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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8-29 조회수2,27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7년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제1독서 예레 1,17-19

그 무렵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7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님의 말씀이다.”

복음 마르 6,17-29

그때에

17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너는 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니?”
그러자 “저는 오른쪽 얼굴이

더 예쁘게 나와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정작은 본인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하긴 전에 어떤 책을 보니,

우리 몸의 좌우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몸을 반으로 나눈 뒤에

좌측이나 우측의 한 부분을

복사해서 반대쪽으로 붙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더 예쁜

부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왜 저는 아무리

거울을 봐도

왼쪽이 더 나은지,

 오른쪽이 더 나은지를

판단하기 힘들까요?
이 친구는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 오랫동안 계속

자신이 찍힌 사진이나

화면을 보고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자신에게

마음이 드는

부분을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자신의 얼굴도 이렇게

계속 보고 고민해야 겨우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 대해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랫동안 본 것도 아니면서

함부로 말하고 판단했던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하느님께서도 벌하실 거야.”
우리 주변에서,

 또 스스로도 자주

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더 큰 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왕실 가족의

타락한 윤리 행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되지요.

사실 그를 감옥에 가둔 헤로데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요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고,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춰서 헤로데 본인과

손님들을 기쁘게 해 준

헤로디아의 딸에게

이렇게 맹세를 합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이 맹세에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대답하지요.

헤로데는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그 청을 들어줍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라는 작은 죄가

더 큰 죄인 살인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섣부르게 함부로 말한

판단이라는 작은 죄가

더 큰 죄인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섣부른 작은 죄가

 더 큰 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좀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겸손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늘

부족한 것은 성실이다.

(벤자민 디즈레일리)

세례자 요한과 헤로디아의 딸.

"손나무"

(‘좋은 생각’ 중에서)

제자가 물었다.
“가장 값진 열매를

맺는 나무는 무엇입니까?”
스승이 답했다.
“한 그루에 가지가

다섯 개씩 달린 나무가 있는데,

그걸 부지런히 흔들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네.

바로 자네의 손이지.”
가장 값진 열매를 맺는 나

무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남의 나무에 달린 열매가

더 크게 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

세례자 요한이 순교했던 마케루스 요새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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