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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너희 가슴 안에 사람을 담지 말고 나를 담아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2 조회수2,078 추천수0 반대(0) 신고

 

"너희 가슴 안에

사람을 담지 말고 나를 담아라!"

찬미예수님

부활을 바라보는 흐름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극단적인 자유주의자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부활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주님의 부활을

못 믿겠다~ 입니다.

단지 부활의 현세적인

의미만을 주장합니다.

두 번째,

자유주의자와 반대인

근본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에게

대항하여 주님의

부활만을 역설하며

부활의 현세적인

의미를 소홀히 합니다.

세 번째,

자유주의자와

근본주의자를 합한

복음주의자가 있습니다.

부활의 실제성과

역사성을 믿으면서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부활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내 삶 가운데에서

실현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을

쫓아야 할까요?

균형감각을 가진

복음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서

내 신앙의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부활했던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나요?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고,

우리 공동체일수도 있으니까요~

또 예수님을 만난

그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던

첫 번째 사람은 누구입니까?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여 열심과 충성이

뛰어난 여인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끝까지 예수님을 지켰고,

 예수님의 무덤을 떠나지 않고

눈물로 애도했습니다.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당신의 성스러운

모습을 보이십니다.

열심과 충성인 자는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그 말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슬픈 상태에서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빈 무덤을 보고 마리아는

충격과 슬픔에 눈물을 흘렸고

예수님께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계셨지만

그 눈물에 가려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뒤에 계신

예수님을 동산지기인줄

알았던 겁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났던 힘은

주님께 대한 충성과

변함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거기에

기쁨만 있었더라면

예수님을 웃으면서

보았을 것입니다.

두 번째,

부활한 예수님은 두려움과

 공포로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기 있기를~’

예수님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세 번이나 하시며

용기를 북돋우어 주십니다.

다른 말로 해석하면

너희에게 담대함이 있기를~’

이 시간에도 환경이 주는 두려움,

죽음이 주는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두려움,

나에게 상처 주는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성지를 찾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며칠 전 경남기업 회장이

유서를 남기고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넘은 사람이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건축 사업을 하면서

왜 로비가 없었겠습니까?

자신은 부끄럽게 산적은 있어도

추악하게 산적은 없다~’

이것은 난 너희가 생각하는 만큼

나쁜 사람 아니다~ 라는

뜻일 겁니다.

그 사람만큼 발이 넓은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루 종일 전화해도

어느 정치인 하나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죽음은 아마

상실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내가 이제껏 사람을

잘못 믿고 살았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슴 안에

사람을 담지 말고 나를 담아라!’

그래야 너희가 세상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 환경, 죽음, 미래,

사람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담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이

죽음의 길로 가는

십자가의 길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제자들이지만

가장 먼저 찾아가셔서

세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

이것은

너희에게 담대함이 있기를~’

그 안에는 아마

용서한 다는 말도

들어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도마에게 나타나십니다.

다락방에 예수님이 오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먹고 살 자리 찾으러 나갔다가

들어와 보니 다른 제자들이

멍 때리고 있었어요.

도마야, 주님이 다녀가셨어~’

나는 이 손가락으로

그 분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나서야 믿을 거야!’

 확신에 이르지 않는 믿음에

대해서는 늘 거부하는 것이

도마의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거룩한 의심!’

그런 도마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믿음 없는 자 되지 말고,

믿는 자 되어라!’

도마는 무릎을 꿇으면서

단 두 마디를 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니 않고 믿는 자가 진복자니라!’

네 번째로

주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십니다.

엠마오까지 사십 여리 길이라

네 시간 가량 같이 가지만

세상 걱정 때문에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어떤 직업을 선택할까?’

그 양반 따라다니면

군수자리라도 하나 얻을까

했는데 이게 뭐람!’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성서를 풀이 해주고,

빵을 축성해서 나눠주십니다.

그제야 눈이 열려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못 배웠다고,

재주 없다고, 가난하다고~

얼마나 낙심하고 체념하며

숙명론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달라집니다.

갈 때는 절망의

엠마오 길이었지만

예수님을 체험하면

희망의 길이 됩니다.

예수님을 알리기 위해

줄달음쳐 다시 올 수 있는

희망이 부활이 주는 힘입니다.

다섯 번째,

주님은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대면하십니다.

다시 어부의 생활로 돌아간

제자들은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해 기진맥진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요깃거리를 준비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무려 세 번이나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는 얘기를 물으십니다.

이것은 명예 회복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전과자입니다.

맏형노릇 제대로 못 하고 살며

늘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견디기 힘들어 하던

베드로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대답을 받음으로써

영적인 명예회복을 시켜 주시고

다시 사도직을 맡기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를 슬픔과

눈물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다락방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제자들을 찾아서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평화를 주십니다.

의심과 불신, 회의로 가득한

도마에게 가셔서 의심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십니다.

낙담과 절망에 싸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절망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수치심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이것을 통하여 부활이

우리들에게 주는 해방입니다.

다른 말로 자유요,

또 다른 말로 치유입니다.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매일매일 치유 받습니다.

여러분도 여러 가지

어두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슬픔, 눈물, 공포, 두려움,

의심, 불신, 낙담, 절망,

수치심, 부끄러움……

우리를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영적인 어두움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주님은 우리들을

부활시켜 주십니다.

 복음적인 관점에서

그분의 부활을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현재 나에게 그분의 부활이

해방과 치유를 주는지

깨닫는 것이

복음주의적인 관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눈에 보이는

사제만 있는 게 아니라

다락방에서 떨고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년 동안

기라성처럼 빛나던

성인들의 유해가

여러분과 같이 긴 시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곳 성지는 여러분이

선택해서 온 게 아니라

선택 받아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곳으로

불렀기 때문에 개개인에게

하실 말이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다만 저희가 왔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여러분에게 어떤 고통이 있는지,

또 얼마나 힘들게 이곳에 왔는지~

육의 고통, 영의 고통을 다 아시고

이 자리에 불러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직 자비만 청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들은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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