이려고 자기 딸마저 이용합니다. 목적을 달성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여인! 세상에서 요한을 다시는 만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언자를 대하는 인간의 양면적인 태도를 보는 듯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예언자가 전하는 말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를, 또는 그의 말을 가두어 두기는 하지만 죽이기까지는 두렵습니다. 가두어 두는 것, 그저 진실을 꼭 덮어 두려는 시도겠지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없애야 할 것 같습니다.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어도 되겠지만,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없애 버려야 끝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의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짐이 되어 그에게 덫을 놓으려 하고(지혜 2,12-14 참조), 그럴 듯한 핑계나 이유로 포장하고 과장해서 상대방을 제거하기도 하는데,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그렇습니다.
헤로데처럼 다른 사람의 비웃음이 두려워서 진리보다는 거짓을 선택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오늘도 옷깃을 여며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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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 29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뜻하는 두 가지 성격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무죄한 이의 억울한 죽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항변이나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권력의 횡포에 소리 없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교회가 해마다 성탄 시기에 헤로데의 손에 죽은 죄 없는 아기들을 순교자로 이해하며 기억하듯, 오늘 복음은 무죄한 이로서 죽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똑똑히 전해 줍니다.
그의 죽음은 예언자의 운명의 완성이었습니다. 그는 예언자의 사명에 끝까지 충실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허리를 동여매고당신의 말씀을 지체 없이 전하는 것이 예언자의 사명임을 알려 주십니다. 또한 예언자가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순간 그의 존재 의미는 흔들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의 전통에 따라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불꽃처럼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무죄한 그의 죽음은 이러한 예언자의 실존의 완성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운명을 보며, 우리는 역사 안에서 반복되었고 지금 이 시대에도 끊이지 않는 죄 없는 이들의 희생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모순과 악의 횡포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무죄한 이의 희생과 의인의 죽음을 잊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을 되새깁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던져 주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지난봄 내내 마음을 적셨던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의 원작인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의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라라는 시를 다시 음미해 봅니다.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라./ 나는 거기 없단다. 나는 잠들지 않았단다./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날고 있단다./ (중략) 아침 고요 속에서 네가 눈을 뜰 때면/ 나는 빙글빙글 힘차게 비상하는/ 조용한 새의 날갯짓./ 나는 한밤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들./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라./ 나는 거기 없단다. 나는 죽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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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 29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명백한 대조를 봅니다. 바로 요한 세례자와 헤로데 임금입니다. 요한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에 앞서 그분의 길을 닦으며 준비한 선구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회개를 촉구하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들꿀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광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로데는 그 반대입니다. 그는 교활하고 야심 많은 통치자로, 동생의 아내를 차지한 탐욕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인 헤로데 대왕이 바로 그의 아버지이며, 자신 또한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며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였습니다.
이 두 인물이 오늘 복음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하여 두 사람의 대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요한이 정의를 대변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불의를 대변하는 자이며, 요한이 하느님의 진리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거짓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자입니다. 요한이 수난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폭력을 행사하는 자입니다. 결국 요한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을 두고당당한 패자부끄러운 승자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통은 바로당당한 패자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당당한 패자의 삶을 사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당당한 패자에게 참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당한 패자입니까, 아니면부끄러운 승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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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29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요한 세례자의 죽음은 불의한 자들과 죄인들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해 줍니다. 요한 세례자는 탄생부터 주님의 길을 마련하였고, 마지막 생명까지도 그렇게 바쳤습니다. 요한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진실을 말하였고, 하느님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문학자로서 시인으로 활동한 조지훈은 정치적 혼란기에 권력에 야합하면서 신의를 저버린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호된 비판을 서슴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지조론』(志操論)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변절은 단순히절개를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옳은 신념을 버리는 것이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 변절자는 저마다 구실과 핑계를 댑니다. 지조를 지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부정과 불의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면 곤욕을 치를 각오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조를 지키려면 때로 목숨까지도 걸어야 합니다.
의로운 요한 세례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체면 때문에 신의를 저버린 적은 없는지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요? 욕심은 언제나 부패하기 마련이고 거기에 물들기도 쉽습니다. 우리는 병든 세상이라고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는 신앙인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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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 29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누구에게 충고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상관이거나 손윗사람일 때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수평적 관계보다 수직적 위계를 가지고 있어서 올바른 토론 문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상하 관계의 분위기에서는 중요한 사안들이 일방적으로 결정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책임자 주변에는 충언을 해 줄 사람이 드물고 결정권자의 입맛에 맞장구나 치는 간사한 무리들이 자리를 잡기 쉽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의인 요한이 희생된 모습을 보면 책임자와 그 주변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줍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헤로데 임금과 그의 생일잔치에 초대된 고관들과 무관들, 갈릴래아의 유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을 희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간악한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이 있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잘못된 요청에 대하여 그 누구도 거부를 하거나 임금에게 올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고관과 무관, 갈릴래아의 유지들이 어떻게 그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침묵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 피해 받지 않으면 아무리 의인의 죽음이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상하 관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무릇 교회 안에서조차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정권자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그 주변의 인물도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바르게 식별하고,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하고, 자신 또한 바르게 서 있지 않으면 이 땅의 정신세계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악은 늘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어둠의 세력을 넓혀 나갑니다. 사회적으로 책임이 큰 사람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버린 양심만큼 사회는 병들어 갑니다. 그 사람들이 져야 할 죄 또한 그만큼 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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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29)


연중 제2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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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29)


복음의 헤로데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북쪽을 다스리던 ‘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저 유명한 ‘헤로데 대왕’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메시아의 출현으로 여겨 죽이려 했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왕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결국 그는 예루살렘에 살던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살해합니다. 헤로데 임금의 잔인한 성격으로 보아 능히 그랬을 것입니다.
말년의 그는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아내와 장남까지 처형하는 광기를 드러내다가 죽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이스라엘은 삼등분되었고, 그의 아들들이 다스렸습니다. 북쪽의 갈릴래아 지방을 맡았던 아들이 ‘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
안티파스는 로마에서 공부할 때 이복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가까워졌습니다. 왕이 되자, 그는 아내를 버리고 헤로디아와 재혼합니다. 그녀는 ‘마카베오 가문’의 공주였던 ‘미리암’의 딸로, 정통 유다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헤로데 가문은 이방인 출신입니다. 안티파스는 헤로디아와의 혼인으로 신분 상승을 원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요한의 죽음을 원하는 아내의 청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의로운 사람인 줄 알면서도 묵인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두 사람의 공모로 살해된 셈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실지를 자신의 죽음으로 증명했던 것입니다. 그의 일생은 철저하게 구세주의 앞날을 준비하는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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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29)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 임금은 예수님 당시 갈릴래아를 다스리고 있던 ‘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 기원전 4, 헤로데 임금이 죽자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들이었던 그를 갈릴래아 지방의 임금으로 임명합니다. 그때까지 그의 아내는 인접 국가 나바테아의 공주였습니다.
임금이 되자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이복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재혼합니다. 모세 율법의 엄연한 위반입니다. 권위는 즉시 추락했고 비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선봉에 섰던 인물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헤로디아가 더 분노하지요. 그녀는 헤로데를 부추겨 요한을 감옥에 가두고 제거할 기회를 찾기 시작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해서 억울한 죽음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의 일생은 철저하게 구세주의 앞날을 예고하는 삶이었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불이익을 각오하며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러한 삶을 살다가 희생되었습니다. 훗날 로마의 황제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영지를 빼앗고 이스라엘 밖으로 추방합니다. 헤로디아 역시 남편과 함께 떠돌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의인의 죽음을 선동한 대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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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29)


‘십자가의 길’ 기도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재연하면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라는 제1처부터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라는 제14처까지 모두가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변명도 비난도 없이 그저 담담히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세상의 모든 억울한 죽음과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억울함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참을 수밖에 없는 억울함, 참지 않고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그러한 억울함을 당했을 때 무엇을 생각하였습니까? 복수였습니까? 용서였습니까? 아니면 망각이었습니까? 주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묵묵히 받아들이시며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억울함도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십자가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도 억울한 죽음입니다. 그토록 의로웠던 분이 한 소녀의 춤 값으로 희생되셨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한 희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떠한 억울함도 희생으로 받아들이며 승화시켜야 한다는 무언의 가르침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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