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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단식과 기도와 자선)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1 조회수3,383 추천수1 반대(0) 신고

 

"식과 기도와 자선"

+ 찬미예수님!

 구약시대에도,

또 지금에도 변함없이

내려오는 천국을 얻는

세 가지의

수련방법이 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수련방법 중

첫 번째가 단식입니다.

단식에는 육적인

단식도 있지만

마음의 단식도 있고

영의 단식도 있습니다.

 일단은 육의 단식이

단식의

첫 번째 단추입니다.

육적인 단식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오감을 극복하는 겁니다.

물론 자기 몸을

 가학해서는 안 되지만,

어느 정도는 자기 몸을

불편하게 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정신이

맑아집니다.

몸뚱이가 가자는 대로

끌려 다니는 사람은

그야말로 형이하학적인

인간이라고 합니다.

몸은 편안한 것만을

찾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서있으면 앉아있고 싶고,

앉다보면 등대고 싶고,

그러면 눕고 싶고.

한도 끝도 없습니다.

세 치도 안 되는

혓바닥도 맛난 것,

쓴 것, 단 것을 얼마나

기막히게 가려냅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가 금식을

 자기의 몸을 이기는

훈련방법으로

 쓰고 있습니다.

배가 기름지고 음식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영성생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체험입니다.

밥 잔뜩 먹고

묵주 들면 하품만 ‘꺽꺽’

하다가 끝납니다.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금식으로써 육신을

다스렸습니다.

음식을 심하게

탐하는 죄를 탐도죄라고,

 일곱 가지 죄 중에서

하나입니다.

음식을 너무 심하게

탐하면, 늘어나는 것은

영성이 아니라

성욕이 자라 육의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도

발현하실 때 마다

 항상 초대교회처럼

단식을 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선배들은

철저하게 수요일과

 금요일이 되면

단식을 했습니다.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슬슬

없어지더니 바티칸공회

이후에는 1년에 단 두 끼만

굶으라고 권고 합니다.

언제입니까?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한 끼.

그런데 그것 지키는

신자들이 40프로(%)가

안 됩니다.

지나고 난 다음에

‘아이고, 어제가

제의 수요일이었네!

어쩐지 어제 먹는 고기가

그렇게 맛있었어.’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형식적인 금식이 아니라

언젠가는 단식을 할 날이

반드시 오니 그때를

대비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마음의 단식도

다 준비해야 됩니다.

마음의 단식은

 물건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고 이기적인 삶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마음의 단식은

가슴 한 가운데

 사람을 담지 말고

하느님을 담고,

하느님께 애착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피조물에 대한

무절제한 애착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바로 마음의 단식입니다.

무언가를 소유해야

편리하게 살아가지만,

소유한 모든 것을

또 편안하게 포기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

영적인 단식이 있습니다.

영적인 단식은 한 마디로

 죄악을 끊어버리는 것,

그리하여 완전한 회개로

거룩함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 세 가지 단식을

말씀드렸는데,

이는 순서대로 되어야만

마지막 단계에 이릅니다.

육적인 단식 없이

마음의 단식을 할 수 있으며,

육과 마음의 단식이

 깨져 있는 상태에서 절대로

우리는 영적인 단식에

이르지 못합니다.

 두 번째로 천국으로 가기 위한

수련방법은 기도입니다.

아마도 우리 신자들이

예비자 때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은 단어가

있다면 아마 기도일 겁니다.

미사 때 마다,

신부님이 강론할 때 마다,

평화방송 틀 때 마다,

영적독서 할 때 마다,

평화신문에서도

가톨릭 신문에서도

 안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로,

늘 기도에 관해서 듣는 데,

과연 여러분들 기도하십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하시는 기도의 내용이

과연 무엇입니까?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겁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은

기도가 잘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고 싶어도

절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냐,

베푸는 사람이냐,

주님의 사랑을 닮으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걱정을 할 때가 태반입니다.

걱정은 기도가 아닙니다.

걱정은 하면 할수록

마귀가 들끓지만

사랑으로 가득 찬 기도를

 할 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의 핵심은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어떤 이가 밭을 일구다가

보화를 발견하고 그 밭을

사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 사람은 어쩌다 요행으로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자기가

맡은 위치에서

기도의 밭을 갈고,

가정의 밭을 갈고,

또 직장에서 성실의 밭을 갈고,

때로는 고통을 통해서 오는

고통의 밭을 갈면서

예수그리스도라는

보물을 발견한 겁니다.

이렇듯 기도는 어느 날

갑자기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교우들이 묻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하면

기도 중에 분심이 안 듭니까?”

분심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문제는 분심을 즐기면 안 됩니다.

본인이 분심이 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거기서 끊어야 합니다.

분심이 드는 건 자연적인 거지만,

분심을 즐기는 것은 죄입니다.

기도는 훈련인데,

기도의 바탕에는

내가 자꾸 사랑으로

바뀌어져야만 기도의

깊이가 깊어집니다.

 기도에 대한 이야기,

하늘과 땅을 채우고도

남을 겁니다.

많은 영성신학자들이

기도를 가르칩니다.

많은 기도 종류,

향심기도,

 이냐시오 영성기도 등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사제생활하면서 내린

기도에 대한 결론은

“내가 사랑으로 변하지 않으면

절대 기도가 안 되더라.”

미움을 가득 차 있을 때

여러분 기도가 안 됩니다.

기도를 잘 하는 것을

묻지를 마시고 내가 정말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천국을 얻는

수련방법은 자선입니다.

단식과 기도를 통해서

얻어진 겸손한 마음은

반드시 자선이라는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세상만물의 주인은

하느님의 것이요,

우리는 단지 청지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나누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3장에 보면

가진 것을 나누면서

살았기에 가진 자,

없는 자 없이

살았다고 나옵니다.

사실 공산주의는

크리스챤들이 성서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괴물입니다.

 물론 자선도 등급이 있습니다.

남에게 남아돌아가는 것을

 희사하는 것은 점수로

50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바로 100점입니다.

 옆집에서 굶어가는

사람이 있을 때

묵주를 들고 기도합니다.

‘주님, 저 사람

지금 배고파 굶어죽어

가고 있는데 도와주세요.’

응답이 어떻게

오는 줄 압니까?

천사가 나타나서,

묵주 들고 기도하는 인간의

귀퉁이를 때립니다.

‘야 이놈아, 너 오늘

해 먹으려고

밥 지어 놓았잖아?

밥 해 가지고 먹여.’

옆집에 있는 사람이

돈이 없어 죽어갑니다.

묵주를 들고 열심히

기도 합니다.

‘저 불쌍한 사람,

도와주십시오.’

 이번에도 천사가 나타나서

귀퉁이를 때립니다.

‘빨리 저 사람 들쳐 업고

응급실로 가.

나를 너를 통해서

 일을 하고 싶은데...’

 기도는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기도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자선이 성장해서

마침내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줄 때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이 어떻게 보면

참다운 선물이요,

그게 바로 애긍입니다.

 옛날에 본당신부 시절에

외국을 갔다 오면

 사무장이라든지

본당 수녀들한테

조그만 선물을 삽니다.

사무장이 펜을 많이

쓰기 때문에

파카볼펜을 사왔습니다.

‘아휴 신부님 감사합니다.’

그러는데 내 마음이

 기쁘질 않아.

왜 그런가했더니

내가 그런 볼펜이

일곱 자루가 더 있었어.

남아돌아가는 것을

줬더니 기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즉시 저는 아끼던

소형 카메라를 들고 나왔어요.

하지만 카메라를 보니까

맘이 달라져 사제관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

한 세 번을 그랬어요.

제 자신이 얼마나 밉던지.

“사무장님,

사진 찍는 취미도 있으시니,

본당 행사 때 성능 좋은

카메라니까

이것으로 찍으세요.”

나는 그때 사무장이

눈물 흘리는 것을 봤어요.

 너무너무 좋아서.

파카 볼펜 받을 때는

눈물 안 흘렸지요,

고맙다고만 했지.

돌아 나오면서도

마음은 두 가지야.

속이 쓰리기도 하고.

그때 느낀 것이 뭐냐?

“선물은 주고 난 다음에

아까운 마음이 들어야

진정한 의미의 선물이지,

주고도 가슴이 안 아픈 것은

선물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십니까?

 진보주의 신학은

그런 말까지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을

네가 두 개를 가지고 있을 때는

너는 그것을 훔친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볼펜을

두 개가 있고 다른 사람은

한 자루도 없어.

나도 하나만 필요하여

하나는 남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친 것이라는 겁니다.

 정리합시다.

지금 구약과 신약에서

변함없이 내려오는

천국을 얻는 세 가지

수련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가 단식이라고 했고,

 단식에는 육의 단식,

마음의 단식,

영의 단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육신의 단식을 하지 않고

 영의 단식으로 갈 수 없고

단계별로 거쳐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몸뚱이를 이기려고

애쓰다 보면 마음의 단식을

하게 되고 영의 단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 훈련방법은

기도해야 된다.

기도하지 않고 천국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신부님, 저 기도는 안 해도

주일은 안 빠지는 대요.

저도 못 갑니까?’

못 갑니다. 안 됩니다. 기도하세요.

기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려고

애쓰면 정말 기도가 쉬워집니다.

한 시간 앉아 있어도

얼마나 시간이 빨지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결국에는 여러분의 마음에

남아있는 어두움을 몰아내야만

사랑으로 채워질 겁니다.

기도는 혼자 많이 떠드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겁니다.

 세 번째 훈련방법은 단식과

기도를 통하여 만들어진

겸손한 마음은 반드시

선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내 것은 없기 때문에,

청지기이기 때문에,

 경영자일 뿐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나누라는 겁니다.

주변에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여러분이 아끼는 것까지도

내놓아야 됩니다.

 이건 벌써 오래 전 일이고

제가 자선 베푸는 것을

드러내려는 어두운 마음은

아니기에 말씀드립니다.

평화신문 한 쪽에는

아픈 사람들의 얘기,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나오죠?

그 날도 신문을 보는데,

백혈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아이,

수술이 필요한 아이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전에도 볼 때 마다

 ‘안됐다. 좋은 은인이

 나타나면 좋겠네.’라는

 생각은 했지

돈 보내본 적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은 머리

 빡빡 깎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이 하루 종일

떠나지 않습디다.

성당에서 기도하는데도

예수님의 얼굴을

못 쳐다보겠는 겁니다.

‘그 아이에 대한 동정만

있었지 사제인 네가

그 아이를 위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 않느냐?’

 그래서 저는 그 즉시

생각을 했습니다.

 ‘가만 있어봐.

뭘 어떻게 도와야 되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제일 비싼 건 2008년도

은경축 때 은인들이

마련해 준 차였어요.

저게 얼마나 갈까?

딜러한테 급히 팔았으니

 제 값도 못 받은 것 같지만

몇 천 만원이 손에 들어옵디다.

그런데 아까 사무장한테 카

메라 들고 왔다 갔다 했던 것처럼

갈등이 또 생겨.

평화방송 전화를 누를까 말까?

차 없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런데 제가 이겼어요.

바로 보냈죠. 누구라고

알릴 필요도 없는 거고.

나중에 그 아이 어떤지

너무 궁금해서 알아보니까

회복이 됐대요.

살아났다는 거예요.

 단식을 열심히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해도

그것의 열매인 자선을

베풀 때는 갈등이 와요.

내놓아야 되기 때문에.

단식은 안 먹으면 되는 거예요.

 손해 안 봐.

기도도 마찬가지야.

돈 들어가는 것 없어.

그런데 자선은 분명히

눈에 보이는 것을

희생해야 되고

포기해야 되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여러분들, 명심하십시오.

천국을 가기 위한

이 세 가지 훈련방법을

게을리 할 때는 한 평생

사제 옷을 입고

주교 옷을 입고

한 평생 미사를 지켰다

하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단식과 기도와 자선,

이 세 가지의 화두를

늘 명심하시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17년 08월5일김웅열

(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서운동성당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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