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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903 - 가해 연중 제22주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3 조회수1,91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
0903 () 가해 연중 제22주일 복음 묵상

Twenty-second Sunday in Ordinary Time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예레미야서 20,7-9
로마서 12,1-2
마태오복음 16,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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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 예레미야서 20,7-9

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8
말할 때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폭력과 억압뿐이다!” 하고 외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9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Reading 1


Jer 20:7-9

You duped me, O LORD, and I let myself be duped; you were too strong for me, and you triumphed.
All the day I am an object of laughter; everyone mocks me.

Whenever I speak, I must cry out, violence and outrage is my message; the word of the LORD has brought me derision and reproach all the day.

I say to myself, I will not mention him, I will speak in his name no more.
But then it becomes like fire burning in my heart, imprisoned in my bones; I grow weary holding it in, I cannot endur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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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2,1-2

1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Reading 2


Rom 12:1-2

I urge you, brothers and sisters, by the mercies of God, to offer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pleasing to God, your spiritual worship.
Do not conform yourselves to this age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that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pleasing and 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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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16,21-27

그때에 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Gospel


Mt 16:21-27

Jesus began to show his disciples that he must go to Jerusalem and suffer greatly
from the elders,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and be killed and on the third day be raised.
Then Peter took Jesus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God forbid, Lord! No such thing shall ever happen to you."
He turned and said to Peter, "Get behind me, Satan! You are an obstacle to me. You are thinking not as God does, but as human beings do."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Whoever wishes to come after me must deny himself,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will find it. What profit would there be for one to gain the whole world and forfeit his life? Or what can one give in exchange for his life? For the Son of Man will come with his angels in his Father's glory, and then he will repay all according to his cond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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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09 03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단호함이 엿보입니다. 맺고 푸는 열쇠까지 받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는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인간적인 유혹과 욕망을 철저하게 단죄하는 예수님의 결연함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현실의 처지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때마다 조롱과 놀림을 받고 치욕과 비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세상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뼛속’에 그 말씀을 가두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게 하시면서 예언자의 길이 세상과 맞서는 험난한 길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수 차례 전도 여행에서 칭송과 존경보다는 반대와 박해를 받았지만,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의 전부로 여길 만큼 복음의 기쁨 속에 살았기에 역경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고,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날마다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내 삶에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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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28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집회서 3,17-18.20.28-29
히브리서 12,18-19.22-24
루카복음 14,1.7-14


오늘 예수님께서는 초대받거든 끝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시며, 겸손하게 행동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우리가 겸손해야만 하는 것은 나에게 건네시는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기 위함이며, 이웃을 통해 전해 주시는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함이지요. 겸손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남을 인정해 주어야만 합니다. 나아가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도 버려야 하지요.
이어 예수님께서는 자신 안에 잠재된 사심과 계산적인 마음을 버리기를 촉구하십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행위의 순수성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누구에게 선물하고, 누구를 초대하는 그 자체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나도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게 되고, 상대방이 보답을 해 주지 않으면 서운해질 수도 있지요. 만일 이렇게 된다면 내가 베푼 선행의 순수성을 잃게 될 위험마저 있지 않습니까?
둘째, 예수님께서는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도록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외적으로 가난한 것보다 더욱 심각한 현상은 마음이 피폐해 영혼이 가난한 것이지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풍요해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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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30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신명기 4,1-2.6-8
야고보서 1,17-18.21-22.27
마르코복음 7,1-8.14-15.21-23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두둔하신 것이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전통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거기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거나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완고한 마음을 질책하셨습니다.
독서 말씀도, 모세를 통하여 선포된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 명령을 한 마디도 보태거나 빼지 말고 그대로 실천할 때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간청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들어주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에는 구원 능력이 있으니, 그저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충고하면서, 그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고 부연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말로 많은 일을 합니다. 설득하고 위로하고 위협하고 강요하는 등 많은 일이 인간의 말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고받는 말은 빈말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은 너의 생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규정과 법규, 명령을 포함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더욱이 하느님의 말씀은 변하지도 않고, 인간의 힘에 꺾이지도 않습니다. 그 말씀에는 지혜가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세상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으로 계속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또한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본디 우리가 창조된 목적대로 완성되는 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야고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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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31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예레미야서 20,7-9
로마서 12,1-2
마태오복음 16,21-27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 사도는 가장 근본적인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소리에 귀 기울여 올바른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려면 더욱 정화되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당신의 안락과 영광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장익 주교님의 『예수의 길』에서는 베드로가 그때 미처 헤아리지 못한 예수님의 마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리 삼 년, 예수는 설교를 하면서 줄곧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급기야 큰 시련에 부딪쳤습니다. 곧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이 그것이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그리고 제관들로 이루어진 사두가이들은 예수를 없앨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고뇌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하는 것 외에 또 무슨 길이 있었겠습니까? ‘도피해서는 안 된다. 사명을 완수할 따름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중략)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하는 것, 이것이 예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이 질문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듭되는 물음입니다. 답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답을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되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누구이신지는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속에서 숨김없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려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실제로 ‘따라 걸을 때’ 비로소 우리가 아버지의 뜻에 눈을 뜰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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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01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집회서 3,17-18.20.28-29
히브리서 12,18-19.22-24
루카복음 14,1.7-1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에 윗자리가 아니라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끝자리’가 단순히 공간적인 뜻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앉고 싶지 않은 자리라면 거기가 바로 끝자리입니다. 이를테면 주일인데도 성당에 가기 싫다면 성당 좌석이 곧 끝자리입니다. 제삿날이지만 시댁에 가기 싫다면 시댁이 곧 끝자리입니다. 교회 활동으로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야 하는데, 갈 때마다 불편하게 느껴지면 바로 그 집이 끝자리입니다.
보좌 신부 때에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회식 자리가 잦았습니다. 스무 명이 넘게 모이는데, 보통 친한 이들끼리 가까이 앉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다소 소외되는 이들은 한쪽 구석으로 몰립니다. 결국 한쪽에는 인기가 좋은 이들이, 다른 쪽에는 소외되는 이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러면 보좌 신부인 저는 어디에 앉아야 했겠습니까? 마음으로는 좀 더 매력 있는 청년들 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반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에게서 “우리 신부님은 청년들을 편애하지 않는 것 같아.”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가기 싫은 자리, 하기 싫은 일, 선택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끝자리’에 앉는 것이고, 겸손을 향한 지름길입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면, 앉고 싶은 자리만 앉으려고 하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려고 하면 겸손을 배우지 못합니다. 겸손을 배우려면 ‘끝자리’에 앉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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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02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신명기 4,1-2.6-8
야고보서 1,17-18.21-22.27
마르코복음 7,1-8.14-15.21-23


오늘 복음은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논쟁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고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사람의 전통만을 고집한다며 그들을 나무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열심히 씻는 것보다 마음을 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예언자들은 유다인들에게 하느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은 말이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회심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의 이러한 생각을 이어받아 바리사이들에게 참다운 조상들의 전통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적인 실상을 드러내십니다.
손을 씻지 않는다고 불결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고,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요청을 거부하는 것이 불결합니다. 참다운 깨끗함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참다운 순결은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앎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확인됩니다. 불쌍한 이들을 보살피고 가난한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을 때 신앙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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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28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예레미야서 20,7-9
로마서 12,1-2
마태오복음 16,21-27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어머니 모니카와 대화를 합니다. 어머니 모니카가 말합니다. “현세의 것들은 모두 인간의 영혼에 맞지 않아. 그러기에 사람이 그런 것을 더 많이 추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비참해지고 곤궁해지게 마련이야.” 어머니의 이 말에 아우구스티노가 반박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만일 이 세상의 것들을 풍족히 소유한 데다 자기 욕심을 제어할 줄 알고 인생의 즐거움을 품위 있게 적당히 즐길 줄 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모니카가 대답합니다. “아니, 아니야! 이 세상 것은 절대로 영혼을 행복하게 할 수가 없어!” 어머니의 이 말에 아우구스티노가 매우 기뻐하며 외칩니다. “얼마나 멋진 대답인가! 그렇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라져 버릴 것들을 초월해야 하며, 영원히 남을 것을, 설사 운명이 바뀌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을 추구해야 한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런 특질을 지니셨다. 따라서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레몬 크리스티아니, 『아들아, 내 치마폭에는 눈물과 기도가 담겨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대화를 하고 있는지요? 우리도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대답처럼, ‘적당히 절제할 줄 알고 품위 있게 즐기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우리 삶의 깊은 곳에 깃든 영혼까지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지요. 영원한 것이 아니면 참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죽음을 예고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며 말리고 있습니다. 적당히 사람들에게 존경 받으면서 이대로 살자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고 베드로를 모질게 나무라십니다. 베드로처럼 ‘적당한 것’, ‘좋은 게 좋은 것’에 머물고자 하는 생각들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걸림돌이 되지요. 영성 생활에서 정지된 상태란 없습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합니다.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사탄이 오늘도 우리 안에서 ‘적당히 살라.’고 속삭입니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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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29)
(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집회서 3,17-18.20.28-29
히브리서 12,18-19.22-24
루카복음 14,1.7-14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라고 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을 압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주님께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며 삽니다. 주님께 의탁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놓을 줄 알며, 타인의 어렵고 힘든 처지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할 줄 압니다. 따뜻한 사랑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할 줄도 알고, 자신을 낮출 줄도 압니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께 속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오로지 자신을 낮추고 비워서, 주님을 섬기듯이 이웃을 섬기고 나누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양식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성체성사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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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30)

신명기 4,1-2.6-8
야고보서 1,17-18.21-22.27
마르코복음 7,1-8.14-15.21-23


유다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씻지 않고 음식을 먹으면 율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당연히 속죄 행위를 거쳐야 경건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음식을 그냥 먹어선 안 된다는 의미가 이렇게 발전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십니다. ‘손만 열심히 씻으면 뭐 하느냐? 중요한 것은 마음을 씻는 일이 아니냐?’라며 질책하십니다. 유다인들은 떨떠름해합니다. 하지만 손 씻는 행위는 율법과 무관합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마음을 씻는 방법의 하나일 뿐입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얼마나 장쾌한 말씀인지요? 예수님이셨기에 이 말씀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음식이 사람 위에 있었습니다. 먹으면 율법을 어기는 음식이 수두룩했습니다. 음식 자체에 ‘윤리성’을 두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타파하셨습니다. 음식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찌 음식뿐일는지요?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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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31)

예레미야서 20,7-9
로마서 12,1-2
마태오복음 16,21-27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드러내던 베드로 사도가 혼이 나는 장면입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베드로가 몰랐기로서니 “사탄”이란 표현은 너무 심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단호한 말씀 속에는 분명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적 감정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면서 베드로는 간섭하였습니다. 인간적 애정으로 스승님의 앞날에 참견하였습니다. 동기는 순수했지만 베드로가 나설 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인간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지, 주님께서 사람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면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신앙은 단지 재앙을 피하고 복을 얻는 수단이라는 착각입니다. 점치고 굿하는 기복 신앙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인지요? 주님께서 중심이 되는 믿음인지,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는 믿음인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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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02)

집회서 3,17-18.20.28-29
히브리서 12,18-19.22-24
루카복음 14,1.7-1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십니다. 높은 자리를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높은 자리를 탐하다가 삶을 그르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비록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높은 자리의 첫째 조건은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본모습을 먼저 볼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포장하기를 좋아하여 별것 아닌데도 그럴듯하게 꾸밉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포장을 벗으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러할 때 삶의 기본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 때 높은 자리 역시 잘 어울립니다. 우리 각자는 ‘내가 누군데…….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하는 생각을 버립시다.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은총을 청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감출 수 없음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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