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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영광으로 가는 길인 십자가)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9-03 조회수2,275 추천수1 반대(0) 신고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

"영광으로 가는 길인 십자가"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이제 밤에는 날씨가 쌀쌀해서

 따뜻한 이불을 찾게 됩니다.

한 낮의 햇살은 아직 따갑지만

가을이 이미 우리 생활 안으로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가을이 우리 삶에 자리잡았듯이

하느님의 말씀도

 그렇게 우리 마음에

자리잡으면 좋겠습니다.

형제 자매님,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례 중의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왜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그 길은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제 1독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고통스러운

고백의 한 구절입니다.

예레미야는 태중에서부터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고,

소명을 받을 때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예레 1,10)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큰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매일 그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조롱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주님의 꾐에 넘어가

고생을 한다고 불평하며,

예언자의 소명을

저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하느님께서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시기에

그는 죽기까지 용감하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끝까지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뼛속까지

새겼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처음으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신앙 고백을 했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베드로는 죄가 없는

그리스도께서 고통과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가치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

베드로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깨우쳐 주시며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이제 곧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실 것이고

그러면 자신들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삶이 열리리라는

큰 기대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꿈을 완전히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하고 있던 영광의

삶을 버려야 하는 괴로운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멸망이 아니라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하느님의 계획을 아셨기에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영광을 원합니다.

그런데 세속의 가치관에 젖어

십자가 없는 영광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영광을 원한다면

예수님 말씀처럼

나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그분을 따라야합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쁘게 살고 있는지

반성을 해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도 생활 중에

내 십자가라고 느껴지는

어려움이나 고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고통이 다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는 아닙니다.

내 욕심 때문에 겪는

고통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런 고통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혹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형제를 사랑하는 데에

따르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나의 십자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내가

 마지못해서 지고 산다면

그것은 나에게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기쁘게 끌어안고 생활할 때

그것은 우리를 영광에로

안내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고통을 겪은 후에

영광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힘든 과정 중에서도

영광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통의

과정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성령께서 힘을 북돋아주시는

 은총일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생활하면서

대인 관계에서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

져야할 십자가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용서를 청하면 쉽게

용서를 해주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용서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용서해 주고

상대방을 끌어안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행복을

원하는 우리를 향해,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새사람이 되라고,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라고 권고합니다.

즉 더 이상 인간적인

가치관에 따라 살지 말고

매사에 하느님의 뜻을 좇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내 뜻대로 행동하면서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길

바랍니다.

복음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반박한 것도

바로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나는 정말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모시고 살 것이다.’

라고 결심을 했지만,

생활하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하느님께 매달리기 보다는

이웃에서 권하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고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 사도도 얼마 후에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는

혹독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베드로 사도에게도

자신이 고백한 신앙을

생활에서 뿌리 내리기 위한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듯이

우리에게도 그 시간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생활 안에서

작은 일들 안에서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꾸준히 기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매 순간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라고 응답을 드린다면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바오로 사도의 권고대로

우리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제물로

 바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적인 가치로 볼 때

어리석고, 고통을 가져오더라도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로

 마련해 주신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굳게 믿읍시다.

우리가 선택하는 십자가의 길은

고통을 위한 길이 아니라

영광을 위한 길입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효성 캠퍼스에서

-박영봉안드레아신부드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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